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통 벗고 저길 들어가라구요..?
내가 다니던 체육관에서는 하계에 한 번, 동계에 한 번 1박 2일의 훈련을 진행했다. 보통 사람들이 '선수들의 훈련'이라는 말을 들으면 머릿속에 흐릿하게 떠올리는 그런 전형적인 것들을 실제로 한다.
동계훈련 출발 당일, 관장님은 이른 아침에 체육관으로 집합하라고 했다. 장소만 얘기해 주고 가서 뭘 할 건지도 알려주지 않는 불친절한 동계훈련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안 그래도 그리 많지 않은 여자 회원은 아무도 가지 않았고 대부분 선수들만 참여했다.
근교에 있는 산에 가서 1박 2일 훈련을 할 거라 했다. '가면 알려주겠지..' 그전에 동계 훈련을 경험해 본 적도 없는데 그렇다고 세밀한 정보를 궁금해하지도 않는 둔한 나의 성격상 어느 산인지도 모르고 그냥 터덜 터덜 체육관으로 향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본격적인 훈련은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12월 어느 날의 겨울은 코가 매운 와사비를 먹었을 때처럼 계속 찡할 정도로 추웠다.
체육관으로 모여 인사를 나누고 출발할 준비를 했다. 대부분 선수들이고 체육관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는 사람들이라 이미 익숙한 얼굴들이었다. 차는 두 대가 준비되어 있었다. 한 대는 관장님이 끄는 회색 봉고차. 너무 오래되어서 문짝이 옆으로 잘 열리지 않아 낑낑거리고 온 힘을 주어야 마지못한 듯 "기기긱"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는 차다.
하필 다른 한 대는, 체육관에서 제일 잘 생기고 조직.. 생활을 하시던 형이 끄는 빨간색 외제차였다. 나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자연스럽게 외제차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무심하게 서 계시던 관장님이 갑자기 엄청나게 무거운, 돼지고기가 담긴 시커먼 봉지들을 손에 가득 쥐어주며 "뒷좌석에 실어라.."라고 하시며 고개를 봉고차를 향해 휙휙 저으셨다. 그리고 굳이, 본인의 옆자리를 탁탁 치며 나를 앉히셨다. 아무튼 그렇게 봉고차에서 달그락 거리며 출발했다.
동계훈련의 첫 코스는 예상치 못하게 시작되었다. 차를 타고 가다가 산 중간에 아스팔트로 구불구불 이어진,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도로에 툭 내려주더니 거기서부터 계속 뛰어 올라가다 보면 목적지가 있을 거라고 했다. 나는 걷기도 힘든 가파른 길을 도대체 어떻게 뛰어가라는 건지 멍하게 있었는데 다른 선수들은 익숙한 일인지 몸을 가볍게 풀고 일제히 뛰기 시작했다.
코치 형님은 마라톤 대회에 나가서도 늘 수상을 하곤 했던 사람이라 벌써 점이 되어 보이지도 않게 저 앞에 먼저 달려 나갔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두 어린 친구와 나만 뒤에서 헥헥 거리며 걷다 뛰다 하며 좇아갔다.
관장님이 뒤에서 그 덜그덕 거리는 회색 봉고차를 끌고 “뛰어! 뛰어!”하며 옆에서 다급하게 말씀하셨지만, 이미 나의 몸은 시들시들했다. 봉고차에 실려서 목적지까지 도착하는 건 아무래도 자존심이 너무 상했기 때문에 아스팔트 길에 일단 잠시 쓰러져 누웠다. 분명 달릴 때까지만 해도 여름인 것 마냥 땀이 나고 더웠는데 등부터 스며들어오는 싸늘한 한기에 깜짝 놀라 또 엉금엉금 일어나서 기어가다가 걷다가 어찌어찌 목적지까지 도착했다.
숨이 제대로 돌아오기도 전에 관장님은 어디론가 우리를 데리고 갔다. 도착해 보니 정면은 가파른 바위 절벽이고 그 절벽을 따라 꽤 긴 강이 있었다. 산속에 이렇게 긴 강이 있다는 것도 참 신기했고, 강이 등지고 있는 가파른 절벽은 너무 아름다웠다.
잠시 감탄하던 중, 관장님은 다음 코스로 얼음을 깨고 냉수에 입수하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강을 다시 쳐다봤는데 들어가서 추운 건 둘째치고 강은 위에서 차가 지나가도 괜찮아 보일 정도로 굳건하게 얼어있었다.
‘설마.. 이 사람들 왜 이러는 거지..’ 하고 있는데 코치 형님이 상의를 탈의하더니 위험하다며 돌멩이를 하나 들고 얼음을 깨며 먼저 그 얼음 물속으로 들어갔다.
상의를 탈의하고 돌멩이 하나 들고 잘 깨지지도 않는 얼음을 쿵쿵거리고 깨며 차가운 물로 입수하는 형님의 모습이야 말로 정말 위험해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치 액션 영화에서 상의를 탈의한 채 칼을 들고 싸우는 씬이 나오면, '오 신이시여 제발 저 몸에 상처가 나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진 마세요..' 하며 두려워하는 느낌과 비슷한 긴장감이 들었다.
얼음물 한복판에서 돌멩이를 들고 새하얗고 건강한 치아들을 환하게 드러내고 웃으며 어서 들어오라고 손짓을 하는 형님을 보고 잠시 망설이다 어쩔 수 없이 그 얼음물속에 따라 들어갔다. 길이 좁아서 계속 주변 얼음을 돌멩이로 깨야만 했다.
다른 몇몇 사람들도 조금은 망설이며 "진짜? 진짜로??" 하더니 밍기적 밍기적 상의를 탈의하고 강물 속으로 들어갔다. 물이 너무 차서 머리가 하얗게 되어버려 아무 생각도 안 나는데 관장님이 시켜서 한 사람씩 내년엔 더 열심히 잘할 거다 뭐 이런 말들을 소리쳤던 거 같다.
십 년도 넘게 지난 지금도 이 장면들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걸 보면, 이 모든 경험들이 나에게 엄청나게 강렬했음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