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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파랑 Apr 06. 2018

좋은 엄마

<100일 글쓰기 79/100>

한동안 장래희망을 '좋은 엄마' 라고 꼽았었다. 현실감각이 좀 생기기 시작한 스무살 무렵부터 했던 생각이다. 내가 생각하던 '좋은 엄마'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아이가 원하는 것을 부담없이 먹일 수 있을만큼 안정적인 수입원이 있고, 정해진 시간에 퇴근을 해서 무한정 아이가 기다리게 만드는 일은 없는, 하고 싶은 것과 배우고 싶은 것에 있어서 지나치게 아쉬움이 생기지 않도록 서포트할 수 있을 정도의 스펙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것이 내가 부모님이 공무원이었기 때문에 누릴 수 있었던 전부였다고 믿었으니까. 그리고 난 어느 정도는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될 수 있을 거라고.

그런데 일주일에 두 번 부담없이 내 한 입에 뭘 집어 넣는 것도 엄청난 일이고, 나인투식스 정시퇴근이라는 건 정말정말로 어려운 일이구나 하는 걸 입사하자마자 깨달았다. 지출에 있어서도 시간을 쓰는 데에 있어서도 고민을 완전히 없애거나 부담감을 느끼지 않을 방법은 없었다. 무엇을 하든 기회비용 계산부터 할 수밖에 없었고, 나는 가진 경제적 자원이 턱없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엄마, 아빠의 새 옷 쇼핑은 1년에 두 번 될까 말까 하다. 아빠는 십 몇 년 전에 유행이었다가 최근 몇 년새에 '코듀로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유행을 탄 '골덴' 바지의 엉덩이와 무릎이 닳고 닳아 색이 빠지고 판판해질 때까지 입으셨다. 엄마는 딸들이 입다가 헐고 늘어난 티셔츠 중 괜찮은 것을 골라서 입거나 이모들에게 나눠주신다. 그 와중에도 이제 드문드문 만나는 딸들에게는 만날 때마다 좋은 걸 더 못 입히고 더 못 먹여서 안타까워하신다. "피 한 방울 안 섞인 니 아빠보다 니들이 더 소중해." 라며 장난스럽게 말씀하시는 엄마지만 헌신적인 마음만큼은 너무 진짜라서 나나 sis는 때론 감당하지 못하고 외면하기도 한다.

전 애인이 그랬었다. 나는 아이가 생기면 우리 부모님처럼 헌신적으로 굴 거라고. 가진 게 없는 사정임을 자각해도, 좀 더 의연하게 굴어야지 하고 스스로 되새김질해도, 결국은 나 또한 나보다 아이를 더 아끼고 생각하고 우선하는 엄마가 될 것이라고. 곰곰이 생각해보면 왠지 그럴 것 같다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sis와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우리는 외할머니의 핏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외가의 다섯 자매가 모두 그러고 있질 않냐고, 하다못해 전혀 그런 성향이 아니었던 막내 이모까지 결국은 '헌신적인 엄마'가 되지 않았냐고. '좋은 엄마' 보다 현실적인 건 '헌신적인 엄마' 쪽일까 싶다. 만약 그렇게 되더라도 내 아이는 제발 부담감이나 부채감, 나에 대한 연민의 감정은 갖지 않았으면.

결혼을 할 지 안 할 지, 애를 낳을지, 안 낳을지도 모르는데 부질없기도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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