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수 만에 브런치 작가가 되다.

드디어 나도 이 글을 쓰긴 쓰는구나

by 훈남아빠

브런치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는 데 다섯 번의 시도가 필요했다. 세 번은 작년에 시도했다. 그리고 올해 새롭게 두 번째 지원해서 드디어 나에게도 작가가 되었다는 메일이 도착했다.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고 갑자기 부족하던 글솜씨가 팡팡 터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브런치에 글을 쓸 수 있는 이 상황에 만족하고 있다.


작년에 받은 세 번의 탈락 메일


1년 동안 계속해서 브런치를 지원한 건 아니고, 작년에 거의 연속적으로 세 번을 지원하고 올해 또 연속적으로 두 번을 지원했다. 처음 세 번을 연속적으로 지원할 때는 브런치 팀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아니 이 정도면 충분히 괜찮은 거 같은데 왜 나를 뽑아주지 않는 거지?' 머릿속의 상상은 점점 커져서, 알고 보니 내가 예전에 잘못했던 사람이 브런치 심사위원으로 보직을 얻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서 그가 내 이름을 보고 "어! 너 이 녀석! 내가 너는 계속 떨어뜨릴 거다! 브런치에는 발도 디디지 못하게 해 주마"하며 나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한테 그렇게(?) 미움 살만한 일은 크게 안 하고 살아온 거 같았다.


지금은 정말 솔직한 마음으로 브런치 팀에게 고맙다. 탈락의 고배를 마시며 스스로 상당히 많은 교훈을 얻은 탓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대체 내가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자신감이 넘쳤던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나서 나와 비슷한 주제를 완전히 다른 사유를 통해 풀어내는 작가들을 보면 기도 안 차서 헛웃음이 나온다. '도대체 평상시에 무슨 생각을 하고 살기에 비슷한 걸 보고도 저런 생각을 하고 사는 걸까', '나는 어떤 눈을 가지고 세상을 봐야 저런 식으로 세상을 볼 수 있을까' 거기에 나도 여기저기 글을 써오긴 했는데 무슨 글이 그렇게 단단하게 느껴지는지, 글을 바늘로 막 찔러도 흠집조차 나지 않을 것처럼 한 문장 한 문장 탄탄한 작가들이 많았다.


아무튼 각설하고 내가 브런치 5수를 통해서 절절하게 느끼게 된 세 가지 포인트가 있다.


첫 번째는, 내가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가 처음 세 번 연달아 지원했던 주제는 '취미'와 관련된 내용들이었다. 그런데 내용이 그냥 내가 쓰고 싶은 내용들이었다. 나는 몇 십 년간 글을 써온 사람도 아니고 뭣도 아닌데, 이상하게 내 글을 사람들에게 맞추고 싶지 않다는 묘한 고집이 있었다. 결국 일기장에나 쓸 법한 내용들을 주로 다뤘다. 그리고 사람들의 흥미를 유도하기 위해 사람들의 관심을 끌만한 제목이나 내용들을 쓰는 것도 뭔가 꺼려졌다. 지금 와서야 온갖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수식어를 다 갖다 붙여도 읽는 사람들의 클릭을 유도하기가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아무튼, 브런치는 기본적으로 '출판'을 목적으로 하는 플랫폼이다. 출판이 된다는 건, 결국 그 책에 대한 수요가 있고 팔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별로 흥미가 없을 거 같은 일기 같은 글로 계속 지원하면서 괜한 사람을 원망했다. 다른 브런치 글들을 많이 찾아보게 되면서, '아 글쓰기도 일종의 영업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하겠다고 내 안에 전혀 없는 걸 판매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브런치에 글을 쓴다는 건 '내 안에 있는 것들을 사람들이 사고 싶게 가공해서 파는 일이구나' 하고 정의하게 되었다. 나만의 소소한 이야기들은 그냥 전처럼 일기장에 남기기로..


두 번째는, 새롭게 시작하는 걸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앞선 '취미'와 관련된 주제는 세 번을 거절당했다. 당시에 나는 이 취미와 관련된 글들을 꽤 여러 편 써놓은 상태였고, 이 주제 자체가 적절한 선택이었는지에 대한 의심은 추호도 없었다. 내가 이 주제에 대해 써온 글들이 있다 보니 나 스스로 애써 다른 주제를 선택할 가능성들을 무시했다. <돈의 심리학>에서 대니얼 카이먼에 대한 사례가 나온다. 대니엘 카이먼에게 어떻게 앞선 원고를 쓴 적도 없는 사람처럼 다시 시작할 수 있는지 묻자 그는 "나한테는 매몰 비용이 없어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 부분을 읽다가 갑자기 머리가 번뜩했다. 다해도 몇 백 시간을 쓴 것도 아닌 취미 관련된 내용들을 가지고 나는 그렇게나 아까워했던 것이다. 그 주제를 당장 브런치 자격 신청에 사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원고들이 가치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그걸 쓰는 과정에서 나는 취미 관련된 내용들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글을 쓰는 경험들을 했다. 나중에 필요에 따라 원고를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기존 원고를 포기하는 게 크게 스트레스가 아니었다. 나에게만 있는 조금 더 특별한 경험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제를 완전히 바꿔서 다시 지원했다.


세 번째는, 단추를 잘 못 끼기 시작했다면 그냥 빠르게 다시 시작하자고 생각했다. 얼마 전에 아기가 블록 장난감을 들고 와서 위로 높게 쌓기 시작했다. 그런데 초반에 블록을 하나 기울게 쌓은 것이 있었다. 아기는 그 위에 계속 다른 방식으로 블록을 쌓아보려 했다. 크게 기울어 있는 블록이 있으니, 위에 것들은 어떻게 쌓아도 자연스럽게 금방 무너졌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차라리 완전히 다 무너뜨리고 다시 쌓으면 쉽게 더 높게 쌓을 수 있을 텐데...' 처음 지원한 '취미'와 관련된 내용들을 세 번째 지원할 때는 내 스스로는 꽤 흥미가 당기는 내용들로 포장했다고 생각했는데도 떨어졌다. 그 결과를 보고 나는 브런치 작가 되기를 포기했다. 더 이상 뭘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고 당시에는 생각했었다. 세부 내용을 조금씩 세련되게 바꾸더라도 주제 자체가 흥미로운 것을 이기기는 어렵다.


이렇게 브런치 5수를 하는 동안 나는 많은 깨달음을 얻고 지금에 왔다. 문제는 이제 또 새로운 방황을 시작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저 글을 쓰는 자격을 얻었다고 해서 진짜 작가가 되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브런치 작가 자격을 얻기 위한 과정이 나에게 좋은 경험을 선물해 준 것처럼, 지금의 시기도 진짜 작가로 나아가는 데 큰 도움을 줄거라 믿는다. 그리고 혹시 브런치 작가가 되고 싶은 데 망설이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꼭 뭐라도 써서 지원해 보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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