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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ecdote Feb 14. 2020

엄마 생신

감자조림





아빠는 평소에도 요리 하는 걸 좋아하셨다

말수가 없으셔 요리가 좋아 라고 한 적은 없으셨지만 볶음밥 하나도 비법이 있는 것 처럼 해주시던 아빠


아빠는 오므라이스, 계란 풀은 라면, 감자조림 등을 잘하셨다


그 중 감자조림은 아빠의 시그니처 메뉴




엄마의 생신마다 아빠는 미역국과 아빠의 특기인 감자조림을 하곤 하셨다. 괜히 엄마에게 맛 평가가 듣기 두려운 건지 나에게 “먹을만 해?” 라고 묻곤 하셨다.



엄마 생신이다.

아빠가 계실 땐 생일 선물로 땡하던 불효녀 나.

아빠가 돌아가시고 난 뒤 다가오는 엄마의 생일에 많은 책임감이 느껴진 것도 사실이다


엄마가 부디 아빠의 부재를 느끼지 못하길

분명 난 아빠의 자리를 대신 할 수 없는 걸 알았지만 엄마가 어차피 슬플거라면 조금만 슬프길 바랬다




엄마의 생신 준비를 프로젝트 마냥 기획하고 리허설 하고 별 크게 준비한 거 없지만 요알못(요리를 알지 못하는) 나는 각종 주부 9단 블로그의 글과 유투브로 이미지 트레이닝을 몇번이고 했다

고작 미역국 하나 끓여보겠다고







조금 일찍 퇴근해서 장을 보고 미역국을 끓였다.

아빠의 시그니처 메뉴인 감자조림도 흉내내보려 얼추 완성해 예쁜 반찬그릇에 옮겨담았다.

간도 볼겸 먹어봤는데, 아빠가 해준 맛이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왜 이리 금방 까먹어 버린 건지


그때는 이 감자조림을 몇번이고 앞으로 더 먹을 수 있을거라 생각 해서였을까 상 다리 부러지게 차려진 생일 상 위 감자조림은 너무 초라한 반찬같아 늘 몇번 젓가락질 하다 말았던 내가 후회스럽기까지 하다







엄마의 퇴근

조촐하게 나마 엄마와 내가 둘러 앉아 생일 전야제의 저녁식사를 한다. 어설프게나마 끓여본 미역국을 데워오고, 냉장고에 고이 넣어두었던 감자조림을 꺼내왔다


“뭐야?”

라고 묻는 엄마의 말에 대답 대신 뚜껑을 열어 보였다


“이거 감자조림.. 아빠가 늘 엄마 생일에 해주ㄷ..”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엄마는 아이처럼 울음을 터트리셨다


“이리와” 하고 날 껴안으신 엄마의 등을 쓸어드렸다

사실 그냥 둘이 부둥켜 안고 울었다



“고맙다. 잘 먹을게”






앞으로 몇번의 엄마 생신이 지나야 이 감자조림이 하나의 반찬으로 우리에게 남을 수 있을까


감자조림이 뭐라고

별안간 아빠는 아직도 너무 많은 곳에 스며있어 우리를 울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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