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중에 하루, 2월 25일
말년에 이른 그의 손가락은 험하게 뒤틀려 있었습니다. 지독한 류머티즘 관절염으로 전신은 서서히 굳어갔고, 급기야 제 힘으로 붓을 쥘 기력조차 남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휠체어에 몸을 맡긴 채, 마비된 손 위로 붓을 붕대로 꽁꽁 동여매고는 캔버스 위로 찬란한 색채를 쉼 없이 쏟아냈습니다.
살이 짓무르고 뼈가 깎이는 듯한 통증이 온몸을 휘감았습니다. 하지만 그 비명 같은 고통 속에서도 그의 입가에는 늘 고요한 미소가 머물렀습니다. 역설적이게도 그의 화폭은 그 어느 때보다 화사하고 생기 넘치는 빛으로 가득 찼습니다. 곁에서 이 처절한 투쟁을 지켜보던 지인이 고통을 무릅쓰고 그림을 그리는 이유를 묻자, 그는 나직이 대답했습니다.
고통은 지나가지만, 아름다움은 영원히 남기 때문입니다.
이 위대한 선언을 남긴 주인공은 인상주의의 거장,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그의 평화로운 그림을 보며 그가 온실 속 화초처럼 유복한 삶을 누렸으리라 짐작하곤 합니다. 하지만 르누아르의 생애는 세간의 추측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습니다. 가난한 양복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열세 살 어린 나이에 이미 도자기 공방의 직공으로 나서며 팍팍한 생계를 짊어져야 했습니다.
누구보다 일찍 삶의 고단함과 현실의 냉혹함을 뼈저리게 경험했던 셈입니다. 그런데 이 지독한 결핍과 고난은 오히려 그의 예술 철학을 지탱하는 단단한 뿌리가 되었습니다. 현실의 삶에 이미 슬프고 불쾌한 일이 가득하기에, 예술만큼은 마땅히 즐겁고 유쾌하며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이 그의 확고한 신념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르누아르의 그림 속에는 어두운 그림자나 절망의 흔적이 발붙일 곳이 없습니다. 햇살 아래 춤을 추는 사람들의 붉게 상기된 뺨, 선상 위에서 여유롭게 점심을 즐기는 이들의 경쾌한 웃음소리, 그리고 살결 위로 부서지는 따스한 빛의 율동만이 화면을 가득 채웁니다. 이는 현실의 비극을 외면한 비겁한 도피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삶의 유한함과 슬픔을 직시하면서도, 그 척박한 땅에서 끈질기게 기쁨의 씨앗을 길러내고자 했던 치열한 의지의 산물이었습니다.
세상의 어둠 속에서도 기어이 빛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것. 그것이 바로 르누아르가 세상을 긍정하는 방식이자, 무언가를 창조하는 자가 지닐 수 있는 가장 고결한 태도였습니다. 그가 남긴 생의 궤적을 돌아보면 인간이 비극을 어떻게 초월할 수 있는지 깊은 울림을 얻게 됩니다. 육체를 짓누르던 질병과 가난의 무게는 결국 시간 속으로 흩어질 필멸의 조건에 불과했습니다.
고통의 한복판에서 그가 붓을 묶어가며 빚어낸 찰나의 환희는 한 세기를 훌쩍 지난 오늘날까지 우리 곁에 찬란하게 살아 숨 쉽니다. 삶은 때로 모진 시련으로 우리를 무너뜨리려 하지만, 긍정의 시선으로 건져 올린 아름다움은 시공간을 넘어 타인을 위로하는 불멸의 구원이 됩니다. 르누아르가 탄생한 1841년 2월 25일, 그의 치열한 붓질이 남긴 유산을 마주하며 우리 삶 속에서 기어코 찾아내야 할 기쁨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