뤼미에르의 퇴근길, 우리가 놓친 찬란한 첫 페이지

거대한 충격보다 위대한 일상의 기록에 관하여

by 김형범

우리는 종종 강렬한 '사건'이 역사의 시작이어야 한다고 믿곤 합니다. 저 또한 그랬습니다. 영화의 역사를 떠올릴 때면 으레 스크린을 뚫고 나올 듯 달려오는 기차와, 그 기세에 눌려 비명을 지르며 상영관 밖으로 도망쳤다는 관객들의 소동극을 떠올렸습니다. <열차의 도착>이야말로 인류가 발명한 가장 완벽한 첫 번째 영화라고 확신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최근에야 알게 된 사실은 제 오랜 상식을 기분 좋게 뒤집어 놓았습니다. 영화사의 첫머리를 장식한 진짜 주인공은 돌진하는 기차가 아니라, 일과를 마치고 묵묵히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이었습니다.


왜 우리는 '퇴근하는 사람들' 대신 '달려오는 기차'를 첫 번째라 믿고 싶어 했을까요?

그 오해의 중심에는 기차의 도착을 둘러싸고 과장된 소문들이 남아 있습니다. 관객들이 혼비백산했다는 에피소드는 사실 영화라는 매체의 파급력을 강조하려고 후대에 덧입힌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에 가까웠습니다. 자극적인 서사와 시각적 충격이 있어야만 '시작'이라는 이름표를 붙이기에 어울린다고 여겼던 우리의 무의식이, 그 찬란한 오해를 사실로 굳혀버린 셈입니다.


그러나 기차의 굉음이 걷힌 자리에 남은 진짜 영화의 시작은 놀라울 정도로 담백합니다. 공장 문이 열리고 쏟아져 나오는 노동자들의 모습. 거기엔 대단한 연출도, 기승전결의 서사도 없습니다. 그저 흐르는 시간의 한 자락을 붙잡아둔 기록이 있을 뿐입니다.


흥미로운 대목은 바로 여기입니다. 130년 전 뤼미에르 형제가 렌즈에 담았던 그 무색무취한 퇴근길 풍경은, 지금 우리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별 의미 없이 찍어두는 친구의 뒷모습이나 거리의 풍경과 묘하게 겹칩니다. 거창한 예술적 야심 없이, 그저 '지금 이 순간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기록하려는 그 순수한 행위 말입니다.


영화의 시작이 '충격'이 아닌 '일상'이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묘한 해방감을 줍니다. 영화는 특별한 누군가의 전유물이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우리의 삶을 응시하는 데서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가장 의미심장한 순간은 늘 가장 의미 없어 보이는 일상 속에 숨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