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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피 Feb 02. 2021

01. 이대로라면 책방은 사라질 거야

/ 서점의 우울

서점은 외로워지기 시작했다. 어느 사이에 그들을 찾는 사람은 점점 사라지고 말았다. 지나쳐가는 발소리와 번잡한 소음만이 책장 사이를 매우고 있다. 비스듬히 스민 햇살을 타고 종이 냄새가 밀려온다. 하지만 이를 더 이상 낭만으로 또는 지적 탐험의 유혹으로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저 기름 섞인 잉크 냄새 정도로 여긴다.     

서점은 책을 파는 곳이다. 책으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곳이다. 과거와 현재를 기억하며 슬픔과 괴로움을 치유하고 당신의 삶의 가치를 인정하는 유익한 공간이다.    

지금은 여유롭고 편안하게 책을 볼 수 있는 곳이 많다. 서점, 도서관, 북카페 등등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찾아가 위로의 시간을 즐길 수 있다.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닌 듯하다.  10여 년 전부터 불기 시작한 대형 서점들의 고급화로 인한 덕이다.    

도쿄의 다이칸야마(代官山)는 서울의 청담동처럼 부촌이자 트렌디한 곳이다. 2011년 CD와 DVD 대여를 주력으로 하던 츠타야는 새로운 서점을 그곳에 오픈하게 된다. 고급스러운 서가(書架)와 스타벅스의 입점, 다양한 진열 형태를 선보이며 단번에 도쿄 대표 서점으로 떠오르고 신주쿠(新宿)의 키노쿠니야(紀伊國屋) 서점을 압도하게 된다. 곧 2013년에는 규슈 사가(佐賀)현 다케오(武雄)시의 시립도서관을 재개관하여 인구 5만의 작은 시골 마을에 연간 100만 이상의 많은 관광객을 불러들이게 된다.(다케오 시립도서관 인근 아주 맛있는 교자집과 예쁘고 아담한 빵집이 있으니 방문 시 꼭 찾아가 보시라)    

  

츠타야 다이칸야마점

몇 년 후 국내 서점 관계자들은 그 두 곳을 답사하며 새로운 서점 만들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츠타야 서점의 서가를 모방하고 그와 비슷한 분위기를 만들고자 이리저리 인테리어를 바꾸는 것에 그치고 만다. 책 진열마저 따라 했으나 현실에 맞지 않자 이는 포기하기까지 한다. 덕분에 사람들은 고급화된 서점에서 안락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참고로 츠타야를 제외하고 일본 대다수의 서점은 현재도 휴게공간이 거의 없으며 책은 도서관식 서가에 진열되어 있다.    

다케오 시립도서관(홈페이지 참조)

오사카 우메다(梅田) 인근에 츠타야 서점과 마루젠-준쿠도라는 서점이 있는데 두 곳의 분위기는 극명하게 비교된다. 츠타야 서점은 노트북과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젊은이들로 가득 차 있으며 마루젠-준쿠도 서점은 온전히 책 쇼핑을 위한 사람으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나는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마루젠-준쿠도 우메다점을 5차례 정도 방문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지층 포함 모두 8개 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휴게 공간은 전혀 없으며 오로지 책만 가득하다. 하지만 1층에서 운용되는 10~15곳 정도의 카운터는 쉴 새 없이 책 구매 고객으로 바삐 돌아간다.     

마루젠-준쿠도 우메다점

베스트셀러에 진입한 도서는 좀처럼 순위권 밖으로 밀리는 경우가 없다. 3~4년 전에 출간되어 베스트셀러에 진입한 후 지금까지 꾸준히 사랑받는 책이 많다. 독자의 선택을 받은 책들은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가치가 있기 때문에 많은 이들로부터 읽히는 것이리라.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 보면 신간 도서를 선택함에 있어 독자들의 폭이 좁기 때문이기도 하다. 출판사는 팔리지 않는 책을 무작정 찍을 수는 없을 것이고 일반 독자는 좀 더 다양한 책을 만나고 싶은데 좀처럼 찾을 수 없다는 불만을 제기할 수 있다. 누구의 탓이라 말하기 어렵지만 폭넓은 도서 시장이 된다면 고정된 베스트셀러 순위가 아닌 스포츠 경기와 같은 치열한 순위 경쟁도 볼 수 있을 법하다.    

여러분은 대형 서점에 가면 어떤 책들을 구매하시나요? 베스트·스테디셀러를 구매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가장 눈에 잘 띄는 책에 손을 뻗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뭔가 특별함이 있기 때문에 좋은 곳에 진열했겠지 하는 지레짐작으로. 아쉽지만 특별함이란 ‘돈’과 관계가 있다. 대도시 대형서점의 대부분은 출판사로부터 광고비를 받고 진열해 준다. 인터넷 서점도 마찬가지다. 팝업창 등 유독 눈에 잘 보이는 책은 십중팔구 광고비를 지불한 책이다. 자본주의 사회라서 인지 ‘책’마저 ‘돈’으로 그 출발점이 다르게 된다. 마케팅 비용을 많이 쓰는 큰 출판사들은 대형 온·오프 서점의 진열 공간을 확보하여 독자에게 어필하지만 대부분의 소규모 출판사는 제대로 된 진열 기회 없이 창고로 직진하게 된다.    

나는 오랫동안 서점에서 근무했었다. 서점의 전산화가 이루어지지 못했던 시절 서점 직원들의 도서 정보력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문의받는 책에 대한 서지 정보(저자, 출판사, 분야, 가격, 출판 연도 등)와 진열 위치를 알고 있어야만 응대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전산화된 지금은 예전만큼 노력하지 않아도 쉽게 안내할 수 있게 되었다. 빠르고 정확해졌다. 하지만 서점 직원들의 경력은 그 가치가 하락하고 말았다. 이런 현상은 모든 직업에서도 비슷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 서점은 책을 사기 위해 갔으면 한다. 책을 읽고 싶으면 되도록 도서관을 찾으면 좋겠다. 서점의 모든 책은 판매용이기 때문이다. 내가 본 책은 다른 누군가에게 판매될 수도 있다. 하지만 두세 번 이상 읽힌 책은 티가 나기 때문에 출판사로 반품되고 만다. 바로 폐지가 되는 샘이다. 하루에도 어마어마한 책들이 주인을 만나지도 못한 채 폐지 신세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고 임대료 조차 버거운 오프라인 서점들이 모든 책을 현금으로 구매할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어제 그 서점에서 무심코 본 그 책은 오늘 폐지가 됐을 수도 있다.    

사라진 서점은 좀처럼 늘지 않을 것이다. 소규모의 동네 서점들이 만들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이마저 카페를 병행하지 않으면 생존이 힘들다. 대형 서점들 또한 줄어드는 독자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광고 수입을 늘릴 수밖에 없고 본업인 책 판매보다 다른 사업을 통해 수익을 창출해야만 한다. 출판사 또한 생존을 위해 양질의 도서보다는 잘 판매되는 ‘상품’을 만들어야 하며 고액의 판권을 지불하고 해외 베스트셀러를 번역하는 일에 집중하기도 한다. 서점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직업에 대한 자부심에 상처 받기 시작했으며 드라마에서처럼 멋진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나의 청춘은 서점과 함께 했다. 20년 넘게 크리스마스, 어린이날, 명절 연휴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며 살았었다. 그러한 서점이 모든 면에서 흔들리고 있다. 멋있고 안락하게 변한 것 같지만 이면에서는 너무나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서점에 인생을 저당 잡힌 나의 선배들도 같은 이야기를 많이 한다. 하지만 뾰족한 해결책은 없어 보인다. 이 또한 시대의 흐름인가? 기억과 경험의 DNA를 가진 ‘책’. 잃어버리면 안 될 소중한 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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