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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우재 Apr 29. 2020

KBO 감독들은 왜 징징거릴까?

144경기 둘러싼 갈등, 근본 원인은?

144경기를 다 해야 하나, 줄여야 하나? 논란이 한창이다. 현장은 아무래도 부정적이다. 김태형, 염경엽, 류중일, 이강철 등 절반에 가까운 감독들이 경기 수 축소를 원한다고 밝혔다. 휴식기가 줄고 더블헤더·월요일 경기가 늘어 일정이 빡빡해진 탓이다. 선수 피로 누적으로 경기력 떨어지고 더 쉽게 다칠 수 있다며 아우성친다. 다음 일정을 생각해 경기를 쉽게 포기하는 사례가 생길 수도 있다나. 원래도 144경기가 버거운데, 올해는 더 힘들 수밖에 없다는 거다.


감독들 말에 반응이 엇갈리는데, 대체로 비판하는 의견이 힘을 얻는 듯하다. 한 마디로 이런 거다. 다들 힘든데, 왜 이렇게 징징거리냐? 프로는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해야 마땅하고, 선수들도 별말이 없는데, 왜 감독들이 난리냐는 거다. 벌써 성적 부진에 대한 핑계를 만드는 게 아니냐, 합리적(?) 추측도 나온다. 맷 윌리엄스 KIA 감독은 “144경기에 맞춰 준비하도록 선수들에게 주문했기에 별걱정은 안 한다”고 까리하게 말하잖아. 암, 프로라면 이래야지!



늘 나왔던 144경기 축소 주장


사실 144경기 줄이자는 말이 나온 건 어제오늘이 아니다. 한국야구 현실에서 아직 무리다, 뎁스가 너무 얇다, 경기 질 떨어진다, 이런 말이 현장을 중심으로 계속 나왔다. 근데 이건 정말 핑계다. ‘한국야구의 숙원’이라고 10개 구단 만들 때부터 경기 수 늘리는 건 예견된 일이다. 선수·코치 일자리 늘어나니까 그땐 좋다고 해놓고서, 인제 와서 경기 수 많다고 뭐라 하는 건 아무래도 정직하지 못한 일이다. 정 그러면, 다시 8개 구단 체제로 가든가 해야지.


말이 나온 김에, 뎁스가 얇다는 말도 좀 그렇다. 하기 나름이다. 같은 144경기라도, 김성근 감독 시절 한화처럼 혹사로 쥐어짜면서 뎁스를 망가뜨리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두산과 키움처럼 꾸준히 화수분 야구와 두터운 뎁스 자랑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선수 육성·기용이 그만큼 중요해졌다. 역량 문제다. MLB 봐봐. 40인 로스터 안에서 선수 써야 하고, 선수 승강등 요건도 까다롭다. 우리는 육성선수까지 끌어다 쓰는 데다, 언제든 1·2군행 가능하잖아. 경기 수 줄이면 결국 쓰던 선수만 쓰기 마련이다. 그만큼 다양한 선수 기회가 더 줄어든다.


경기 질을 문제 삼는 것도 의아하다. 리그 수준이 정말 전보다 떨어졌는진 차지하더라도, 경기 질이 떨어지면 사람들이 야구를 안 보나? 물론 수준이 높아지면 좋고, 그런 경기를 보고픈 욕망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재밌으니까 보는 거 아닌가. 가끔 목덜미 잡게 하는 어이없는 실수도 나오고, 그렇게 뭔가 우당탕탕 어거지로 이기거나 지면 마음껏 웃고 울고 욕도 하는 게 우리가 KBO 리그를 보는 묘미 아닌가. 고교야구도 그런 맛에 보는 사람들 있잖아. 경기 질이 그렇게까지 중요한지 잘 모르겠다. 무엇보다 경기 수 줄인다고 경기 질이 오를지 의문이고.



올해만큼은 일리 있어


평상시라면 144경기 축소, 이렇게 반대했을 거다. 하지만 올해는 얘기가 좀 다르다고 본다. 코로나19로 개막이 한 달 넘게 미뤄지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144경기를 다 하면 노동강도가 높아질 게 뻔하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선수들도 루틴이 깨지고 컨디션 관리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다. 피로 누적과 부상 위험이 커지는 건 물론이다. 팀도 최선을 다하지 못하거나 사릴 수 있다. 궁극적으로 재미없는 야구가 펼쳐질 수 있다. 물론, 프로라면 이런 현실도 이겨내고 적응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초유의 사태 앞에서 현장도 좀 우려하고 징징거릴 수 있는 거 아닐까? 예년처럼 무시하고 폄하하기엔 좀 그렇다.


[참고] 144경기 꼭 강행해야 해? | 소탐대실할까 걱정이다


KBO도 난감할 거다. 경기 수 줄이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돈 문제가 걸려있어서다. 안 그래도 코로나19로 구단 수익이 직격탄을 맞았다. 경기 수를 줄이면 중계, 관중, 광고, 상품 판매 등 더 큰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팀당 135경기를 치르면 리그 전체 수입이 300억 원 줄어든다는 보도도 나왔다. 상황이 더 나빠지는 건 막고 싶을 거다. 이 시국에 144경기 다 해서 돈 버는 게 그렇게 중요하냐는 말도 있지만, 그렇다고 간단히 말할 일도 아니다. 야구도 엄연히 산업이다. 무너지지 않게 최선의 방책을 마련할 책임이 KBO에 있다. 그 일을 하는 거다.



근본 문제는 KBO 의사결정 구조


그럼 뭐 어쩌자는 거냐고? 이 말도 맞고 저 말도 맞으니까 좋게좋게 넘어가자고? 그건 아니고, 좀 더 본질적 문제를 생각해보자는 거다. 이렇게 갈등이 생긴 근본 원인이 뭘까? 결국, 폐쇄적인 KBO 의사결정 구조에 있다. 경기 수와 같이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사안을 결정하는 데도, KBO는 현장 의견을 듣지 않고 경영진끼리 결정한다. 늘 그랬다. 노동조건에 변화가 생겨 일종의 노사합의가 필요한 경우에도, 일방적으로 정해서 따르라고 통보하는 식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리그 운영을 논의하는 공식 테이블에 현장 관계자는 참여하지 않았다. 이사회와 실행위는 물론, 코로나19 대응을 논의하는 TF에도 없었다. 그렇게 결정한 일이니, 당연히 뒷말이 나올 수밖에. 언론을 통해 불만이 나오고 불필요하게 시끄러워지고 급기야 여론전 양상으로 치닫는다. 합리적 해결책이 나오지 않고 논란만 커지기 일쑤다. 최고 의사결정 기구가 내린 사안을 두고 반발하는 상황이 되니 모양새도 영 좋지 않다. 모두에게 손해다.


미국 MLB는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땐 선수·심판 노조 등 현장과 사전 협의하고 동의를 받는다. 안 그래도 최근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선수 서비스타임을 인정하되 연봉을 상황에 따라 깎는 걸 골자로 한 노사합의를 하기도 했다. 경기 수, 포스트시즌 제도 변경, 로스터 확대 등을 두고도 노사는 계속 논의할 예정이다. 우리는 이런 게 없다. KBO가 정하면, 현장은 그런가 보다 하고 수용하는 식이다. 이러니까 감독과 선수 들이 불만을 나타내는 경우가 생긴다. 왜 징징거리냐고 무조건 욕만 할 게 아니다. 근본적으로 KBO 의사결정 구조를 바꿔야 한다.


[참고] MLB는 노사합의, KBO와 선수협은? | 코로나19 사태, 소통과 합의가 필요하다



KBO ‘뉴노멀’의 시작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나는 앞선 글에서, 144경기를 현장 의견을 받아들여 줄이되, 구단 부담을 완화하고자 선수 연봉을 깎는 식으로 합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려면 KBO 의사결정 과정에 현장이 들어와야 한다. 왜? KBO 리그는 설령 경기 수가 줄어도 연봉을 그대로 줘야 한다. 규약과 계약이 그렇게 돼 있다. 경기 수 늘린다고 연봉을 더 주지 않듯, 경기 수 줄인다고 연봉을 당연히 줄일 순 없다. 그러니 협의가 필요하다. 근데 KBO든 현장이든 소식이 없다.


KBO는 코로나19 추이에 따라 여차하면 경기 수를 줄일 수 있다고 했다, 만약 경기 수가 줄면, 당연히 연봉 깎자는 말도 나올 거다. 그럼 그때 가서 연봉 문제로 부랴부랴 선수협과 협의할 건가? 그냥 지금부터 깔끔하게 리그 운영을 두고 현장과 합의하고 가는 게 낫지 않을까. 이러나저러나 KBO가 지금처럼 현장과 협의 없이 결정하면 앞으로 뒷말은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 “단장이 현장 간섭하지 않듯이 감독도 행정 관여해선 안 된다”는 것도 옛말이다. 도리어 서로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협의가 절실히 필요하다. 시대가 변하고 세상이 바뀌었다. KBO 의사결정 구조를 개혁하는 것이야말로 요즘 유행하는 말마따나 KBO ‘뉴노멀’의 시작이다.


144경기를 둘러싼 논란이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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