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5/2023
이혼 후 결혼은 한 번으로 족하다고 생각했다. 서른 후반의 나이였고 연애 감정 같은 건 상상도 못했다. 그렇게 새 환경에 아이와 적응해 갈 즈음 그를 만났다. 내향인에 인간관계를 넓히는 데 관심이 없는 나에게, 타지의 생활은 외로움이었다. 멀리 떨어진 가족, 아직은 내 고민을 나누기엔 너무 어린아이. 흔한 말로 홀로 떠있는 섬 같은 생활이었다.
직장에서 자연스레 가까워졌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 내가 혼자 하기엔 버거운 일들-가구 조립 같은-에, 그리고 마음에 담아 꾹꾹 눌러놓은 상처들을 쏟아내는 일에도,… 실질적인 생활에 도움을 받았고 위로가 되기도 했다.
결혼 이력(?)이 없는 그에게 부담이 될 수는 없었다. 더 가까이 다가오는 그에게 난 다신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한 번이면 족한 경험이라고 말했다. 상관없다고, 말하는 그와 지금껏 잘 지내고 있다.
말랑말랑한 연애 감정 같은 건 사라진 지 오래지만, 하우스 메이트로, 친구 같은 연인으로 그렇게 시간을 쌓아왔다. 여전히 우린 결혼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각자의 삶이 있고 그 바운더리를 지키며 서로의 삶을 공유하기도 한다. 아이를 대하는 나의 태도에 대해 객관적인 조언을 주기도 하고, 경제적인 면에서도 서로의 부담을 나눠지며 도움이 되고 있다. 한국에서라면 주변의 이목이나 가족들의 반대에 이런 생활은 어려웠을 거 같다. 타지에서 생활하는 이점이라고 할까.
요즘 한국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는 거 같다. 정상가족에 대한 이야기, 생활동반자법의 필요성 등등. 공감되는 내용도 많고 내 상황을 대입해 보기도 한다. 그와 나 역시, 제도에 묶인 약속 따윈 없고 어쩌면 어느 순간 각자의 길을 가게 될 수도 있다. 그러면 또 어떠랴. 서로를 존중하는 파트너쉽은 각자의 길을 가기로 결정하는 순간에도 빛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혼자 잘 설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함께 걸어가는 길에도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디까지 함께 걸을지 모르지만, 지금 옆에서 걷고 있는 그에게 감사한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