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떨어지지 않을거에요 절대로
가족과 떨어지게 될 거라고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가족은 언제나 함께 할 거라고 굳게 믿었고, 한번도 의심해보지 않았다. 처음으로 가족을 다시 보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이 들었던 순간을 기억한다. 어렸을 때, 서울 남쪽 지역에 살았던 우리 가족은 종종 다른 동네에서 외할머니가 찾아오시곤 했다. 가게 일을 하셨던 엄마를 보러 오셔서 며칠씩 머물다 가셨는데, 가끔씩 돌아가실 때 형과 나를 외가로 데리고 가셔서 며칠 더 돌봐주시곤 하셨다. 할머니와 한 집에서 살던 사촌 동생도 자주 할머니와 함께 우리 집에 와서 지내곤 해서 나이가 엇비슷한 우리들은 즐겁게 노는 경우가 많았다.
한번은 며칠을 우리 집에 계시던 할머니와 함께 외가로 가기 위해 형과 사촌동생을 포함해서 네 명이 지하철을 탔었다. 당시 지하철 노선도를 거의 외우고 있던 나는 어디에서 내려야 할머니 댁에 갈 수 있는지를 세어가며 가고 있었다. 20정거장 이상을 가야 도착하는 순환 노선에서 내려야 할 역이 얼마 안남았을 때, 나는 언제 내리면 되는지를 생각 중이었다. 그리고 내가 내려야 할 시점이라는 판단이 들어 자신있게 하차했는데, 전에 보던 그 역이 아니었다. 순간의 당황과 함께 뒤를 돌아보니 내게 손짓을 하며 얼른 타라고 소리치시는 할머니의 목소리와 주름진 할머니의 얼굴이 보였고, 양 옆에 서있는 형과 사촌동생의 모습도 보였다. 다행히도 문이 닫히기 전에 다시 전동차에 탈 수 있었고, 무사히 다음 역에 내릴 수 있었다.
그 당시에 들었던 생각이 지금도 생생하다. 만약에 문이 닫혔다면? 나는 가족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강하게 들었다. 전동차 문이 닫히고, 전철이 출발해 버렸다면 나만 혼자 남겨져서 다시 사랑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에서 보았던 구걸하는 소년처럼 나도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까지 하게 됐다. 당시 친절한 형은 나를 붙들고 네가 다시 차에 타서 너무 다행이라고 말해주었다. 형은 그때나 지금이나 참 친절하다.
아마도 그 일을 겪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일텐데, 유치원에서 단체로 소풍을 서울 근교의 한 놀이동산으로 간 적이 있었다. 엄마와 함께 간 소풍이었고, 초반에는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있다. 날씨도 좋았고, 친구들과 놀았던 경험도 내게는 즐거운 추억이 되었다. 그렇게 소풍을 마칠 때쯤 유치원 원장 선생님이 모두를 한 곳으로 부르며 줄을 세우던 때였다. 친구와 뛰어놀던 나도 모이라는 소리를 들었고, 그곳으로 가려고 하던 참이었는데, 자세히 기억은 안나지만 어떤 놀이기구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내 기억으로는 잠시 한눈을 팔았던 것 같은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우리 일행들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길을 잃었고, 전철에서 한정거장 먼저 내렸던 그 때가 떠올랐는지 혼자 남겨졌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몰려왔다. 나는 방향을 잃은 채 뛰어다니며 우리 일행을 찾아다녔고, 찾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울음이 터졌다.
다행히 6살 어린 남자아이가 혼자서 울고 있는 모습을 모두가 그냥 지나치지는 않았다. 그 놀이동산에 소풍을 온 다른 유치원 선생님이 나를 이끌어주었다. 길을 잃었다는 것을 직감하고 내 손을 끌어 한 건물로 데려가셨다. 짙은 고동색의 가죽 쇼파가 있었던 그 곳은 놀이동산의 미아보호소였고, 사각 안경을 낀 중년의 남성분이 나를 진정시켰다. 미동도 없이 고동색 소파에 앉아서 테이블을 바라보고 있는 내 눈 앞에 새하얀 종이가 보였다. 그 남성은 내게 이름과 나이를 물어보았다. 내 이름을 듣고 한번에 정확히 적었던 사람들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사람이 그 분이다.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들은 보통 내 이름을 한번에 정확히 적지 못했다. 두번 세번 물어보거나 다르게 말하는 것이 보통인데, 그 분은 한번에 바로 알아듣고 적었던 기억이 또렷이 난다. 그리고 혹시 주소와 전화번호를 아는지도 물어보았는데, 나는 또박또박 대답하였고, 남성치곤 매우 예쁜 글씨체를 가진 그 분은 내가 말하는대로 종이에 적어갔다. 가족 외에 전화번호와 주소를 알려준 최초의 사람이었다.
그 후에는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아마도 놀이동산 전체에 방송을 했을 것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가 나타났다. 나는 이미 감정을 추스리고 차분해진 모습으로 엄마를 맞이할 수 있었다. 엄마는 나를 안아주시고 살펴보신 후 내 손을 잡고 미아보호소 직원분들께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일행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면서 엄마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료수를 하나 사주셨다. 다시 만난 유치원 사람들은 나를 많이 걱정했다며 찾아서 다행이라고 너무 다행이라고 함께 기뻐해주셨다.
나중에 들은 말이지만, 내가 없어지자 엄마도 나처럼 나를 찾아 여기저기 뛰어다니셨다고 한다. 나보다 더 큰 걱정을 하셨을텐데 당시에는 다시 만나서 너무 다행이라고만 생각했고 엄마가 얼마나 걱정이 많으셨을까 하는 생각은 못했던 것 같다. 엄마는 다른 이야기도 해주셨는데, 내가 없어진 걸 안 이후에 걱정을 하고 함께 찾아봐준 사람도 있었지만 일부는 돌아갈 차 시간을 걱정하며 집에 갈 생각을 먼저 한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엄마는 그게 너무 화가 났지만 나를 찾는 것이 우선이라 참았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불행을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내가 잠시 사라졌다 다시 나타난 것은 나와 엄마를 제외한 그들에게는 그저 하나의 흔히 있는 일 중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당시의 일이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또렷한 기억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