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페이퍼 Nov 29. 2021

미처 책에 담지 못한 동네5

'원효로와 용산전자상가', "걸으면 보이는 도시, 서울"

원효로를 따라 남쪽으로 조금 더 걷다 보면 새창로와 만나며 생성된 사거리 남측 모퉁이에 범상치 않은 아파트 하나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둔탁한 매스 위엔 군데군데 벗겨진 연노랑색 페인트가 각질처럼 뒤덮여 있고 밋밋한 입면에는 작고 어두운 창문들이 별다른 기교 없이 집집마다 촘촘히 박혀 있다. (2018년 하늘색 페인트로 새롭게 칠해지면서 더 이상 연노랑색 표피를 볼 수는 없게 되었다) 후줄근하게 늙어버린 이 건축물은 1970년생 원효아파트다. 개발 시대에 지어진 대부분의 건물들과 같이 아무런 기교도, 멋도 부리지 않은 오로지 기능에서 충실한 주거 기계이다. 그 시대 대부분 그랬던 것처럼 건축물이 어떻게 나이 들어갈지는 아무런 고민이 없었다. 

2013년, 감서구에서 마포구로 이사한 뒤, 가전제품을 사러  집에서 용산전자상가로 걸어가던 중 처음 마주쳤던 이 아파트의 강렬한 인상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원효로를 따라 좀 더 남서쪽으로 걷다가 원효아파트 앞 사거리, 원효로2가 교차로에서 새창로를 따라 완만한 경사길을 오르면 앞서 갈라섰던 청파로와 재회하며 낯익은 풍경이 펼쳐진다. 마치 옛 친구를 오랜만에 만난 듯 반갑다. 하지만 이내 피로에 지친 듯 낡고 오래된 건물들과 인적이 드문, 한산한 교차로 풍경에 기분이 언짢아진다. 청파로와 새창로가 교차하는 네거리 주변, 초췌한 건물들이 힘겹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곳은, 한때 아시아 최대 규모 전자 기기 시장으로 군림하며 일 년 내내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지 않았던 핫플레이스, 용산 전자상가다. 개발 시대의 정점, 1980년대 후반에 문을 연 용산 전자상가는 2000년대 초반까지 서울시의 손꼽히는 명소이자 용산구를 대표하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최영미 시인의 말처럼 ‘잔치는 끝났다’. 오늘날 용산 전자상가는 용산 일대에서도 유독 한적하고 인적이 드물며 비교적 최근에 준공된 서울드래곤시티 호텔이나 용산역 인근 고급 주거시설, 업무시설과 대비되어 그 행색이 더욱 초라하게만 느껴진다. 짧고 굵게 지나간 황금기가 너무 요란했기 때문일까? 여전히 용산 전자상가의 거리와 매장 곳곳에는 공허함과 피로감이 깊게 배어 있다.

서울 올림픽을 2년 앞둔 1986년, 서울시는 도심 교통난과 공해 유발 등을 이유로 세운상가 주변 전기·전자 제품 관련 사업장을 도심부적격업소로 지정하고 1987년까지 해당 업소들의 외곽 지역 이전을 추진하였다. 국제적인 행사를 앞두고 정부는 도심 미관 파괴의 주범들을 그대로 방치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서울시는 용산 한가운데 자리하던 용산 청과물 시장을 가락동으로 이전시키고 남은 자리에 국내 최대이자 동양 최대 전기·전자 판매단지주를 조성하게 된다. 그게 바로 용산전가상가다. 

용산 전자상가는 개장 후 1년이 지나도록 입주율이 50퍼센트에도 채 미치지 못하며 불안한 출발을 보였지만 1990년대 초부터 사정이 달라졌다. 가파른 경제 성장을 바탕으로 각종 전자 제품, 휴대용 전자 기기, 개인용 컴퓨터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덩달아 용산 전자상가에도 황금기가 찾아왔다. 워크맨을 시작으로 CD 플레이어, MP3 플레이어까지 휴대용 음향 기기는 시대별로 유행을 달리하였고 삐삐, 시티폰, 핸드폰, 스마트폰으로 통신 기기는 꾸준히 진화하였으며 조립 PC, 완성 PC, 노트북, 넷북, 태블릿 등 개인용 컴퓨터는 끝도 없이 다양해졌다. 각종 게임기와 게임팩, 컴퓨터용 게임, 애니메이션, 해외 대중문화 등 다양한 콘텐츠 역시 어느 곳보다 민감하고 빠르게 전자상가 곳곳에 유통·판매되었다. 특별히 살 게 없을지라도 하루 종일 지루할 틈 없이 구경할 수 있었다. 

용산전자상가는 단순히 전자 제품을 사고파는 곳이 아닌 그 이상의 문화 특구였고 다양한 공간과 매력적인 상품, 콘텐츠로 가득 찬 신비의 세계였으며 동경과 두려움이 뒤범벅된 모험의 나라였다. 이곳이 개발되지 않았더라면 대한민국 전자기기 산업이 발전이라도 했겠느냐 반문이라도 하듯 용사전자상가는 20년이 조금 안 되는 기간 동안 눈부신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용산 전자상가는 세운상가로부터 물려받은 기운과 함께 그 쇠락의 운명도 그대로 이어받았다. 2010년 전후, 통합적이고 완결된 전자 기기인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워크맨이나 MP3 플레이어, 카메라, 전자사전 등 세분화되고 전문적인 전자 기기에 대한 수요는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또한 속된 말로 '용팔이'로 불리던 전자상가 점원들의 불친절한 서비스나 판매 속임수 역시 사람들이 용산 전자상가로부터 발길을 돌리는데 기여를 했다. 결정적으로 인터넷을 통한 제품 정보 확인과 가격비교가 용이해지고 구매부터 배송까지 집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전자 상거래가 활성화되면서 신비와 모험의 세계는 빠르게 몰락했다. 정작 그곳에서 푸대접을 받으며 비싸게 살 생각은 없으면서도 용산전자상가의 몰락을 지켜보는 내 마음은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용산전자상가는 지극히 개인적인 추억으로 점철된 공간이다. 고등학생 시절, 노련한 점원에게 위축되어 서둘러 아무 워크맨이나 골라야 했던 씁쓸한 기억이 있는 곳, 그럼에도 대학생이 되자마자 삐삐를 장만하기 위해 제일 먼저 들린 곳, 제대 후 조립 PC를 사기 위해 온종일 미로 같은 상가를 헤맨 곳이었고, 새로 나온 슬라이딩 핸드폰에 마음이 끌려 한참을 열고 닫았음에도 지갑은 좀처럼 열리지 못했던 곳이었으며, 넷북(저사양 노트북)을 사기 위해 현금 50만 원을 들고는 의기양양하게 컴퓨터 매장을 순회하던 곳이었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나의 개인적인 기억들이 용산전자상가를 다녀간 대다수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집단적 기억이란 것이다. 


2018년, 서울시는 용산 전자상가 도시재생사업, ‘Y밸리 혁신사업’을 발표하였다. 용산전자상가를 4차 산업혁명과 같은 미래 산업을 위한 인재 육성과 청년창업 플랫폼의 현장으로 재생시킨다는 당찬 계획이었다. 개발 시대에 태어나 화려한 전성기를 누린 것과 사회적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쇠퇴한 것도 모자라 재생 시대를 맞이하여 새로운 변화를 모색 중인 것 역시 세운상가의 인생 역정과 지독히도 닮았다. 서울시의 계획에 복잡 미묘한 기분이 들지만 우선은 반가운 마음이 먼저다. 이미 과거형이 되어버린 옛 영광을 되돌리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매우 어려운 일이며 가시적 효과나 실질적인 성과 없이 흐지부지될 수 있다는 우려 또한 배제할 수 없음에도 용산 전자상가의 재생과 존속을 위한 다양한 노력과 시도는 반드시 필요해 보인다. 비록 갈피를 못 잡고,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될지라도, 용산 전자상가가 이 도시 속에서 오랫동안 남아있길 바라는 사람은 비단 나 하나만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처 책에 담지 못한 동네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