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딸국질

by 김형범

탕-!


날카로운 총성이 학교 본관 뒷길의 정적을 찢었다. K-2 소총 끝에서 뿜어져 나온 화염이 어둠을 찰나의 순간 하얗게 태웠다. 좀비의 머리가 총탄에 으깨지며 바닥을 적셨다. 지훈은 능숙하게 노리쇠를 후퇴 고정해 잔탄을 확인하고 안전장치를 걸었다. 불과 몇 시간 전, 동아리 종강 모임에서 맥주잔을 기울이던 손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무거운 살육의 감각이었다. 지훈이 벤치에 앉아 있던 수진에게 다가갔다. 그의 군화 끝에 피가 진득하게 묻어났다.


"괜찮아? 늦어서 미안. 이제 가자.“


갑작스러운 긴급 복귀 명령에 지훈은 수진에게 이곳에서 딱 기다리라 신신당부한 뒤, 근처 거점 무기고로 달려가 무기를 챙겨 돌아온 참이었다. 지훈의 왼쪽 팔뚝에는 급하게 둘러맨 '계엄' 완장이 너덜거리고 있었다. 그는 하얗게 질린 채 떨고 있는 수진의 손을 꼭 쥐었다.


"가자. 지하철은 아직 막차가 있을 거야. 그거 타야 살 수 있어.“

두 사람은 깨진 보도블록과 버려진 가방들이 뒹구는 캠퍼스를 가로질러 지하철역 승강장으로 내려왔다. 부서진 형광등이 지직거리며 붉은 비상등과 교차하는 플랫폼은 거대한 짐승의 목구멍처럼 음산했다. 전광판에는 '막차'가 10분 뒤 도착한다는 문구가 외롭게 깜빡였다. 지훈은 자신이 지금껏 수진의 손을 피가 안 통할 정도로 꼭 잡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쑥스러운 듯 손을 놓고 짧게 깎은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그래도 아까 애들 마지막으로 다 봐서 다행이다. 난리 나기 직전에 너랑 같이 걷던 게 꼭 꿈같네.“


수진은 대답 대신 지훈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가 유난히 흐릿했다. 갑작스러운 충격 때문이라고 지훈은 생각했다.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봐? 나 안 죽어. 너는 꼭 집에 보낼게.”


짐짓 씩씩하게 웃어 보이는 지훈의 얼굴을 보며, 수진이 무언가 결심한 듯 입술을 달싹였다.

"지훈아, 사실 나...“


그녀의 고백이 이어지려던 찰나, 정적을 깨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딸꾹!”


갑작스러운 딸꾹질이었다. 수진은 당황해 제 입을 틀어막았지만, 어깨가 제멋대로 들썩였다. 지훈은 분위기가 깨진 게 아쉬우면서도 수진이 귀여워 피식 웃음이 났다.


"야, 이 상황에 딸꾹질이냐? 너무 놀라서 체했나 보네. 잠깐만 기다려봐.“

지훈은 플랫폼 한구석, 반쯤 파손된 자판기에서 먼지 쌓인 콜라 캔 하나를 뽑아 건넸다. "이거 마시고 숨 참아봐. 내가 옆에 있잖아. 괜찮아." 수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차가운 캔을 받아 들었다. 하지만 캔을 쥔 수진의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경련하고 있었다. 수진은 코를 막은 채 숨을 참고 꿀꺽꿀꺽 콜라를 마셨다.

잠시 정적.

멈춘 것 같았다. 지훈이 안도하며 웃으려는 순간, 다시 한번 수진의 어깨가 톡 튀어 올랐다. “딸꾹!” 콜라로도 해결되지 않는 질긴 딸꾹질이었다. 수진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고, 피부는 종잇장처럼 창백해지다 못해 핏기가 완전히 사라져갔다.

"안 되겠다. 이거 해보자. 혀를 최대한 길게 내밀어 봐.“


지훈이 먼저 혀를 ‘메롱’ 하듯 길게 내밀며 시범을 보였다. 수진도 울상이 된 채 혀를 길게 내밀었다. 폐허가 된 승강장에서 두 사람이 서로 혀를 내밀고 마주 보고 있는 모습은 우스꽝스러웠다. 수진의 혀는 이미 생기를 잃고 붉은 조명과 같은 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멈춘 것 같은데? 이제 그만할까?"

지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수진의 입술 사이로 다시 소리가 새어 나왔다. “딸꾹!” 수진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졌고, 그녀는 답답함과 알 수 없는 불안함이 뒤섞인 목소리로 짜증을 냈다.


"아, 진짜 왜 이래! 왜 안 멈추는데!"


화를 내는 수진의 목소리 낮게 갈라져 있었다. 지훈은 그녀의 화를 어떻게든 줄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려면 딸국질을 멈춰야 한다. 그때, 열차가 지난 역을 출발했다는 차임벨이 울렸다. 수진이 멍하게 터널 쪽을 바라보는 순간 지훈이 크게 소리쳤다.


“와아아아아악!!!”


수진은 자지러지듯 놀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얼굴을 감싸 쥐고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지훈은 당황해 엉겁결에 수진을 품에 꽉 안았다. 품 안에서 떨고 있는 그녀의 몸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미안, 미안해! 많이 놀랐어? 딸꾹질 멈추게 하려고 그런 건데... 수진아, 사실 나 너 예전부터 정말 좋아했어. 우리 제대로 시작하자."


애틋한 고백과 함께 지훈은 수진을 더 세게 끌어안았다. 그의 머릿속은 오직 수진과의 행복한 미래에 대한 상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의 몸이 기괴하게 뒤틀리며 그의 어깨를 물어뜯으려 입을 벌리는 것도, 그녀의 창백했던 피부가 회색빛으로 변하고 핏줄이 검게 불거져 나오는 것도 그는 알지 못했다.


딸꾹질은 마침내 멈췄다. 대신 죽음보다 깊은 적막 속에 수진의 거친 숨소리와 그르렁거림만이 지훈의 어깨를 적시고 있었다. 멀리서 마지막 열차의 헤드라이트가 두 사람을 비췄다. 지훈은 수진의 차가운 입술을 목덜미에서 느껴졌다.


"지금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타는 곳 안쪽으로 한 걸음 물러나 주시기 바랍니다"

안내 멘트 다음 출입문이 열렸다.

"거봐... 멈췄잖아. 가자.“

지훈이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기괴하게 뒤틀린 수많은 승객들이 수진과 똑같은 눈으로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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