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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우재 Apr 24. 2020

투수로 성공한 포수, 누가 있을까?

투포 겸업에 도전하는 롯데 나종덕

개막이 다가오는 가운데, 조금 뜬금없는 소식이 들려왔다. 롯데 포수 나종덕이 투수 도전에 나선 것. 중학교까지 투수로 활약한 경험과 강한 어깨를 활용해 올해 포수·투수를 겸업할 계획이라고. 포수로서 아쉬운 모습을 보여준 나종덕, 과연 투수로 성공 신화를 쓸 수 있을까?



어쩌다 투수 겸업을?


2군 연습경기에 등판한 나종덕 ⓒ 롯데 자이언츠


나종덕은 2월 호주 캠프 평가전 중 왼쪽 팔목 유구골 골절 부상했다. 재활에 3개월이 걸린다는 진단. 포구·타격 훈련 모두 불가능했다. 성민규 롯데 단장은 이참에 나종덕을 투수로 테스트해보기로 했다. 가만히 있을 바에야, 뭐라도 해보는 게 나리란 판단. 터무니없는 결정은 아니었다. 나종덕은 중학교까지 투수로 괜찮은 활약을 펼쳤고, 작년 도루 저지율 1위(38.5%)를 기록할 만큼 어깨가 강하고 정확하다. 성 단장은 부임 때부터 투수 가능성을 염두에 뒀다고.


첫 등판은 나쁘지 않았다. 22일 NC 2군과 경기에 4회 등판해 2이닝 3피안타(1피홈런) 2실점 2K 기록. 최고 구속 142km 포심을 필두로 투심, 슬라이더, 포크볼, 체인지업 등 다양한 구종을 던졌다. 변화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제구도 좋다는 게 현장 평가. 랩소도로 측정한 구위도 괜찮다고. 무엇보다 과감한 몸쪽 승부를 펼치는 등 포수로 뛸 때와 또 다른 자신감을 엿볼 수 있었다고 한다. 마운드에 적응하면 구속 역시 지금보다 더 오를 것으로 기대한다고.



큰 그림 그렸다고!


이게 다 성민규 단장 프로세스다 ⓒ 성민규 단장 인스타그램


나종덕 투포 겸업은 깜짝 결정이 아니다. 성민규 단장이 “거의 두 달이 걸린 프로젝트”라 할 만큼 차분하고 진지하게 진행하는 작업이다. 2군에서 선발 자원으로 육성하고, 포수·투수 중 더 잘하는 쪽으로 밀어줄 계획이라고. 롯데는 즉시전력급 유망주 지성준을 영입하고, 행크 콩거 배터리코치 지도 아래 정보근이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이는 중이다. 포수 나종덕이 당장 필요하진 않은 셈. 급할 것 없이, 나종덕이 지닌 다양한 가능성을 시험해본다는 계획이다.


나종덕은 고교 시절 ‘10년에 한 번 나올 대형 포수’란 말이 나올 만큼 촉망받았다. 2017년 신인 드래프트 2차 1R 지명을 받아 롯데에 입단, 강민호 뒤를 이을 리그 최고 포수로 성장을 팬들은 기대했다. 하지만 입단 후 3년간 성적표는 낙제점. wRC+가 –11.4에 이를 만큼 공격력이 형편없는 건 물론, 그나마 장점으로 꼽힌 수비마저 도루 저지를 빼면 기본적 포구조차 불안할 정도로 부진했다. 작년 롯데가 세운 역대 최다 폭투 103개 기록의 일등 원흉.


이처럼 포수로 아쉬웠던 잠재력을 나종덕이 투수로 꽃 피울지 관심이다. 실제, 프로에서 강한 어깨를 바탕으로 투수로 자리 잡은 포수가 몇몇 있다. 대표적으로 누가 있을까?



투수로 자리 잡은 포수는?


kt 핵심 셋업맨 김재윤 ⓒ kt wiz


우선, KT 핵심 셋업맨 김재윤을 꼽을 수 있다. 김재윤은 휘문고 시절 청소년 대표팀 포수로 2008년 세계선수권 우승을 이끌고, 미국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마이너리그에서도 포수로 뛰었다. 하지만 준수한 수비에 비해 타격이 나빠 국내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2015년 신생팀 특별지명으로 KT 입단. 강한 어깨에 주목한 코치진 권유로 캠프서 바로 투수로 전향했다. 어마무시한 구위로 가공할 탈삼진 능력을 과시하며 불펜 주축으로 부상. 투수로 뛴 지 2년 차에 마무리를 맡아 3년 연속 두 자릿수 세이브를 거뒀다. 작년에도 이대은·주권과 함께 필승조를 이뤄 47.2이닝 ERA 2.27로 활약. 올해도 KT 불펜 핵심으로 중용될 전망이다.


암울했던 현대의 한줄기 빛 황두성 ⓒ 현대 유니콘스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황두성도 성공 사례다. 1997년 삼성 입단 당시 포수였지만, 2루 송구 능력에서 가능성을 보고 투수로 자릴 옮겼다. 2004년까지 주로 2군에 머물며 오랜 담금질. 그사이 해태를 거쳐 현대로 이적했다. 마침내 2005년 잠재력을 터뜨려 무너진 마운드에서 마당쇠로 쏠쏠한 활약을 펼쳤다. 60경기 128.2이닝 ERA 3.29 투수 WAR 11위. 이후 선발·불펜을 오가는 전천후로 제 몫을 하며 야구 월드컵 대표팀 선수로도 뛰었다. 히어로즈로 팀이 바뀌고도 마운드 기둥 역할. 하지만 곧 부상과 기량 저하로 급격히 무너졌다. 2011년 방출 후 33세에 은퇴. 혹사 후유증이 컸다. 팬들에겐 암울한 현대 마운드의 한 줄기 빛으로 기억된다.


잠깐이나마 에이스였던 임준혁 ⓒ KIA 타이거즈


꾸준한 성과를 내진 못했지만, 임준혁도 투수 전향으로 나름 재미를 봤다. 2003년 포수로 KIA에 입단했지만, 좋은 체격과 강한 송구에 기대를 건 김성한 당시 감독 권유로 투수로 바꿨다. 구속은 빨랐으나, 제구가 나쁘고 잔부상에 시달려 오랫동안 정체했다. 하지만 2015년 제구가 눈에 띄게 좋아지면서 진가를 발휘한다. 후반기 사실상 팀 1선발로 뛰며 27경기 118.2이닝 ERA 4.10 준수한 활약. 오래 가진 못했다. 부상과 구위 저하로 다시 평범한 투수로 전락. SK로 트레이드되고 2018년 웨이버 공시, 은퇴. 잠깐이나마 중요 선발 자원으로 중용됐으나, 여운을 남기기엔 너무 짧았다. 어쨌든 13시즌 간 마운드를 지킨 것도 성과라면 성과.


투수로 본격 첫 시즌인 신진호 ⓒ NC 다이노스


최근 투수 전향을 알린 포수로는 NC 신진호가 있다. 고교 시절 최고 포수로 평가받아 2010년 캔자스시티 로열스와 계약했다. 하지만 타격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해 5년 만에 방출. 2017년 신인 드래프트 2차 1R로 NC에 입단한다. 기대는 컸지만, 공수에서 아쉬운 모습에 부상까지 겹치면서 주전 경쟁에서 밀린다. 양의지·김태군 틈바구니에서 버티기엔 무리. 결국, 작년 여름 투수 글러브를 꼈다. 작년 적응기를 마치고, 올해 본격적인 투수 첫 시즌을 맞는다. 140km 초반대 포심, 커브, 커터, 체인지업, 스플리터를 던진다. 볼 끝이 괜찮다는 평가. 겨우내 체중 9kg을 감량하고, 가장 일찍 출근할 만큼 부단히 노력한 성과가 나타날지 기대된다.


여긴 좀 무리수인 거 나도 안다 ⓒ LA 다저스


미국으로 시선을 옮기면 역시 다저스 마무리 켄리 잰슨이 떠오른다. 2005년 다저스 입단 후 포수로 뛴 잰슨은 2009년 WBC 네덜란드 대표팀 포수로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타격이 약하고 체격이 너무 커 문제였다. 2009년 중반 불펜투수로 전향. 8개월 만에 MLB 무대를 밟아 투수 재능을 입증했다. 최고 156km에 달하는 가공할 커터를 앞세워 최고 클로저로 부상. 2016~2017년 2년 연속 트레버 호프먼 상을 받고, 2017년 NL 최다 세이브를 거뒀다. 현역 세이브(301) 4위. 하지만 심장 박동 불규칙 증세가 재발하고 구속 하락까지 겹치면서 최근 몇 년은 부진하다. 작년 커리어 최다 8블론 기록. 올해 구속 향상을 바탕으로 반등을 노린다.



제2의 김재윤? 한국판 켄리 잰슨?


과연 투수로 터질까? ⓒ 롯데 자이언츠


나종덕이 투수로 성공한다면 ‘제2의 김재윤’이자 ‘한국판 켄리 잰슨’이 될 수 있으리라. 팬들은 나종덕이 투수로라도 자기 잠재력을 터트리길 바라고 있다. 일단 몸 상태는 70% 정도 회복됐다고 한다. 타격 훈련도 문제없다고. 포수로 마음고생 심했던 나종덕, 투수로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물론 쉽지만은 않을 거다. 황두성은 포수와 투수는 쓰는 근육이 달라 부상 고비가 찾아올 수 있고, 공을 받는 것과 던지는 건 정신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고 했다. 나종덕이 잘 이겨냈으면 좋겠다. 포수 나종덕과 투수 나종덕, 어떤 길을 선택하든 그간 걸었던 기대에 부응하는 대활약의 서막을 열길 응원한다. 올해 롯데를 주목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투수로 성공한 포수, 누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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