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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은 누구의 것인가: AI 수석 지명과 한국형의 허상

대통령실 AI 수석 지명: 기대와 불안이 교차하는 지점

by 박 스테파노

요즘 우리 사회는 ‘인공지능’이라는 거대한 물결 앞에서 환호와 불안을 동시에 안고 있다. 대통령실에 AI 수석이라는 직책이 신설되고, 그 자리에 네이버 AI 센터장을 지낸 하정우 박사가 지명되었다는 소식은 그러한 복합적 감정의 결을 더욱 뚜렷하게 드러낸다. 누군가는 이를 혁신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이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조심스럽게 불안을 내비칠 것이다. 특히 그의 이력과 그가 몸담았던 거대 플랫폼 기업의 특성을 생각할 때, 우리는 이번 지명이 한국 AI의 미래에 어떤 방향성을 부여할 것인지, 성급한 낙관을 거두고 비판적으로 성찰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NS의 타임라인에는 그와 스쳤던 인연과 함께 찍은 사진과 함께 후한 평가 일색이다. 그 평가에는 전문적 인사이트는 살필 길이 없고 그저 '내가 좀 아는데', '내가 겪어 봐서 아는데' 등의 인연, 그것도 전문적인 업무와 프로젝트가 아닌 관계만 가득이다. 범인들이야 그럴 수 있지만, 공적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과연 무슨 생각일까. 한심의 시간이 벌써 다가 오는 듯 하다. 그놈의 '한국형'이 등장함과 동시에.


AI 미래기회수석에 하정우 네이버 AI센터장을 임명했다. 경향신문


특정 기업 출신의 ‘AI 수석’, 그 불편한 지점


하정우 박사는 네이버라는 국내 최대 플랫폼 기업에서 AI 기술 개발을 이끌어온 인물이다. 그 이력은 충분히 인상 깊다. 다만, 문제는 그의 전문성이 곧장 국가적 공정성과 직결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특히 네이버와 같은 폐쇄적 생태계를 기반으로 한 기업 출신이라는 사실은, 국가 정책의 최전선에 설 인사로서 공정성에 대한 구조적 의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국가 전략을 수립하는 자리에 앉는 이상, 그가 과거 속에서 체득한 관점이 대한민국 전체의 AI 생태계로 확장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물음이 따라붙는다. 네이버라는 깊고 특정한 우물에서 벗어나, 보다 넓고 복합적인 생태계의 사유로 이동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혹은, 거대 플랫폼 중심의 기술적 경험이 스타트업, 중소기업, 공공 연구기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데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까? 엔지니어 개인의 호기심을 국가의 정책을 무게 중심 낮추고 포기할 수 있는가?


이러한 불안은 특정 인물에 대한 불신이라기보다는, ‘공정성’과 ‘다양성’이라는 국가 전략의 두 축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구조적 우려에서 비롯된다. 기술이 아닌 언론 공보의 영역에서 특정 언론사나 포털 플랫폼 출신들의 자리잡음이 그들의 이력의 관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보았다. 그 토양에서 자란 뿌리는 같은 토양을 바라기 마련이다. 기술 분야는 그 고정적 관성이 더 깊다.


게다가 플랫폼 기업은 언제나 ‘데이터 독점’이라는 그림자와 함께 움직인다. 방대한 사용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고도화 전략은 민간 기업의 성장 전략으로서는 타당하지만, 그것이 국가 정책으로 옮겨붙을 경우에는 문제가 달라진다. 데이터의 공유와 개방, 공동의 혁신이라는 공공성의 원칙이 중앙 집중화와 기업 중심의 활용으로 왜곡될 가능성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 결과가 AI 기술의 독점 구조 심화라면, 이는 오히려 생태계 전반의 쇠락을 초래할 수 있다.


하 수석이 공공적 역할을 했다는 것은 '소버린 AI'에 동참하여 주도하고 목소리를 높였다는 점이다. 대통령실도 지명 이유에 이를 강조했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 한국 IT생태계의 최대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데이터 주권, 기술 주권 등 말은 좋지만 쇄국 정책의 다른 말일 수 있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말해 한국은 풀 스택의 AI를 마련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된다.


https://brunch.co.kr/@parkchulwoo/908

업계에서는 농담처럼 "한국형이 돌아가셔야 한국이라는 집안이 산다"라고 이야기한다. 최근 조사에서 ‘한국형'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데이터 분석했었다. 이 단어가 어떻게 쓰이나 봤더니 연관 단어들이 부정적인 감성 보였다. ‘부실', ‘졸속', ‘예산 낭비' 등이었다. 2008년 이전까지 약 12년간 ‘한국형’이란 키워드가 등장한 건 200여 건에 불과했는데, 2008년 이후 올해까지 8여 년 동안 무려 2000여 건 등장했다. 10배 이상 급한 것이다.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재임 기간에 주로 쓰인 것을 확인했다. 묘하게도 이 시기와 맞물려서 ‘부정적' 감성도 함께 증가한다. 정부에서 '한국형 OO’를 만들겠다고 발표하면 '우선 한국형 OO’를 어떻게 만들지 연구용역을 준다. 눈먼 돈이 돌기 시작한다. 정부는 이 사업을 추진하는 조직을 만들고, 관련 인력을 양성한다고 교육기관에 지원을 해주고, 이런 과정에서 예산이 증발해 버린다. 한국형이 튀어나와 소리 없는 아우성식의 결과가 도출된다. 사과를 이야기했는데 배추가 나온 격이다.

-본문 중-



‘올 스택’의 유혹, ‘도메인 중심’의 가능성


이전 글에서 한국이 ‘소버린 AI’를 꿈꾸더라도, ‘올 스택(All-Stack)’의 완전한 자체 구축보다는, ‘도메인 중심 AI 구현 국가’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천문학적 개발비, 기술 격차, 소비자 중심의 피드백 루프라는 한국 ICT의 역사적 조건을 고려할 때, 이는 더 현실적이며 전략적인 선택이다. 지금 OpenAI, Google 등과 경쟁할 준비를 하자고? 미안하지만 망상과 몽상이다. 지난 시간을 생각해 보자. 한국은 왜 CPU 생산국이 되지 못했나? 그렇다면 OS라는 운영체제는? 이웃 국가 일본은?


그러나 하정우 박사의 지명과 그의 일련의 발언들은, 어딘가 ‘올 스택’의 유혹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한 듯한 인상을 남긴다. 실제로 그는 한국어 특화 LLM 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자체 기술 중심의 생태계 구축을 거듭 언급해왔다. 그의 이력상 이는 자연스러운 연장선일 수 있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자체 LLM 중심의 생태계’는 곧 국가가 범용 거대 모델 개발 경쟁에 다시 뛰어드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를 남긴다. 그 지긋 지긋한 '한국형'이 또 나온 셈이다.


지난번 강조한 ‘도메인 중심의 AI 국가’란, 범용 AI 모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특정 산업 문제를 해결하는 실질적 응용을 통해 성과를 창출하자는 전략이다. 강력한 글로벌 모델 위에 한국의 고유한 도메인 데이터와 기술을 얹어 실용적 가치를 창출하는 길, 바로 그것이 우리가 집중해야 할 방향이다. 자체 모델 개발만을 강조하는 기조는 ‘사용자 중심의 기술 진보’라는 한국적 성공 방정식과 멀어질 수 있다.


네이버가 그동안 쌓아온 경험은 도메인 특화형 AI보다는 ‘자체 기술 스택’의 완성을 향해 있었다. 그러한 시야가 그대로 국가 전략에 반영된다면, 다양한 산업군과 현실 문제에 AI를 접목하는 방향보다는, 또다시 ‘거대 모델 경쟁’이라는 늪에 빠질 위험이 있다. 그것은 곧, 제한된 자원의 비효율적 사용을 의미한다. 우선 네이버의 현주소를 보라. 그 흔한 생성형 LLM 서비스 대중화를 하고 있는가? 성과 검증되지 않은 아이디어 도출가들은 자문에 그쳐야 한다.



‘기술 공급’의 시야에서 ‘기술 사용’의 시야로


기술 개발자에게 익숙한 프레임은 언제나 ‘기술 공급자’의 시야다. 더 빠르고, 더 정교하며, 더 거대한 모델을 설계하고 구현하는 것. 그것이 그들의 존재 이유이며, 그들이 지금껏 이룩해온 성공의 방법론이다. 그들은 자기 자신도 모르게 기술의 관성에 빠진다. 사용자나 산업, 시장보다 엔지니어 입장에서 have to nice한 것을 쫓기 마련이다.


그러나 대통령실 AI 수석이라는 자리는, 기술 공급자의 능력만으로 감당할 수 없는 자리다. 그것은 기술을 ‘어떻게 쓸 것인가’, 즉 사회적 효용의 극대화와 기술 사용의 철학을 고민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저 'AI 주권'이라는 슬로건이 그의 정책 설계와 조율의 능력을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공급 중심의 시야는 때로 기술 자체의 고도화에는 성공하지만, 그것을 현실 문제의 해결로 연결짓는 데 실패하곤 한다. 자체 LLM의 성능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하는 사이,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은 여전히 AI의 실질적 도움을 받지 못할 수 있다. 거대 기업의 기술 성과가 국가 전체의 AI 역량인 양 포장되어, 다층적 혁신 주체들의 다양성이 가려지는 일 또한 경계해야 한다.


한국 ICT는 '잘 만드는 기술’보다 ‘잘 쓰는 기술’을 통해 진화해왔다. 기술을 소비하며 개선하고, 사용자 피드백을 통해 기술을 사회적 도구로 만들어내는 과정, 그 속에서 우리는 실질적인 진보를 이루어냈다. AI 시대라고 해서 다를 이유는 없다. 오히려 AI가 어떻게 삶을 개선하고,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며,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에 집중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강점을 가장 잘 살리는 방식이다.


AI 수석은 기술 개발의 전문가이기 이전에, 기술의 사회적 맥락과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복잡한 목소리를 통합할 수 있는 통찰력의 소유자여야 한다. 기술 공급자의 시야를 넘어서, 기술 사용자들의 삶과 필요를 중심으로 사고하는 전환이 절실하다. 드디어 공대생의 시대가 왔다고 환호하는 뒷 면에는 정책적 훈련과 인문학적 고찰이라는 기본 능력에 대한 검증 회피가 자리 잡고 있을지도 모른다.


Sovereign AI라는 개념은 양날의 검과 같다. Sora



미래를 위한 질문, 선택의 윤리


하정우 박사의 지명은 분명 한국 AI 정책에 있어 중요한 분기점이다. 그의 전문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바로 그 전문성에 기반한 과거의 시야가 미래 정책의 전부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대통령실 AI 수석은 특정 기업의 기술 프레임을 국가적 방향으로 확장시키는 자리가 아니라, 국가 전체의 기술 전략을 공정하게, 균형 있게 이끌어야 할 자리다.


한국이 '소버린 AI'라는 목표를 추구하는 것 자체는 국가 안보와 미래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중요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올 스택 자체 구축'이라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비현실적이고 비효율적이며, 오히려 국가 자원의 낭비를 초래할 위험이 크다.


대신 한국은 '선택과 집중' 전략을 통해 AI 주권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데이터 주권 및 관리 역량 강화: 클라우드 인프라 자체 구축보다는 데이터 관리 및 보안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여 데이터 주권을 확보하는 데 집중.


-특정 AI 기술 분야 선점: 범용 AI 모델보다는 한국의 강점(예: 제조업, 헬스케어, 반도체)과 연계된 특화 AI 모델 개발 및 고도화에 집중 투자.


-AI 반도체 설계 역량 강화: 자체 파운드리 역량과 연계하여 AI 반도체 설계 분야에서 경쟁력 있는 IP를 확보하는 데 집중.


-글로벌 파트너십 및 오픈소스 활용: 글로벌 AI 생태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오픈소스 기술을 활용하여 불필요한 중복 투자를 피하며 효율성을 극대화.


즉, 한국의 소버린 AI 전략은 '전략적 자율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하이브리드 접근 방식'이 되어야 한다. 진정한 ‘소버린 AI’란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려는 고립의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글로벌 생태계와의 전략적 연계 속에서, 우리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자율성과 판단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냉정한 자기 진단이 최우선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몇 가지 본질적인 질문을 지속적으로 던져야 한다.


-AI 수석은 특정 기업이나 집단의 이익이 아닌, 대한민국 전체의 공정한 생태계를 설계할 수 있을까?


-‘자체 개발’이라는 기술자의 시야를 넘어, ‘도메인 중심’이라는 사용자 중심 전략으로 방향을 전환할 수 있을까?


-세계적 AI 기술과의 협업, 오픈소스 생태계 활용이라는 효율적 길을 걷기보다, 또다시 무리한 ‘올 스택’ 경쟁에 몰입하는 일은 없을까?


이 질문들에 대한 치열한 사유와 토론 속에서, 우리는 AI 미래를 향한 가장 ‘한국적인 길’을 모색하게 될 것이다. 하정우 박사의 역할은 크고, 그에 대한 기대 또한 무겁다. 그의 전문성이 특정 기업의 울타리를 넘어, 한국 사회 전체의 기술 주권과 ‘쓸모 있는 AI’를 향해 나아가길 바란다. 동시에 우리는 성찰하는 시민의 시선으로 그의 선택을 지켜보고 질문해야 한다. 기술의 미래는 기술자만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질문과 판단, 집단 지성이 빚어내는 공동의 결과물이다.


얼마 안되었으니, 허니문이니, 첫걸음이니 지켜 보자는 말은 지난 시절 저들과 똑 닮은 거울상이다. 인사는 참 어렵다. 목소리 큰 세력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는 세상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적어도 오랜 기간 데이터 공공성에 대한 고민을 한 입장에서 이번 인사는 환영보다는 우려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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