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샤츠의 진화론으로 본 장르의 생로병사
요즘 극장에서 개봉하는 블록버스터 영화들을 보며 묘한 피로감을 느껴보신 적이 있나요? 분명 화려한 볼거리는 늘어났는데 이야기는 어딘가 꼬여 있고, 전편을 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설정들이 가득해서 마치 공부를 해야만 즐길 수 있는 숙제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혹은 어린 시절 주말의 명화를 채우던 그 많던 서부극의 카우보이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궁금해 본 적은 없으신가요? 우리가 느끼는 이 권태와 의문은 단순히 영화의 질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그 장르가 나이를 먹었기 때문에 일어나는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영화사에는 이런 현상을 명쾌하게 설명해 주는 흥미로운 이론이 하나 있습니다. 미국의 영화학자 토마스 샤츠는 영화의 장르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태어나고, 성장하고, 늙고, 끝내 병들어 사라진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를 '장르의 진화 단계'라고 부르는데, 그는 거대한 자본이 투입되는 할리우드 영화들조차 인간의 생애 주기와 똑같은 4단계의 삶을 산다는 사실을 발견해 냈습니다.
어떤 장르가 세상에 처음 등장할 때, 그것은 마치 갓 태어난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이를 '실험 단계'라고 부르는데, 이때는 아직 정해진 규칙이나 뻔한 공식이 없습니다. 서부극의 조상 격인 1903년 작 <대열차강도>가 대표적입니다. 투박하고 거칠지만, 그 안에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날것의 에너지와 활력이 넘쳐흐릅니다. 관객이나 감독 모두 무엇이 정답인지 모르기에 이것저것 시도해보는 시기, 바로 장르의 유년기인 셈입니다.
수많은 실험을 거쳐 살아남은 장르는 이내 '고전 단계'라는 화려한 청년기를 맞이합니다. 우리가 흔히 '명작'이라 부르는 영화들이 대거 쏟아져 나오는 시기가 바로 이때입니다. 존 포드 감독의 <역마차>처럼, 선과 악은 명확하고 영웅은 고난 끝에 반드시 승리한다는 규칙이 완벽하게 자리를 잡습니다. 감독은 굳이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관객이 이야기를 이해할 것이라 믿고, 관객 역시 스크린 속의 낭만을 의심 없이 받아들입니다. 영화의 형식과 내용이 가장 완벽한 균형을 이루는 투명하고 아름다운 시절입니다.
하지만 영원한 청춘은 없듯이, 완벽함은 곧 지루함을 불러옵니다. 똑같은 권선징악 이야기에 관객들이 하품을 하기 시작하면, 장르는 생존을 위해 변신을 꾀합니다. 이것이 바로 '제련 단계'입니다.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장르는 이제 단순한 이야기 대신 화려한 기교와 복잡한 심리를 파고듭니다. <하이 눈>의 보안관처럼 영웅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악당에게도 사연이 생기며, 화면은 더욱 세련된 스타일로 치장됩니다. 영화는 깊어졌지만, 고전 단계가 주었던 명쾌하고 순수한 즐거움은 서서히 빛을 잃어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장르는 노년기이자 죽음의 단계인 '바로크 단계'에 도달합니다. 바로크는 원래 '일그러진 진주'를 뜻하는 말인데, 이 시기의 영화들은 내용보다 형식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립니다. 과거의 명작들을 대놓고 베끼거나 비꼬고, 장르의 규칙을 스스로 파괴하며 낄낄거립니다. 영웅은 비열해지고 폭력은 과장되며, 영화가 영화 스스로를 패러디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집니다. 1960년대의 스파게티 웨스턴이나, 최근 스스로의 세계관을 복잡하게 비틀고 있는 슈퍼히어로 영화들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관객은 이야기에 감동하기보다 "저걸 저렇게 비트네?" 하며 분석하게 되는데, 이는 장르가 대중과의 소통 능력을 잃고 박물관의 전시품이 되어가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결국 우리가 영화를 보며 느끼는 피로감이나, 특정 장르가 사라지는 아쉬움은 그 영화들이 '바로크 단계'라는 노년의 끝자락에 와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마냥 슬퍼할 필요는 없습니다. 토마스 샤츠의 이론이 우리에게 주는 진짜 교훈은, 늙어버린 서부극이 사라진 자리에 SF와 액션이라는 새로운 씨앗이 심어졌듯, 하나의 장르가 수명을 다하면 그 거름 위에서 반드시 새로운 이야기가 태어난다는 사실입니다.
영화는 그렇게 늙어가고, 또다시 태어납니다.
이것이 우리가 100년이 넘도록 극장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