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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빛 Nov 28. 2023

어떤 고민

고민을 들어준다는 것은 해결을 위함일까 위로를 위함일까


어떤 여자가 있다. 그녀의 나이는 스물세 살. 대학생이다. 그녀는 2년째 만나는 남자친구가 있는데, 아이가 둘이 있고 띠동갑인 이혼남이다. 남자는 잘생긴 편이고 자상하다. 남자는 건설현장에서 일을 하는데, 겨울에는 일이 별로 없어 쉬는 날이 많다고 한다. 저녁에는 술을 자주 마신다.


그녀는 처음 이 남자를 동네 카페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잘생긴 외모에 호감을 느껴 연락을 주고받다가, 남자가 띠동갑임에 1차 충격을 받고 아이가 둘이 있다는 말에  2차 충격을 받아서 헤어짐을 고했다. 그러나 사람 자체는 착하고 자상했으므로, 그녀는 곧 다시 그에게로 돌아오곤 했다. 헤어지고 싶은데 못 헤어지는, 아이러니한 상태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어릴 때 부모님이 이혼을 하여 바쁜 엄마의 손에 자라 늘 정서적으로 허전함을 느꼈다. 남자는 그 불안정한 정서를 감싸주는 따뜻함을 지녔기 때문에, 그녀는 남자에게 끌린 것 같다고 했다.


그런 남자가 어느 날, 그녀에게 결혼을 하자고 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극대노 하셨고, 인연을 끊겠다는 모진 소리까지 듣게 된 그녀는 망설였다. 남자는 좋은 사람 같다고 생각하지만, 그녀는 나이가 어리고 학생인 데다, 아이 둘을 키울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저녁에 술을 자주 마시는 문제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불안정한 남자의 직업도 그랬다. 겨울에는 거의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남자의 자상함과 따뜻함 때문에 헤어지는 것도 고민이라고 했다. 다시는 이런 성품의 남자를 못 만날 것 같다고. 정말 착한 사람이라고.


당신이라면, 그녀에게 어떤 조언을 줄 것 같은가?




길고도 짧았던 한 해가 또 지나가려나보다. 어김없이 연말이 돌아왔다. 나는 동네 작은 도서관에서 봉사를 하는데, 이번에 연말 겸 이벤트로 고민편지를 받기로 했다. 특정한 메일 주소로 고민편지를 보내주면, 그에 맞는 답장을 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편지는, 내가 받은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였다.


나는 편지를 받고 한참을 고민했다. 이 고민을 “조언”을 해줘야 하는지, “위로“를 해줘야 하는지 애매했기 때문이었다.

절대로 안됩니다, 그 남자와는 헤어지세요!라고 답장을 하면 상대에게 상처를 줄 것 같았고, 힘내세요, 두 분의 미래를 응원합니다! 하고 하면 왠지 양심 상 안될 것(?) 같았다.

꼰대 같은 말일 수도 있지만, 살아보니 어른들이 반대하는 것은 이유가 있었다. 그걸 절실히 느끼는 나이가 되다 보니, 게다가 딸을 키우다 보니 감정 이입이 되었다.

솔직히 잘 살 수도 있다. 두 사람 사이에 꽃길이 펼쳐질 수도 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스물세 살짜리가 갑자기 아이들 둘의 엄마를 하는 것도, 나이 차이도, 그녀의 미래를 위함에도 이 결혼은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이 맞다고 판단되었다. 나는 일부러 더 냉정하게 말해주기로 결정했다. 솔직히 내 딸이었으면 등짝을 때리고도 남았을 것이다.




등짝 스매싱 각의(?) 편지를 다 쓰고 회원장님께 보고를 드렸다.

그랬더니 회원장님이 정색을 하셨다.


“ 제 생각에는 반대를 하시는 것보다.. 그냥 응원한다고 하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너무 냉정하게 쓰신 것 같은데…. “


나는 난감해졌다.


“음.. 저도 그걸로 엄청 고민을 했는데요.. 이 여자는 어쩌면 인생 전체가 바뀔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위로 보다는 냉정하게 말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작성했습니다만.. “


“네. 말씀이 이해는 되지만요, 그래도 위로가 더 낫지

않을까요..? “


우리는 회원들과 함께 고민해 보기로 했다. 그러나 회원들의 의견도 매우 갈렸다. 결국 6대 4로 “위로” 쪽으로 방향이 가게 되었는데, 나는 고민 끝에 그만두는 쪽을 택했다.


어쩌면 내 편지 한 통으로 이 여자의 인생이 바뀔 수도 있다. 그녀가 혹시나 나중에 결혼 후 삶이 힘들 때 쓸데없는 나의 응원으로(빈 껍데기 같은, 나는 이 결혼을 응원해 줄 마음이 없기 때문에) 나를 원망하게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결정은 그녀가 하겠지만 주변에 상의할 사람이 없어 편지를 보낸 사람에게 단순한 응원만을 해 줄 수는 없었다.


결국 나는 내 의견을 피력하고, 그만두기로 했다.




그녀는 다른 분이 보낸 편지를 잘 받았는지 모르겠다.

또한 그분은 어떤 내용으로 편지를 보냈는지도 궁금하다. 응원을 했을까 조언을 했을까.


어떤 결정이든 그녀는 잘 판단하리라 믿는다. 그러나 내가 그녀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단 하나.


세상에 너를 사랑해 주는, 자상한 남자는 얼마든지 있다. 세상을 넓게 보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보라. 부모님이 반대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이해가 안 되겠지만, 나이가 들면 저절로 깨닫게 될 것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 사랑이 마지막처럼 느껴지지만, 항상 첫사랑처럼 사랑은 또 온다.





* 사연은 각색하였으며, 동의 하에 구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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