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님이 춤을 출 때, 밈(Meme)은 죽는다

공중파 진출이 곧 문화적 사망 선고가 되는 이유

by 김형범

얼마 전, 유튜브 알고리즘에 이끌려 TV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 스타>의 클립 영상을 보다가 묘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게스트로 나온 젊은 아이돌이 요즘 유행한다는, 밈인 골반통신을 화려하게 선보이고 있었고, 나이가 좀 있는 다른 출연자들은 그 모습을 마치 기이한 서커스라도 보듯 신기해하며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화면 하단에는 화려한 자막으로 그 춤의 이름을 친절하게 알려주는 것도 모자라, 실제 유튜브와 숏츠 영상을 자료화면으로 띄워주며 이 '밈(Meme)'의 유래가 무엇인지 상세히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https://youtu.be/sHv_PgT8BuU?si=kDePnM63664I4CYD&t=95


하지만 정작 저를 생각에 잠기게 한 건 영상의 내용이 아니라, 그 밑에 달린 베스트 댓글이었습니다. "공중파에 나온 걸 보니, 이 밈도 이제 끝났구나." 50대인 저에게 그 짧은 한 문장은 단순한 악플이 아니라, 어떤 문화적 현상에 대한 날카로운 사망 진단서처럼 다가왔습니다. 영화 장르가 태동하고 전성기를 거쳐 비틀어지듯, 인터넷 속의 유행인 밈 역시 분명한 수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꿰뚫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왜 10대들의 열광적인 놀이터였던 밈은 TV에 나오고 어른들이 이해하게 되는 순간, 그 생명력을 잃고 '끝난 것'으로 취급받는 걸까요?


가장 큰 이유는 '맥락의 실종'과 '과잉 친절'에 있습니다. 밈은 기본적으로 '우리끼리만 아는 농담'이라는 배타성에서 출발합니다. 학교 쉬는 시간에 친구와 눈만 마주쳐도 웃음이 터지는 이유는 그들만이 공유하는 은밀한 맥락이 있기 때문입니다. 숏폼 영상 속에서 빠르게 지나가는 밈들은 설명하지 않아도 아는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윙크와 같습니다. 하지만 방송국이 이를 다루는 방식은 너무나 친절합니다. 앵커나 자막이 "이것이 요즘 MZ 세대의 유행입니다"라며 분석하고 해설하는 순간, 밈이 가진 날것의 재미는 증발해 버립니다. 설명이 필요한 농담은 이미 죽은 농담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밈의 생명력은 '희소성'과 기성세대에 대한 소심한 '저항'에서 나옵니다. 어른들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기괴한 춤이나 말투를 쓰면서 젊은 세대는 자신들만의 해방구를 확인하고 소속감을 느낍니다. 그런데 TV 속의 중년 연예인들이 그 춤을 따라 추고, 기업들이 광고에서 그 유행어를 사용해 물건을 판다면 어떻게 될까요? 나만의 개성을 표현하던 쿨한 도구가 순식간에 누구나 쓰는 흔해 빠진 공산품이 되어버리는 셈입니다. 젊은 세대에게 방송국이나 부장님의 '밈 따라 하기'는 공감의 제스처가 아니라, 자신들의 놀이터가 침범당했다는 신호이자 이제 딴 곳으로 떠날 때가 되었다는 알람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결국 "공중파에 나오면 끝물"이라는 댓글은 냉소적이지만 정확한 현실 인식입니다. 방송국은 대중성을 담보로 하기에 가장 안전하고 검증된 것만을 내보냅니다. 즉, TV에 밈이 나왔다는 건 그 유행이 이미 정점을 찍고 내려오는 중이며, 더 이상 위험하거나 새롭지 않다는 뜻입니다. 제가 <라디오 스타>의 친절한 설명을 보며 "아, 요새는 저게 유행이구나"라고 고개를 끄덕이는 그 순간, 역설적으로 그 유행은 생명을 다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굳이 씁쓸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모든 문화는 태어나고, 뜨겁게 타오르다, 결국 대중이라는 넓은 바다로 흘러가 소멸합니다. 밈이 사라진 자리에는 또다시 기성세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래서 더 매혹적인 새로운 유행이 태어날 테니까요. 우리는 그저 그 생로병사의 주기를 한 발짝 떨어져 지켜보며, 흐르는 시간을 실감하면 그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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