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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잡지 에디터의 생활
By 박찬용 . Aug 10. 2017

잡지 에디터를 하고 싶어 하시는 분들께

어디까지 알아보고 오셨어요?

내가 왜 잡지 에디터를 하고 싶어졌는지는 내 짧은 삶의 가장 큰 의문이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뭘 알았다고 잡지 에디터를 하고 싶어했는지 잘 모르겠다. 지금은 잡지를 좀 아냐면 그런 것도 아니지만. 나도 나를 모를 상황에서 가끔 이런 말을 듣는다. "저도 잡지 에디터 하고 싶었어요." 아니면 "저도 잡지 에디터 하고 싶어요." 왜일까? 나는 그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해 보기로 했다.


라이프스타일 잡지에 나오는 물건이 좋아서일 수 있다. 라이프스타일 잡지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눈에 띄는 물건이 나온다. 눈에 띈다는 데에는 다양한 의미가 있다. 가장 새로운 기술이 들어가서 보통 헤어드라이어보다 30배쯤 비싼 게 잡지에 나온다. 땅 위에서 비행기를 모는 것 같은 가속감이 들기 때문에 4억원쯤 하는 자동차 역시 잡지에 나온다. 한국에 20병밖에 안 들어온 술도, 다다음주면 한국을 떠나는 초 A급 빈티지 시계도 잡지에 나온다. 세상에는 자신의 광채만으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물건이 있다. 잡지에는 그런 물건이 가득하다. 무슨 의미로든 눈에 띄는 물건. 그래서 갖고 싶은 물건.


그런 물건을 갖고 싶으면 잡지 에디터를 하면 안 된다. 좋은 물건을 좋아해서 잡지 에디터를 하고 싶다는 건 보석이 좋아서 보석상에 취직하겠다는 이야기와 비슷하다. 비싼 물건에 관심이 있다면 고소득자가 되어 그 물건을 사는 게 훨씬 좋은 방법이다. 내가 아는 한 한국 라이프스타일 잡지 기자의 월급으로는 잡지에 나오는 그 비싼 물건을 하나도 살 수 없다. 자기 분수에 대한 직시가 없는 상태에서 비싼 물건을 만지면 역효과가 생기기도 한다. 비싼 물건의 보드라움을 좋아하지만 그걸 내 집에 가져갈 만큼의 돈이 없는 사람은 무척 안쓰러워진다.


내가 해도 이것보다는 잘 할 것 같아서 잡지 에디터를 하고 싶을 수도 있다. 당신이 패기에 찬 젊은이라면. 일리 있다. 한국 잡지는 때로 후줄근하다. 어디서 본 듯한 화보, 외국의 흐름을 따라하기 급급한 기사, 훔쳐본 외제를 따라했을 뿐이면서 예술가라도 된 것처럼 허세를 부리는 에디터들. 피처 에디터의 뻔한 기사, 패션 에디터의 지루한 화보. 나른하게 페이지를 넘기면서 내가 당장 해도 이것보다는 낫겠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당신이 하는 생각을 현직 잡지 에디터도 다 한다. 내가 해도 잘 할거란 예상은 개인 주식투자가의 '내가 투자해도 전업 투자자보다는 잘 하겠다'는 생각과 비슷하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잡지 에디터들은 이걸 직업으로 삼으면서 적어도 하루에 8시간은 이 일에 대한 여러 가지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잡지 에디터는 하루에 8시간 이상 이런저런 일에 시달리고 있다. 그 시간 중 이른바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데 쓸 수 있는 시간은 안타깝게도 별로 많지 않다. 잡지 에디터의 업무시간 중 일정 부분은 이루어질지 모르는 섭외에 공을 들이거나 하나마나한 미팅을 계속 해나가는 데 쓰인다.


라이프스타일 잡지에는 연예인이 많이 나온다. 연예인이 좋아서 이 일을 하고 싶을 수도 있다. 잘생기고 예쁜 사람들이 좋아서일 수도, 만개한 재능의 전성기를 바로 옆에서 보고 싶어서 잡지 에디터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실제로 라이프스타일 잡지 에디터가 되면 이런저런 연예인과 잠깐씩 마주치는 게 일상의 일부가 된다. 화보를 찍든 인터뷰를 하든 브랜드 행사장에서 잠깐 만나든. 그런 세계를 동경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연예인을 가까이서 보는 건 멀리서 봤을 때 예쁜 꽃을 가까이에서 보는 것과 비슷하다. 연예인(과 그 매니저)은 기본적으로 만나기 힘들고 때때로 거만하며 가끔씩은 끔찍할 정도로 못됐다. 지난주에 말한 것처럼 매체와 연예인의 관계는 완전히 역전됐다. 지금 한국에서 가장 귀한 콘텐츠는 잡지도 영화도 드라마도 아닌 연예인 그 자체다. 그리고 연예인(과 그의 회사)은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잡지 에디터의 생활 자체가 그럴듯해 보일 수도 있다. 신상품을 가장 먼저 본다. 1년에 두 번씩 열리는 패션 위크에 초대받는다. 고가품을 파는 브랜드의 홍보성 해외출장에 초청받는다. 시장에 안 나온 신제품을 먼저 만져 보기도 한다. 연예인과 친구가 되기도 하고 인스타그램에 동반 셀피를 올리기도 한다. 대중교통으로 가기 힘든 그럴싸한 동네의 그럴싸한 술집에서 그럴싸해 보이는 사람들과 그럴싸한 수입 맥주나 싱글 몰트 위스키를 마시고 집에 가서 그럴싸한 LP를 듣는다.


그 환상을 깨려 이 글을 쓴다. 인스타그램 게시물이 그 사람의 일상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아직도 있을까? 잡지 에디터의 삶이라는 이미지와 진짜 삶에는 꽤 큰 차이가 있다. 이 직업의 수명은 만 40세를 넘기기 힘들다. 보통 잡지 에디터는 어시스턴트를 거쳐 에디터가 되고 에디터를 거쳐 팀장(디렉터)이 되며 디렉터를 거쳐 편집장이 된다. 꼭 편집장이 되려 하지 않아도 나이가 들다 보면 갈 수 있는 곳이 없다. 그리고 한국은 라이프스타일 잡지라는 씬이 생긴지 얼마 되지 않았다. 편집장을 하고 나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답 역시 아직 나오지 않았다.


잡지 에디터는 육체적으로도 고된 직업에 속한다. 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월간지에서 일한다면 한달에 2주 정도는 야근을 해야 할 경우가 많다. 그 중 1주일은 대중교통으로 귀가하기 힘든 시간에 퇴근한다. 대부분의 잡지 에디터는 일한 지 몇 년 안에 목돈 대신 지병을 하나씩 얻는다. 그런 노동의 결과물이 잘 퍼지느냐면 그렇지도 않다. 2017년 8월 현재 대부분 인쇄 잡지의 내용물은 종이를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읽은 당신은 역으로 궁금해질지도 모른다. 이 글을 만드는 당신은 잡지 일을 왜 하는지. 수입이 좋은 것도, 수명이 긴 것도, 그렇다고 뭔가를 구현할 수 있는 환경인 것도 아닌데.


잡지 제작과 편집이라는 일에는 확실한 장점이 있다. 이 일이 늘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아주 좋은 순간은 있다.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처음 들을 때, 그 이야기를 내 손으로 지면에 옮길 때, 머리 속에서 생각했던 이미지가 뛰어난 스탭들의 기술에 의해서 사진이나 페이지라는 형태로 실제로 구현될 때, 그럴 때만 느껴지는 쾌감이라는 건 확실히 있는 것 같다. 이건 아주 큰 매력이다. 요즘 대부분의 직업에서 좋은 순간이란 퇴근과 휴가뿐이기 때문이다. 일을 하는 시간 안에서 쾌감을 느낄 수 있는 직업은 많지 않다고 들었다.


나는 결국 이 직업이 아주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페이지를 만들어서 내가 표현하려는 것을 남에게 알리는 일은 과정적으로도 재미있고 결과적으로도 보람 있다. 잘 하면 티가 난다. 이름 모를 잡지라도, 아무리 작은 페이지의 한 구석이라도. 그걸 누군가는 알아본다. 그 사실을 믿고 어딘가의 사무실에서 정보를 쏘아 보내는 마음으로 페이지를 만든다.


내가 좋은 잡지 에디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일은 하면 할수록 좋은, 더 좋아질 수 있는 일이다. 나는 스스로를 훌륭한 일을 하는 보통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보다 훌륭한 당신은 나보다 더 좋은 페이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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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콰이어> 피처 에디터입니다. 해야 하는 건 다 합니다.
instagram.com/parcchanyong 
iaminseou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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