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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사자 Apr 30. 2024

처음보는 살벌함이었다

이래서 아무나 건드리면 안되는 것이다

  소풍을 가는 것은 초등학생 아이들에게 무척이나 설레는 일이다. 꽉 막힌 직육면체의 교실 안에서의 생활을 벗어나 탁 트인 교외로 나간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기대되는 일이었는지 모른다. 게다가 엄마가 정성스럽게 싸주신 도시락을 먹으면서, 웃고 떠들며 친구들이 장기자랑하는 것도 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4학년 소풍 때였다. 아마도 근처에 있는 왕릉이 있는 공원으로 소풍을 갔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도 무슨 소풍을 무덤가로 갔을까 싶지만 의외로 그런 곳이 학교 단위로 소풍을 와서 단체활동을 하기에 적합한 곳이다. 



  소풍이라 해봤자 가서 점심먹고 좀 놀다가 돌아오는 것이니, 평소 수업하는 날보다 약간 늦은 시간에 모든 일정이 끝나게 된다. 아직은 초등학생들이라 개인행동은 절대 금지시되었으니 모든 일정이 반별로 움직이는 것이었고, 화장실을 갈 때도 꼭 정해진 시간에 동시에 다녀와야 했다. 그리고 군대에서처럼 두줄로 줄을 서서 뒤로 번호를 부르면서 인원파악을 하고, 인원이 맞다는 것이 확인되어야만 이동할 수 있었다. 


  

  당시 소풍에서도 점심을 먹고 어딘가로 이동하기 전 화장실 타임을 갖고 있었다. 반 아이들이 줄을 서서 오와 열을 맞추고 모든 인원들이 다 모이길 기다리고 있는데, 병력 대열의 오와 열이 무너지면서 두 명의 아이들이 서로 엉켜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미처 누군가 말릴 틈도 없이 한 아이가 손에 들고 있는 도시락 통으로 다른 아이의 머리를 미친듯이 여러차례 가격하고 있었다. 잊혀지지 않는 처음보는 살벌함이었다.



  두 부류의 아이가 있다. 하나는 공부도 어느정도 하면서 운동도 제법 하고, 외향적인데다가 약간 건들거리는 스타일의 아이다. 그 아이의 이름은 성훈이었는데 그는 친구들도 많고, 목소리도 큰 편이다. 다른 하나는 공부는 잘 못하고 조용한 데다가 눈에 띄지 않는 스타일이다. 그 아이의 이름은 원일이었는데 그는 누군가 건드리지 않는 한 결코 다른 사람과 시비가 붙는 일이 없는 아이다. 이 두 아이가 서로 대화를 했던 적은 없었다. 화장실을 다녀오는 짧은 시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성훈이가 먼저 시비를 걸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 특유의 건들거림으로 알 수 있었고, 내 경험상 성훈이는 장난으로 시작해 폭력으로 끝나는 일이 많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날, 나는 처음으로 내 예상이 완전 빗나간 결과를 보고 있었다. 비록 도시락통이라는 양철로 만든 무기를 사용하긴 했지만 사람을 잘못 건드리면 큰일 난다는 것을 성훈이가 깨달았을 것이다. 나도 평소에 원일이한테 장난도 치고 약간 소심한 아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그렇게 싸우는 것을 보니 사람이 달라보였다. 성훈이는 소풍 도중에 병원으로 가서 치료를 받았고, 머리를 열바늘 이상 꼬맸다고 했다. 그 싸움으로 원일이가 징계를 받지는 않았다. 그 후에 원일이가 다시 누군가와 싸우는 일도 없었다. 원래처럼 조용하게 눈에 띄지 않는 아이로 지냈다. 



  성훈이는 나와 초중고를 모두 같은 학교를 다녔는데, 본래 가진 성격이 전혀 변하지 않았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까지도 여전히 자기보다 약해 보이는 애들에게 장난치고 때리고 하는 일이 여러번 있었다. 고등학교 수학여행을 가서도 숙소에서 장난으로 시작된 베개싸움이 이 놈 때문에 주먹질이 되었으니 나는 그 과정을 다 목격했는데, 왜 그렇게 발끈했는지 아직도 이해가 되질 않는다.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나는데 공부는 좀 했으니 어떻게든 사회에 기여를 하면서 살고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혹시나 주먹질 때문에 잘못되지는 않았을까 괜한 생각이 들었다.






사진: UnsplashMateusz Wacław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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