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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숙 Dec 12. 2021

[식품-이금기굴소스] 죽은요리도 살리는 굴소스 한스푼

130여년의 역사를 가진 이금기(李錦記) 굴소스에 대해서


형님들 안녕하세요 아홉번째 글로 인사드리는

마케터 ‘김동숙, 김프로’ 입니다.


저는 10년정도 나 혼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오늘 뭐먹지?’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갑자기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구요?

자취를 해보신 분들은 공감 가실텐데요,


평일에는 회사에서 점심과 저녁을

해결 할 수 있지만

주말이 되면 어김없이

‘아 오늘은 뭘 먹어야 하나?’ 라는

질문을 머릿속으로 하게됩니다.


시켜먹는 것도 한 두번이지..

메뉴선택 하는 것도 스트레스고

배달음식은 왠지 모르게 찜찜한 느낌적인

느낌 때문에 조금 꺼리게 되네요.


그래서 최근 들어선 가까운 편의점에서

용기밥(햇반, 오뚜기밥 등)을 사서

냉동고 혹은 냉장 신선칸에 있는 재료들을

활용해 간단하게 요리? 를 해먹곤 합니다.


요리 때마다 저의 형편없는 요리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녀석 중에 하나!

프리미엄 이금기 굴소스 (국내는 오뚜기가 라이센싱한다.) / 출처 : ssg


‘이금기(李錦記) 굴소스’ 

(미원과 다시다도 있지만 어렸을 때부터

많이 먹으면 안좋다는 어머니의 말씀에

그나마 건강? 해보이는 굴소스를 택한다.

* 근데.. 굴소스도 MSG 덩어리라던데?)


죽은 요리도 굴소스 한 숟갈이면

고품격 요리가 되고

실제로 국내의 유명 중화요리점과

이탈리아 요리 전문점에도

공공연하게 쓰이고 있다는 ‘마법의 소스’


오늘은 평소에 냉장고 한켠에 자리잡고

있지만 별 관심 없었던


1888년 중국에서 태어난

‘이금기(李錦記) 굴소스’ 에 대한

브랜드 이야기와 마케팅에 대한 썰로

‘아는 척’ 하는 시간을 만들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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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살,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내생에 처음으로 부모님과 떨어져 혼자살게

되었다.


첫 자취는 자유로움 그 자체였다.

밤늦게 까지 술을 먹고 들어와도,

숙취로 1교시를 지각해도,

친구들과 게임을 밤새해도 잔소리 할 사람이

단 한명도 없었다.

자유라는게 이런거구나 라는걸 몸소 체험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났고

나는 군대에 입대했다.


2여년의 군복무 후, 또다시 자취를 하게되었다.

그 때의 자취는 20살의 자취 와는

조금 달랐다.


군대에서 규칙적이고 청결한 습관이 몸에

배어있었고 자연스럽게 내 생활도

군대의 좋은습관이 연장선으로 이어졌다.


그 때, 처음으로 요리라는 걸 해봤던 걸 같다.


처음으로 후라이팬을 사용해 볶음밥을

만들었고,

나름 데코레이션을 한다고 달걀후라이

위에 케첩으로 '스마일' 을 그렸다.


그렇게 10년이 흘렀고 이제는 내 주방엔

사용!은 할수 있는 조미료들이 몇개가 있다.

(여전히 요리를 잘 해먹지는 않는다..)


백선생님도 인정한 굴소스의 매직 / 출처 : MBC


요리에 관심을 가졌던 순간부터 나는

오늘 소개할 '이금기 굴소스'를 알았다.


달큰하지만 짭짤한 굴소스를 한스푼

떠서 내가 만든 요리에 넣고 볶아버리면

'아니, 소꿉놀이가 요리가 되네?'

라는 신세계를 경험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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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금기 굴소스' 는 1888년, 중국 광둥성

주하이시 난수이 에서

'이금성(李錦裳, 리캄성)'이 어민들을 상대로

운영하던 작은 찻집에서 실수로 발명되게 된다.


(왜 찻집에서 뜬금없이 굴소스냐? 라는

의문이 있을 수도 있는데

당시의 중국 찻집에서는 차 뿐만 아니라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요리도 같이 팔았다고 한다.)


당시 '난수이' 지방은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이기에

굴이 상당히 풍부했는데

그래서 이금성의 찻집 뿐 아니라 주변의

여러 찻집에서도 굴을 활용한 다양한 요리를 팔았다.


그러던 어느날 이금성은 굴을 넣고 스프를 끓이다가

불끄는 것을 깜빡 잊어버리게 되는데..

한참 시간이 지난 뒤, 생각이 나 돌아왔지만

이미 굴은 형체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갈색' 으로 졸아버려 냄비 바닥에 눌러붙어 있었다.


갈색으로 이미 졸아버린 굴소스를

버리기 아까워서 한스푼 떠먹게 되는데..

놀랍게도 엄청난 풍미와 맛이 나는 것이 아닌가!


장사꾼 이었던 이금성은 굴 스프가 아닌

굴 소스를 만들어 팔 생각을 했으며 이 때부터

그 굴소스에 자신의 이름을 붙여 팔기 시작한다.


(당시 광동에서는 대개 굴을 소금에 절여 말려

조미료로 사용했다고 하니 굴을 활용해

감칠맛을 내는 걸 익히 알고 있었던게 굴소스

개발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다.)

굴소스는 실수로 부터 만들어 졌다. / 출처 : 이금기 홈페이지


* Question. 굴소스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 굴소스는 굴 10kg 을 넣어야 겨우 1kg 을

     얻을 수 있다.

     또한 굴만 으로 갈색 소스가 되려면 거의

     10시간을 태우다시피 끓여야 가능하다.

     하여 굴농축액에 설탕과 소금, 옥수수전분,

     밀가루 등을 넣어 만든다.

     굴 함량은 10~75%로 다양한데 캐러맬을

     넣으면 색과 향이 더욱 진해진다.  

이금기는 '이금성의 가게' 라는 뜻이다. / 출처 : 이금기 홈페이지


혹자들은 '이금기' 가 굴소스를 만든 사람의

이름이라고 오해할 수 도 있는데

사실 '이금기'는

'이금성'의 '이금' 과 가게를 뜻하는 '기' 를 합쳐

만든 합성어 이다.


(당시, 중국어(특히 남방지역) 에서는 이름의 성이나

부분이름 혹은 전체이름에 '기(記)' 를 더하여

가게, 회사 등을 의마하는 뜻으로 사용하였다.)


이 감칠맛 나는 소스는 입소문이 나면서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된다.

(지금 먹어도 맛있는 이 소스가 식재료가 얼마없던

그 시기의 사람들이 먹었으니 아주 눈이 뒤집혔겠지)


(처음에는 포장해서 팔지 않았으며

손님들이 직접 집에 있는 병을 들고 가게를 찾아

다닐 정도 였다고 하니 그 인기가 어땠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서 난수이 지역에는

너도나도 굴소스를 판매하는 가게들이

생기게 되었다.

하지만 아류는 원조를 이기지 못하는 법!

이금기 굴소스는 이러한 시장상황에도

고공행진을 하게 된다.


이금기 마카오 1호점 사진 / 출처 : 이금기 유튜브


그러던 중, 1902년 뜻하지 않게

이금기 굴소스 공장에 큰 불이 나게 되었고

불이 난 후, 뜬금없이 이금성은

굴소스 공장을 난수이에서 '마카오'로

이주해 본격적인 생산을 시작하게 된다.

(당시 마카오는 홍콩으로 인해 점차 쇠락하던

항구 도시였으나 여전히 무역의 중심지였다.)


아니, 왜 갑자기 사업을 시작했던

난수이를 버리고 마카오로 간 것일까?


마카오는 400년 이상 중국 남부의 개방항구이자

국제 무역항으로 기능 했던 곳이었으며

해외시장으로 넓힐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곳

이기도 했다.

(불 난김에 생산거점을 옮겨버리는 이금성의

사업적 결단력에 박수를 보낸다.)


그 후, 1928년 이금성은 세상을 떠나게 되었고

그의 아들인 이시우난 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게 된다.

현재까지 이금기는 홍콩에 자리잡고 있다. / 출처 : 이금기 유튜브


1932년, 또다시 '이금기 굴소스' 회사는

'홍콩' 으로 거점을 옮기게 된다.

 (20여년 정도 마카오 에서 영업을 잘하고 있었는데

또 다시 본사를 옮기는 조금은 어처구니 없는 행동..)


당시, '이금기 굴소스' 가 맛있다 라는 소문이

마카오에서 홍콩까지 소문이 퍼졌으며

그로 인해 고객수요가 많아지자 국제통상의

중심지로 떠올랐던 홍콩으로 거점을 옮긴 것이었다.


여기서 이금기 의 제2의 도약이 시작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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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미국은 골드러쉬로 경제 부흥기를 다질 때였고

중국의 노동자들은 미국 뿐 아니라 호주로

돈을벌기 위해 이민을 많이 갔었다.


특히 미국 中 샌프란시스코, 시카코, 뉴욕,

하와이 등 으로 많이 갔는데 대부분의

중국 이민자들이 광둥성 출신 들이었고

이금기는 이 기회를 그냥 놓치지 않았다.


일명 '향수병' 마케팅


당시 초기 이민자 들은 미국에 정착해

주로 중식당을 차렸다.

(별다른 재주 없이도 부부가 요리를 하고 서빙을

하면 되었으니..)


여기서 자주 활용이 되었던 소스가 바로

'이금기 굴소스'

별거없는 요리에 간단한 첨가로

감칠맛을 더해줄 수 있으니 광둥성 출신의

이민자 들은 눈이 뒤집힐 수 밖에 없었던

것 이다.


이를 틈새로 노린 이금기는 '북미화교' 들을

대상으로 본격적으로 마케팅을 하게 되면

시장을 넓힐 수 있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고

그 시기 맞춰 우연히도 미국과 중국 간 화해모드가

조성되게 되었다.

(역시 성공하려고 하면 운도 따라줘야 한다.)

1972년 美 닉슨대통령 - 中 마오쩌중 주석 만남 / 출처 : zum 뉴스


1972년, 미국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게

되면서 미중화해 모드가 자연스레 조성되었고,

중국이 닉슨 대통령에게 상징동물인 팬더

암수 1쌍을 선물 한게 화제가 되면서

일시적으로 미국에 중국우호 바람이 불게되었고

이틈을 타 이금기는 굴소스에 '팬더' 캐릭터를

삽입해 시판을 시작한다.


이금기 팬더 굴소스 이미지 / 출처 : 구글


하여 기존에는 삽화형식의 굴소스가 어느나라

소스인지 몰랐던 미국인들도

판다 캐릭터를 보고

'아~ 우리랑 우호적인 중국소스 구나~'

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었다.


더군다나 기존의 삽화 디자인의 굴소스는

다소 가격대가 높은 프리미엄 굴소스 였는데

보다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해

'판다 디자인 굴소스' 는 가격을 낮춰

미국 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빠르게

유통 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이에 발맞춰 이금기는 기존

'굴소스' 와 '새우장' 밖에 없던 제품 라인업을

 다양한 맛의 소스로 확대해 나가면서

시장점유율을 다시한번 치고나가기 시작한다.

(실제로 미국 굴소스 시장 MS 90% 이상이다.)

* 참고로 매일 전 세계에서 판리는 굴소스의

   숫자는 약 100만병 쯤 된다.

(눈 한번 깜빡일 때마다 10병씩 팔린다는 소리)


1990년대에는 3대 회장인 이만탓(李文達) 회장

이 본격적으로 이금기를 이끌었는데 이 회장은

이금기 소스 SKU를 약 3,000여개 까지 확대한

장본인으로 굴소스와 더불어 현재 중국소스의

쌍두마차인 'XO소스(혹은 XO장)'

만든 사람이다.

이금기 xo 소스 / 출처 : 이금기 홈페이지


(XO소스는 미식가의 소스로 불리우며

1980년대에 홍콩에서 시작되었고 '말린관자살,

건새우,건고추, 마늘' 등 이 주재료가 되는 소스다.

이금기는 XO소스를 대량생산을 한 첫 회사로

세계 각지에 XO소스를 수출/알리게 한 대표적인

회사이다.)

* 참고로 XO 라는 제품이름은 브랜디 등급표기인

   XO 에서 따온 것으로 (Extra Old)의 줄임말이다.

  이는 XO 등급 브랜디에 필적할 만틈 고급스러운

  소스 라는 뜻으로 지은 이름이다.

  (실제로 XO소스를 고급술병과 비슷한 모양의

   병에 담아파는 마케팅도 존재한다.)


현재 이금기는 전용 굴 양식장을 운영하며

24시간 철저히 품질 관리를 하고 있다.


또한 회사 모토인 '100-1=0' 을 내세워 전 회사

직원들에게 공통된 정신을 공유하고 있다.

(100-1=0 은 100번 잘해도 한 번 실수로 모든 것

이 끝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1988년엔 회사 100주년을 맞아 과거의

회사 CI를 바꿨다. (현재까지도 이로고를 사용하고 있다.)

좌) ~1987년 까지 로고 / 우) 1988년 이후 로고 / 출처 : 이금기 홈페이지


빨간색 다리는 중국문화, 그리고 이금기의 비전인

동서양간의 식문화 교류를 뜻하며

보라색의 이금기(LEE KUM KEE) 글씨색은

영원한 창업정신을 뜻한다고 한다.

(보라색이 직관력, 통찰력, 상상력 등을 상징한다.)


현재 소스시장은 그야말로 각축전이다.

세계 곳곳에서 그 나라, 지역에 맞는 여러가지

소스 들이 개발, 출시 되고 있다.

(굴소스도 더이상 이금기굴소스가 아닌 현지회사의

굴소스가 생산/시판 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시점에서 이금기가 어떠한 방법과 전략으로

과거와 같은 영화를 누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품질' 과 '장인정신' 으로 대표되는

이금기의 기업정신이 무너지지 않는 이상

앞으로의 100년도 상당한 기대를 갖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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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sku 가 넘는 이금기의 다양한 제품들 / 출처 : 이금기 홈페이지


이금기굴소스는 여느 히트제품과 마찬가지로

실수로 시작했다.

그래서 혹자는 굴소스는 노력이라기 보다

우연의 산물이 아닌가? 라는 말을 하곤한다.


하지만, 이금기는 행운이 떨어져도

잡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것 처럼 이금기는

그 행운을 잡았고 발전시켰다고 말한다.


이번 '이금기 굴소스' 편은 제조사의 기본인

'품질' 이외에도 마케팅과 브랜딩 측면에서

깨달음을 주었다.


1. 헤리티지를 그대로 유지하는 뚝심

    그리고 그 헤리티지를 단순 옛것이 아닌

    '고품격/프리미엄' 으로 사용하는

    회사의 마케팅 전략.


- 실제로 '이금기 굴소스'의 가장

  프리미엄 라인업은 삽화그림의 디자인이

  그려진 제품이다.

  이 디자인은 100년 전 부터 쓰기 시작했으며

  당시 인쇄회사에 의뢰했는데 그림을 그리는

  직원이 상상으로 그렸다고 한다.


  이 디자인을 약 130년이 넘는동안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이유는 이 상표를 보고 자연스럽게

  '이금기' 를 떠올 릴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라고한다.


   시대가 많이 변하면서 과거의 디자인을

   현 트렌드에 맞게 변형 혹은 없애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지속적으로 유지한다는 점에서

   자신감과 뚝심을 엿볼 수 있었다.


 * 이금기 는 비상장 회사로 가족경영을 중심

   으로 하는 회사다.

   주식회사로 상장하게 되면 현재보다 더 큰

   이익구조로 운영할 수 있게 되겠지만

   주주가 바뀌게 되면 회사의 영속성이

   변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니..

   이 부분 또한 대단하다고 느꼈다.


2. 시류를 반영한 깜찍한 Second line up 런칭.

 
    - 앞서 글로 적었던 '팬더' 디자인 삽입은

       시대의 이슈와 대중성, 그리고 제품가격

       포트폴리오 구성 등 다양한 측면으로 활용한

       탁월한 전략 이었다고 생각된다.


      - 단순 디자인변경이 아닌 가격까지 고려한

        지금의 이금기의 심볼을 만들어준 가장

        성공적인 마케팅이 아니었나 싶다.

  

3. 잘 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한다.


     - '사람이 있는 곳에 이금기가 있다.' 가

        회사의 목표.

        즉, 중국 음식문화를 세계에 널리 알리고

        싶었는데 그 목표는 거의 다 이뤘다고 한다.

   
       - 하여 두번째 목표는 중국 약초로 만든

        '건강식품' 을 세계에 보급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1992년 부터 자회사인

         '난팡이금기(南方李錦記)' 를 세워

         한방건강식품을 생산하여 판매하고 있다.


       - 식품사업에서 건기식으로 확대해 나가는 건

         현 시대 식품회사들의 당연한? 루트처럼 되고

         있으나 과거부터 이러한 방향성을 가지고

         회사운영을 하고 있다는 점은 실로 놀랍다.


우연한 발견을 우연으로 그냥 지나치지 않고

그 우연이 우연이 아님을 느끼고

기민하게 운명으로 돌리는 건 상당한 내공과

통찰력이 필요하다.


지금 내 앞,옆에 놓인 이 수많은 일들이

어쩌면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 있는

중요한 트리거가 될 수 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역시 하루를 그냥 보내면 안되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겨울이 본격적으로 왔다.

살 찌기 참 좋은 계절이다.

난 오늘 하루를 그냥 보내지 않기 위해

조용히 냉장고에 있는

'이금기 굴소스' 를 꺼내 볶음밥 2인분

만들어 혼자 다 먹어야 겠다.


이상 마케터 김동숙, 김프로 였습니다.

편안한 한 주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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