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문장 수집 생활』외 2권
‘배달의 민족’ 김봉진 대표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풋!’ 하고 웃게 하거나 ‘아~’ 하고 공감하게 하는 것을 제품 개발의 가이드라인으로 삼는다고 한다. 쇼핑몰 홍수의 시대에 독보적인 자리매김에 성공한 온라인 편집숍 29CM. 속된 말로 '짜치지' 않은, 세련된 광고 카피로 유명하다. 29CM의 광고 카피를 보고 난 반응은 '아~'에서 한 발 더 나아간 ‘아.....’에 가깝다.
계절의 경계에서 입는다 (니트 광고)
공간은 어둠이란 따뜻한 담요를 덮었다 (스탠드 광고)
광고 카피가 맞나 싶을 정도로 온기 가득한 문장들이 마음을 울린다. 이런 광고를 만나면 제품보다 더 궁금해지는 것이 있다. 대체 이런 카피는 누가 쓰는 거지?
『문장 수집 생활』은 29CM 헤드 카피라이터 이유미의 독특한 카피라이팅 노하우를 담은 책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다독가인 이유미 작가는 소설을 읽다가 좋은 문장을 발견하면 꼭 타이핑으로 필사를 해둔다고 한다. 그리고 그 문장들을 엑셀 파일로 정리해서 제품 카피에 적절하게 수정하여 활용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사진이라는 건 참 좋구나 싶었습니다. 찍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사진을 보는 나를 볼 수도 없고 그런데도 그 사람이 지나간 풍경을 영원한 정지 화면으로 가슴에 안고 갈 수가 있습니다.
니시카와 미와의 『유레루』에서 수집한 문장이다. 이 문장에서 ‘사진’을 ‘영원한 정지 화면’으로 비유한 표현을 잘 살리면 ‘사진집’의 광고 카피가 탄생한다.
당신의 시선을 영원한 정지 화면으로 간직합니다.
언뜻 들으면 ‘카피 쉽게 만드네’라고 할 수 있지만, 문장을 수집하는 것은 대단한 능력이다. 이 책에는 ‘감응’이라는 언어로 표현되어 있는데, 이는 ‘어떤 느낌을 받아 마음이 따라 움직인다’는 뜻이다. 같은 문장을 읽어도 ‘감응’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또는 못한) 사람이 있다. 어떤 문장을 읽고 작가가 의도한 바 혹은 근저의 의미를 캐치할 수 있어야 좋은 문장을 수집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풍부한 감성과 타고난 센스의 발현이며, 책을 많이 읽어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관록일 것이다. 수집한 문장을 카피로 바꾸는 작업은 말할 것도 없다.
광고를 만들 때만 카피가 필요한 건 아니다. 일상에서 기발한 한 문장을 떠올려야 하는 순간은 의외로 자주 찾아온다. 기획안을 작성할 때, 자기소개서를 쓸 때, 썸남에게 선톡 보낼 때, 하다못해 인스타그램에 사진 한 장을 올리더라도 센스 있는 한 줄이 절실하다. 일상에서, 업무에서 시선을 잡아끄는 한 문장이 필요한 이들에게 추천한다.
나는 영화를 정말 좋아한다. 나에게 영화는 그야말로 기분 좋은 강박이다. 내가 영화를 좋아하는 많은 이유 중 하나는 '영화평을 읽는 재미' 때문이다. (가끔은 영화평 읽으려고 영화를 보는 건가 싶기도 하다...) 볼까 말까 망설여지는 영화가 있을 때 좋아하는 평론가의 평을 읽고 관람 여부를 결정하기도 하고, 나와 전혀 다르게 영화를 해석한 평을 읽으면 기꺼이 영화를 다시 보기도 한다.
독서의 세계에서 이런 역할을 하는 것이 서평이다. 잠재독자에게는 일독을 권하고 기독자에게는 재독의 욕구를 자극한다. '이젠 읽지만 말고 좀 써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읽게 된 『서평 쓰는 법』. 출판사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기대에 부응할 거라 예상은 했지만 내용이 알차다 못해 터질 것 같았다.
‘서평의 본질’에 대해 설명한 서두만 봐도 책의 반은 읽은 셈이다. 여태까지 알고 있던 서평의 개념을 완전히 뒤흔들어 놓는다. 저자는 독후감을 ‘내향적’, 서평을 ‘외향적’이라고 표현한다. 독후감이 책을 읽고 나서의 개인적 소감이나 감상을 서술한 글이라면 서평은 그보다 더 적극적인 개념이다. 서평을 읽는 사람이 그 책을 읽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는 데 서평의 목적이 있다. 책을 단순히 요약하거나, 감상을 쓴 글은 독후감 혹은 책 소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저자의 지론이다.
독후감에서 서평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책이 담은 콘텐츠에 대한 '공부'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내용이 맞는지 팩트 체크를 하는 것은 기본이고, 통시적 공시적 관점에서 책이 어떤 맥락에 있는지도 알아야 한다. (서평을 쓸 때 이토록 상당한 양의 공부가 필요한지 처음 알았다...)
그뿐인가. 관련 지식과 더불어 꼭 필요한 것이, 뚜렷한 ‘관점’이다. 서평가는 자신만의 입장과 관점을 갖고, 읽는 사람에게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같이 가보자고 설득해야 한다. 같은 책을 읽고도 다양한 주제의 서평이 나오는 것은 서평가마다 다른 관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나처럼 서평 '쉽게' 쓰는 방법이 있을 줄 알고 책을 읽는다면, 아무나 뛰어들 수 없는 이 세계의 수심에 기겁하며 뒷걸음질 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의 지식과 공을 쏟아낸 한 권의 책을 그 정도의 준비도 없이 비평한다는 것은 모순적이며 무례하다. 서평의 개념부터 방법, 효용까지 제대로 짚어주는 책. 내용의 단단함과 더불어 깔끔한 문장이 읽는 맛을 더한다.
좋은 책과 어려운 책을 만날 때마다 서평을 쓰려고 노력합니다. 좋은 책을 온전히 누리고, 어려운 책을 제대로 풀어내기 위해서입니다
'한국 최고의 소설가는 어떻게 글쓰기를 가르칠까'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책.
이 책은 우리나라 논술 교육 현실에 대한 조정래 작가의 비판으로 시작한다. 논술에 왕도가 있다면 다양한 책을 읽어 다양한 논지를 접하는 것이다. 하지만 점수 1점에 당락이 좌우되는 입시생들은 교과서가 아닌 책을 읽을 시간도, 체력도, 동기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논술이 대학 입시에 중요한 시험 과목이 되자 학부모들은 아이들을 학원으로 내몰기 시작한다. 다른 과목을 그렇게 해결했듯, 논술도 암기식으로 해결하려 한 것이다.
『태백산맥』, 『아리랑』 등 대하소설로 유명한 조정래 작가의 두 손자 역시 조금 더 자라면 논술이라는 큰 산을 넘어야 했다. 남다른 손자 사랑으로 유명한 그의 걱정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조정래 작가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한 글이 있었으니, 두 신문의 사설을 나란히 싣고 제삼자인 비평가가 비교하고 평가한 것이었다. 한 주제에 대한 서로 다른 논지의 글을 비교하는 것은 균형 잡힌 사고와 다양한 인식을 가질 수 있는 최적의 논술 교육법이었다.
조정래 작가는 그 사설집을 1년 동안 정성스럽게 스크랩해서 큰손자가 고등학교 1학년이 되는 해에 선물한다. 사설집이 동기부여가 됐는지, 큰손자는 할아버지에게 먼저 논술 쓰기를 제안한다. (손자도 범상치 않다.) 그렇게 할아버지와 손자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큰손자가 글을 보내면 조정래 작가가 그 글을 첨삭하고 본인의 글을 써서 손자에게 다시 보내는 방식.
할아버지와 손자는 1년 동안 사회 경제 정치 이슈에 대해 논술 대화를 나누었다. 이 방법으로, 모범답안을 달달달 외우게 하는 논술 학원보다 훨씬 더 실효를 거둘 수 있었다고 한다. 실로 책에 나오는 큰손자의 글을 읽으면 자괴감이 느껴진다...
논술 대화는 비단 입시를 준비하는 고등학생뿐 아니라, 논리적인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성인들에게도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한다. 할아버지가 조정래 작가 같은 대문호가 아니어도 좋다. (그러길 바라는 것도 좀 이상....) 같은 주제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에서 글을 쓰고 이를 비교하는 시도만으로 살아있는 논술 교육의 효과를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