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_5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1953년작 「동경 이야기」는 전후 일본 사회의 변화 속에서 전통과 현대의 충돌, 세대 간의 단절과 소통의 문제를 그린 걸작입니다. 이 영화는 나이든 부부가 도쿄에 사는 자녀들을 방문하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려내며, 가족애의 본질과 삶의 무상함을 묵직하게 전달합니다. 2012년 영국 영화 잡지 『사이트 앤 사운드』의 감독 투표에서 무려 48표를 얻으며 「시민 케인」을 제치고 역대 최고의 영화 1위에 선정되기도 했죠. 이는 「동경 이야기」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영화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쳐왔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동경 이야기」는 노부부 숙키치와 토미가 도쿄에 사는 자녀들을 방문하면서 시작됩니다. 장남 코이치와 장녀 시게는 바쁜 일상에 쫓겨 부모를 대접할 겨를이 없고, 오직 전쟁에서 남편을 잃은 며느리 노리코만이 그들을 정성껏 대접합니다. 숙키치와 토미는 자녀들의 냉대에 섭섭함을 느끼지만, 이내 삶의 무상함을 깨닫고 체념하게 되죠. 결국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 토미가 급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뒤늦게 달려온 자녀들은 죄책감과 슬픔에 빠집니다.
오즈 감독은 이 영화에서 특유의 절제된 연출과 정적인 카메라워크로 일상의 풍경을 담담히 그려냅니다. 무채색 톤의 화면과 낮은 앵글의 쇼트들은 마치 일본 전통 가옥의 다다미 방에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을 주죠. 이러한 미장센은 영화에 고즈넉한 정취를 불어넣으면서도, 인물들의 내면을 응시하게 만드는 오즈 특유의 스타일입니다.
「동경 이야기」가 울림을 주는 이유는 단순히 노년의 외로움을 그려내서가 아닙니다. 이 영화는 전후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전통적 가족 질서가 흔들리는 상황, 세대 간의 가치관 차이와 소통의 어려움을 절절하게 포착해내고 있습니다. 노부부는 전통적 삶의 방식을 고수하지만 자녀들은 개인주의적 가치관을 추구하며 부모와 멀어져 갑니다. 이는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핵가족이 일반화되던 당시 일본 사회의 단면이기도 했죠.
하지만 「동경 이야기」는 결코 관념적 메시지에 함몰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노부부와 자녀들, 그리고 며느리 노리코 사이에서 펼쳐지는 애잔하고 복잡 미묘한 감정의 교류가 영화에 깊은 공감을 부여합니다. 억압된 슬픔, 짙은 그리움, 원망과 미안함이 뒤엉킨 인물들의 내면은 탁월한 앙상블 연기로 섬세하게 그려집니다. 특히 며느리 노리코 역의 하라 세츠코는 말없는 눈빛과 표정만으로도 깊은 울림을 전하죠.
오즈 감독이 이 영화에서 궁극적으로 전하고자 한 것은 가족애와 삶의 순환에 대한 통찰이 아닐까 싶습니다. 영화는 세대 간의 단절과 변화를 안타까워하면서도 그것이 피할 수 없는 삶의 이치임을 받아들이는 지혜를 보여줍니다. 아버지 숙키치가 며느리 노리코에게 재혼을 권유하며 삶을 살아가라 말하듯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용기와 지혜인 것입니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가족의 의미를 묻고,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순간의 숭고함을 그려낸 「동경 이야기」. 이 영화가 6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전 세계 영화인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세월의 풍파 속에서도 결코 퇴색하지 않는 가족애의 진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기 때문이죠. 여백의 미학으로 삶의 진실을 꿰뚫어 보는 오즈 야스지로 거장의 최고작, 「동경 이야기」의 감동은 오래오래 우리 마음 깊이 남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