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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윌마 Nov 02. 2020

아몬드, 손원평

진짜 감정과 행동으로 무장한 새로운 종의 탄생

할머니는 윤재더러 '예쁜 괴물'이란다.
윤재는 아몬드만 한 편도체를 가졌다.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웃지도 울지도 않는다.
또래에 비해 겁이 없고 침착하다.
윤재는 예쁜 아이일까?
아니면 괴물일까?

윤재는 남들과 다르다.
그런데 그걸 들키면 안 된다.
자신은 불편하지 않는데,
남들은 못 견디게 불편한가 보다.
다르면 괴물이 되는 세상.
할머니는 이런 주변을 향해 지들 대가리 속도 모르는 것들이라고 일갈한다.

윤재는 상황극의 주인공이다.
행간을 알 수 없으니
'고마워' '미안해'라고 말해야 하는 상황을
배워서 몸에 익힌다.
두 단어는 마법의 단어다.
윤재의 삶은 패턴화 되었다.
어느 순간에 궁금해야 하는지도 패턴으로 배웠다.
패턴은 시작되면 루틴 하게 진행된다.
위험 여부와 관계없다.
곤이를 찾아 위험천만한 철사의 영역에 들어간 것도 패턴의 힘이다.
헌책방은 혼자서 패턴화 된 일을 할 수 있는 안성맞춤 공간이다.
엄마는 윤재를 위해 많은 공부를 한 것 같다.

곤이는 어려서 엄마를 잃었다.
보육원과 소년원이 집이었다.
사랑보다는 생존이 먼저였다.
주위는 곤이에게 공감 없는 관심뿐이다.
자기들에게 피해를 줄지도 모른다는 관심.
당면한 일은 당면할 뿐이어서일까.
사람의 언어는 창백하다.
때리고 부수고 욕하는 곤이는 표현이 되는데
곤이의 진짜 마음은 어떻게 표현되지 않는다.

윤재는 보이는 그 자체로 존재한다.
곤이는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인다.
도라는 스스로 존재하는 아이다.
아이들은 모두 단순하고 투명하다.

윤재는 감정이라는 샘물을 발견한다.
바다에까지 이르려면 아직 멀었지만,
엄마, 할머니, 주인집 심 박사, 곤이, 곤이 아빠 윤 교수, 여자 친구 도라와 관계 속에서 스스로 진화했다.
편도체가 자연스럽게 커졌을지도 모른다.
편도체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관심 없다.
윤재는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척하는 사람이 아닌
진짜 감정과 행동으로 무장한 새로운 종으로 진화했다.

곤이는 감정이 바다 같은 아이다.
공감 없는 시선에는 격정의 바다를 보여준다.
곤이에게 인생은 손을 잡아주던 엄마가 갑자기 사라지는 것이고 자신을 믿어준다는 것은 바람과 같은 것이다.
고통과 자기 비하라는 틀에 자신을 가둔다.
윤재의 공감 어린 사랑으로
곤이는 어둠의 틀을 깨부순다.
바다 깊은 곳에 숨어 있던
스스로에 대한 사랑을 발견한다.
곤이는 착한 괴물이다.

도라는 달리는 자신을 꿈꾼다.
부모님은 반대하는 바람이지만
도라가 달리면 바람이 일고
그곳은 꽃 향기가 가득하다.
그 파동이 윤재를 자극했을까?
감정을 모르는 윤재는 도라와 입을 맞춘다.
몸 전체가 북이 되어 울린다.
도라는 육상부가 있는 학교를 찾아간다.

이이들은 그렇게 산 하나를 넘었다.

아이들을 거울삼아 내 자신을 비춰본다.
처음에 윤재는 낯설었다.
곤이와 도라도 낯설었다.
감정을 모르는 것이 낯설었고
감정이 폭발하는 것에 낯설었다.
나에게 감정이란 무엇일까?

알고 나면 결코 예전과 같을 수 없다.
예전과 같을 수 없는 나라면 행동은 필수다.
알고도 행동하지 않는 자신이 두려워
감정을 숨기고 억누른다.
'이게 니 진심이야?'
나는 윤재와 곤이 사이에서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채로 서 있다.
나는 예쁜 괴물이다.
어제는 '예쁜'에 방점을 찍었다.
오늘은 '괴물'에 방점을 찍는다.
내일은 어디에 방점을 찍을까?
일상을 살아내는 우리에게 영원히 피할 수 없는 제다.
죽기 전까지 예쁜 괴물로 살아갈 것이다.
면서도 알지 못하는 척하는 사람이 아닌
진짜 감정과 행동으로 사랑하고 싶다.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도,
괴물로 만드는 것도 사랑이다.
작가 손원평은 <아몬드>에 따뜻함을 담아

우리를 꼭 안아준다.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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