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오는 소리에.....
오다 말다 오다 말다,
오기 싫어 안 오시는 것인지,
수줍음에 안 오시는 것인지,
떠날 자리 못내 밟혀 머뭇거리시는지,
칠석의 연인처럼 애달파 그러는지.
언 발 곧추세워 해넘이만 바라보네.
쌀쌀한 날씨 속 오락거리기 시작한 비가 일주일째 계속되고 있다. 이르게 피어난 매화들은 계절의 변덕에 당황스러워하고 봉오리만 맺은 매화들은 언제쯤 얼굴을 내밀까 셈하고 있다. 꽃도 봉우리도 오르지 않은 녀석들은 '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느긋하게 비를 맞으며 차분히 햇살을 기다리며 잠자고 있다.
창틀 옆 배관에선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탕탕거리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온다. 봄이 어디쯤 왔나 하고 가만히 귀 기울여 보니 열어놓은 창문으로 소리 대신 훅하고 바람이 불어온다. 차갑지만 매섭진 않은 바람. 바람은 따뜻함이 봄의 전부인 양 아는 나를 살짝 놀리며 지나간다.
요 며칠간 슬픔이 잔잔히 일렁였다. 아니 사실은 새해부터 였나보다. 일어난 일들에 회한을 느끼고 일어날 일들에 불안을 느끼며 여기에도 저기에도 머물지 못하고 동동거렸다. 변해가고 흘러가는 세상과 사람 속에 나 혼자 뒤처져 덜렁 남겨진 것 같아 두려웠다. 어제보다 1 밀리는 나아지고 싶었건만 되려 못해진 건 아닌지 초조했다. 오락가락 비처럼, 올까 말까 봄처럼.
자정이 조금 지나자 눈물이 날 거란걸 알아채곤 아주 잠깐 슬픔에 잠겨 울었더랬다. 그런데 울어보니 알았다. 많이 슬프진 않았다는 걸. 회한과 불안과 두려움과 초조는 그대로이지만 그것들이 예전만큼 내 속에 차있진 않다는 걸.
열어놓은 창문으로 훅하고 불어온 바람은 따뜻함만이 봄이 아니라 했다. 생명을 키우고 빛내는 건 그것만이 아니라고. 어쩌면 봄은 따뜻함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다. 눈과 비와 바람과 추위는 그저 따뜻함 위에 잠시 지나가는 흔적이요 유희일뿐일지도. 슬픈 것 같았지만 많이 슬프지 않았음도 어쩌면 내 속에 이미 봄이 들어와 있어서인지도. 아니 모든 계절의 속성은 본래 따뜻함 일지도. 생의 속성 역시 그럴지도. 희로애락과 생로병사도 춤추는 그림자 일지도.
글쓰기를 잠시 멈추고 가만 앉아 있으니 내 숨소리가 들려온다.
들어오고 나가고 들어오고 나가고.......
그 숨소리 속에 봄 오는 소리가 있다.
봄이 오고 떠나고 봄이 오고 떠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