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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파물꼬기 Oct 10. 2023

아무튼 물고기 살려!

밤호수 편집실

어느 금요일 새벽 1시, 제주도 바닷가 지하실 창고 베테랑 편집자 8인이 모여있다. 무슨 일일까? 이 야심한 밤에 무슨 '모략'을 하는 걸까?   


지하실 방에는 긴 사무용 책상과 의자 8개, 천정은 마감이 되지 않아 벽 시멘트가 그대로 보였다. 천정에는 외줄로 연결된 형광등 2개가 위태롭게 매달려있다.


희미한 불빛과 자욱한 담배연기 사이로 테이블 중앙 의자에는 사람이 보인다. 그는 베레모 쓰고 파이프 담배를 물고 있는 20년 차 편집장이다. 편집장 양쪽 옆에는 10년 차 편집팀장들이 위엄 있게 문서를 빠르게 훌터보고 있다. 각 팀장 옆으로는 서열순으로 팀원들이 앉아 심각한 표정으로 '아무튼 물고기'를 째려보고 있다.


선 검토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난상 토론이  1시간 이상 진행되었다.  편집장은 보자마자 원고를 쓰레기통에 쑤셔 넣으며 말했다. "도저히 살릴 수가 없는 원고입니다."  


편집장은 심폐 소생이 불가하다는 결론을 빠르게 내린 것이다. 그리고 제목과 목차,  메시지를 처음부터 다시 작성하라는 명령을 하달했다. 8인의 베테랑 편집장, 편집자들의 날카로운 손길은 실로 놀라웠다. 모든 허접한 문장들과 필요 없는 메시지들이 단번에 잘라진 대나무의 단면처럼 매끄럽고 부드러워졌다.


물론, 이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3시간 넘게 난상 토론이 진행되었다. 그만큼 내 글은 아직 세상에 나오기는 어려운 글이라는 반증이었으리라. 무의식의 세계에서 나오는 방언처럼 다양하고 예리한 의견들이 이렇게 쏟아져 나왔다.  


아무튼 물고기 살려!

아무튼 물고기, 딸아이 작품, 나보다 백배 잘 그림


● 20년 차 편집장


현재 소제목은 다 삭제하는 게 좋겠어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요. 이건 아니에요.  출판시장이 어려우니 단행본 기준으로 40개 정도 300Pg 분량으로 먼저 만들죠. 그리고 각 소제목 주제는  매력적인 물고기, 물고기와 가족, 어항에 놓인 집 등의 물고기 관련하여  테마별로 분류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10년 차 편집 1팀장


아무튼 시리즈는 170pg 분량으로 그리 많은 글이 필요치 않아요.  그 형식에 따라 글의 개수를 13개 정도 만드는 게 좋겠어요. 그리고 제목은 주객전도 (물고기를 모시고 산다), 물고기와 동거인, 물고기 집사 메시지를 넣으면 어떨지요?  제목은 ' 용궁으로 초대, 물고기 집으로 초대, 어쩌다 물고기' 도 고려해 보면 어떨까요?

 

●10년 차 편집 2팀장


현재 3개 챕터(소제목)에 글이 13 ~ 14개로 너무 많아요.  소제목을 4~5개로 정하고 소제목에 글을 알맞게 배치하는 게 어때요? 그리고 제목을 축약해서 써보는 건 어때요? 예를 들어  우. 행. 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처럼  무. 사. 시. (물고기와 공생하며 살아 하는 시간 ) 등등등... 요


●5년 차 편집 1팀원


10월 22일 마감하는 브런치 북 출판 프로젝트에 10편 정도 엑기스만 묶어서 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사람들 반응도 살펴보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요. 브런치는 출판사 관계자분들도 보고 있으니 아마도 좋은 기회가 될 겁니다. 운이 좋으면 연락이 올 수도 있어요. 물론 글이 좋아야 되는 건 기본이죠.


●5년 차 편집 2팀원


물고기라는 주제는 선호하는 주제가 아니에요. 그동안 출판된 책을 분석해 보면, 국내에 물고기 에세이를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이니까요? 너무 위험한 전략입니다.  그래서 '공돌이라는 저자의 특색'을 살린 에세이 쓰기 과정을 동시에 브런치 북으로 내보는 건 어떨지요?  그 과정을 통해 탄생한 물고기 에세이라면 둘 중 하나는 출판사의 선택을 받을 것 같아요 ( 참 마음에 드는 전략이다. 이렇게 정말 될까?)


어떻게 되었을까?


이렇게 모든 의견들은 차곡차곡 수용되었다. 시계를 보니 벌써 새벽 4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베테랑 편편집자들의 다양한 의견과 시각들을 반영한 생각들이 차가운 새벽 공기를 뜨겁게 달궜다. 드디어 드디어, 제목이 정해졌고 소제목은  5개, 소제목 별 글 8개 총 40개의 꼭지를 만들어졌다.  


'진작에 이렇게 딱! 정했다면, 혼자서 이렇게 끙끙대지 않았을 텐데... 그래도 나 혼자 고민했던 시간이 있었기에 이 자리에 내가 있는 거겠지'... 과연,  나의 첫 책 제목과 소주제 그리고 그 속의 글들은 어떤 모습으로 변했을까? 나도 궁금해진다. 그리고 다음번 편집회의가 너무 기다려진다.

 

(* 소설 형태로 허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담배 안핍니다 ㅋ.  소설 연습을 해본 습작입니다. 너그럽게 이해 부탁드립니다. 역시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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