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home)’의 어원은 ‘쉼’ 또는 ‘누워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완전하다고 느끼게 해 줄 어떤 무엇을 찾아 집을 떠나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끼지만, 또한 그만큼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가장 깊은 받아들임, 49p)
3년 가까이 자취생활을 하며, 나는 내 자취방을 ‘집’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누군가에게 말할 때에도, ‘집에서 쉬고 있다.’ ‘집 가는 중이다’라는 표현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집 대신 자취방을 넣어 표현하곤 한다.
‘자취방에서 잠시 쉬는 중이야.’
한 주가 끝나고 주말이 찾아오거나, 한 시즌·한 학기가 끝나고, 한 해에 두 번 있는 명절이 찾아오면 우리는 ‘집’으로 발걸음을 향한다. 집 냄새를 맡고 집에 머물러 있는 편안한 상태에 집중한다. 가족들 앞에선 평소에 부리지도 않는 애교도 부리고, 속에 담아두고 있었던 얘기들도 쏟아내 본다.
집에서의 나는 과거를 돌아보거나 미래를 계획하기보단, 현재의 나의 상태에 집중한다. 현재의 휴식에 집중하고, 지금 당장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집중한다. 내 인생을 타자화하고 평가하려 들지 않는다. 집은 그저 삶을 살아가고 그 삶을 온전히 느끼는 공간으로 존재한다.
집은 장소가 아니고, 물건이 아니며, 사람도 아닙니다. 집은 쉼입니다. ‘집(home)’의 어원은 ‘쉼’ 또는 ‘누워있음’을 의미합니다.
(가장 깊은 받아들임, 50p)
2년 가까이 살았던 자취방보다 1년밖에 되지 않은 본가가 나에게 더 큰 포근함과 안정감을 준다. 이상한 일이다. 집은 단순히 물리적인 ‘장소’의 개념을 넘어 수많은 가치가 내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그렇다. 내게 집이란 ‘사람이나 동물이 추위, 더위, 비바람 따위를 막고 그 속에 들어 살기 위하여 지은 건물.(네이버 국어사전)’ 따위가 아니다. 내가 가장 안전하다고 느끼는 곳, 내가 끝내 향하고자 하는 곳이 나의 ‘집’이다.
나에게도 집이 없는 순간이 있었고, 집을 갑자기 잃어버려 절망에 빠지는 순간도 있었다. 내가 가장 힘든 순간에 당장 돌아가 기댈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 벼랑 끝에 서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집을 갈구하고 방황한다. 급하게 전에 살던 집을 수리하기도, 조급하게 새로운 집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
우리는 과거를 반성하고, 미래를 계획하는 것이 삶을 살아가는 올바른 방식으로 여긴다. 그럼에도 결국 우리의 삶은 현재에 있다. 수많은 것들을 미리 걱정하고, 이미 벌어진 일에 자책하는 순간에도 우리는 집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우리가 향한 집은 따뜻한 온기가 가득하고, 그 온기 속 나의 삶을 온몸으로 잠시나마 느껴본다. 그것은 ‘쉼’이자 ‘현재’이다.
엄마는 항상 새벽에 누군가가 늦게 들어올 때면 부엌 등을 켜놓고 잠에 들었다. 어렸을 때의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어느새 나도 내 자취방에 현관등을 켜고 나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