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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피 Feb 02. 2021

03 사랑은 일상과 공존해야만 한다

/ 모딜리아니의 경우

‘천국에서도 내 모델이 되어주오’
이탈리아 출신 유대인 화가 모딜리아니가 그의 아내 잔 에뷔테른에게 한 말이다.
지금은 약 1,900억 원으로 회화 경매 사상 두 번째로 고가에 낙찰된 ‘누워있는 나부’를 그린 모딜리아니이지만, 생전에 그의 작품은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전시회마저 취소되는 경우 있었다고 한다. 당시의 누드화는 체모가 없고 신화적 요소를 포함해야 했지만 그의 그림은 그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많은 작품에는 눈동자를 그리지 않았다.
눈동자가 없는 그의 그림은 오히려 뚜렷한 의미를 던져 주는 듯하다. 수수하면서도 신비한 그의 눈은 감상하는 이로 하여금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그의 연인 에뷔테른이 모딜리아니에게 물었다.

‘왜, 눈동자를 그리지 않아요?’
‘내가 당신의 영혼을 보게 되면 그때 눈동자를 그리겠소’

잔 에뷔테른

완전한 사랑은 상대방의 영혼까지 사랑하는 것이라 여긴 모딜리아니는 눈동자를 통해서 영혼을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물론 에뷔테른의 초상화에는 그녀의 눈동자가 그려지게 된다. 늘 궁핍한 생활에 찌들었던 그들은 불행하게도 죽음으로써 애틋한 사랑을 확인하고 만다.

원래 모딜리아니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유약했던 그는 결핵과 폐렴으로 지속적인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하지만 부모님의 사업실패로 그는 병을 치료할 기회를 놓치고 외할아버지에게 맡겨지게 된다. 물론 외할아버지는 성심껏 그를 보살폈다고 한다.


수려한 외모를 가졌던 모딜리아니는 파리에서 그의 연인 잔 에뷔테른을 만나게 된다. 14살 차이였던 그들은 모딜리아니가 33세 때 에뷔테른이 19세 때 동거를 시작한다. 모딜리아니를 끔찍이 사랑했던 에뷔테른은 모든 것을 운명이라 여긴다. 심지어 폭력과 계속된 방탕한 생활에도 그의 그림을 지지해 주며 헌신적인 사랑을 보여준다. 그 이유인지 3년의 짧은 동거 기간 동안 그녀의 초상화만 26점을 그리게 된다.

모딜리아니

하지만 더 이상 딸의 어려움을 바라볼 수 없었던 그녀의 부모님은 에뷔테른을 친정으로 데려오고 모딜리아니를 만나지 못하게 한다. 몇 번이고 사랑하는 여인을 찾아간 모딜리아니는 결국 만나지 못한 채 1920년 36살의 젊은 나이로 죽음을 맞이한다. 그의 죽음 이후 소식을 들은 그녀는 이틀 후 자살하고 만다. 당시 그녀는 둘째 아이를 임신 중이었다. 에뷔테른에게 모딜리아니라는 존재는 그녀의 모든 것이었으리다. 이들의 사랑은 2004년 영화 <모딜리아니>로 제작되기도 한다.  


사랑은 아름답고 소중한 것이다. 하지만 생을 버리면서까지 상대방의 존재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는 사랑이 아니라 맹목적 의지일 수 있다. 상실감에 대한 공포와 홀로 남게 된 황막함에 며칠 밤을 괴로워했던 경험을 나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은 이미 겪었고 이겨냈다. 이 또한 사랑의 과정이 아닐까 한다. 태어나 죽을 때까지 단 한 명의 사람을 만나 사랑하고 결실을 맺는다면 다행스럽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별의 아픔과 또 다른 새로운 사랑을 겪기 마련이다.


‘사랑은 움직인다’고 확신한다. 사랑은 또 다른 사랑에 의해 무너질 수 있으며 극복될 수도 있다.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모든 것은 시간이라는 불멸의 명제 앞에서 소멸하고 만다. 사랑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성스러움’만을 찬양하는 사랑은 그 허무함이 드러나는 순간 삶을 목적을 난도질하고 만다. 사랑과 일상은 병립되어야만 한다. 일상을 버린 사랑은 나를 허물고 말 것이다.
사랑이 사라지는 순간 그것에 매달려 슬퍼하기보다 아스라한 기억으로 가슴에 묻어두는 것이 더 아름다울 수 있다. 아프고 슬퍼하며 맘껏 그리워하다 잠들어 버려라! 사랑했던 상대의 기억보다 사랑했던 내 마음의 순간만을 간직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상대방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심은 우리를 우울하고 허무하게 만들고 만다. 사랑은 삶을 가장 윤택하게 하는 행복한 기억이다. 인간에겐 완벽한 삶이 존재하지 않듯 사랑 또한 그러하다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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