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비 3월

발과 어깨와 마음에게

by 풀씨

3월에 눈

그거 기다리는 나이

3월에도 눈

그거 아는 나이


눈 비

녹으며

3월


눈이 오면 거지가 빨래를 한다고 하는 옛말이

아려서 고개를 숙이는 3월


그 거지가 나보다 어리면 어떡하나

그 거지가 내 나이면 어쩌나

그 거지가 나이 많은 사람이면 어쩌나

그 거지가 혹시 아이면 어쩌나

그러는 3월


아픈 건 보기 싫어서

고개 돌리고

모른 척 살려고 살았는데

나라에서 가장 살만하다는 서울

그 역 앞에 가면

눈 둘 곳 모를 풍경이 풍선 파는 난전처럼 펼쳐져 있고


서울역 앞이 병원도 아닌데

가난도 못할 아픈 사람들은

거기 모여 누웠더라

아픈 것들은 서 있지도 못하니까

동그랗게 부푼 얇은 껍데기 안에서

납작하게 누워있고

드문드문 그 앞에 술병들이 서있지


오늘처럼 비 오고 눈 오고

그런 축축한 날

그 안은 어떻게 아프고 있을까


나는 쉴 틈 없이 일을 하다가

노는 날 하루를 벌었는데

'나 갑자기 뭐해야 하지?' 싶어서

'무서워... 무서운데...' 그랬지

할 일이야 많지

늘어놓은 일이 얼마나 많아

그런데 갑자기 생긴 여분의 하루에

뭘 해야 할지 몰라서

책상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어


그래, 나라도 일을 하고

그래, 나는 일을 하고

그래, 나는 일을 좋아하니까

그래, 나는 일을 할 수 있으니까

돈을 벌고

통장에 여유가 생기면

무용하거나 남들 하는 것 따라

소비를 하고

그러려고 그러면서 살고


생각은 하지 말고

하지 말자고


서울은 그토록 눈부신데

부자를 넘고 넘어 사치를 넘고 넘어 사는 사람이

내 주변에도 넘치고

힘들다고 죽는소리를 해는 나조차도

먹고 남을 만큼 버는데

왜 아픈 사람들이

길에 누워 있지?


마치 보이지 않는 것처럼

마치 있어 본 적도 없는 것처럼

누워서

맨바닥에서 신문지에서 박스에서 텐트로

집을 장만한 사람들이

왜 자꾸 늘어나는 거지?


나는 뭐지?

내 가난은 뭐고

가난도 못하는 그들은 뭐지?


뭐지

뭐지

눈 비 3월

비 온 뒤 다음 날의 공기를 잘 알지

나는 다시 잊고

마치 그런 것은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으니

마음 아픈 것은 보이지 않는

따듯하고 시원하고 안온한 곳에서

내일도 잘 살아가겠지


그리고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도

모른 척하겠지


눈이 오면

눈이 와도

빨래하는 거지는 이제 없고

채도 높은 둥근 동굴 안에서

그냥 더 축축하게

자면서 아플

등허리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잘 사는 걸까

왜 더 잘 살게 해달라고 매달리는 걸까

누구한테

그러는 걸까

...


2022 03 19 s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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