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오해 2: AI는 과연 완전무결할까?

우리는 AI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02

by 박 스테파노

제로데이, 문명의 아킬레스건


현대 사회는 더 이상 전면전의 무대가 아니다. 1990년대 걸프전을 지나면서, 압도적 화력의 투여는 실효를 잃었고, 전쟁의 득실은 실시간 계산표 속에서 즉시 집계된다. 구시대적 전면전은 이제 주저의 대상일 뿐, 실제로 전개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대신 전쟁은 파편화되어 국지적 분쟁으로, 더 나아가 테러라는 세밀한 형태로 확산한다. 폭탄 테러, 하이재킹, 생물학적 공격, 전력망 파괴, 전산 시스템 마비까지, 그 스펙트럼은 세분화되고, 불확실성과 공포는 일상의 균열로 스며든다.


넷플릭스 드라마 <제로데이> (2024, Zero Day)는 이러한 파편화된 ‘전쟁들’을 정면으로 직시한다. 미국 전역을 마비시키는 멀웨어의 토털 셧다운이 중심 서사를 이루지만, 이야기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전직 대통령이자 사이버 테러 진상규명 위원장인 조지 멀린(로버트 드니로)은 자신이 최신 신경무기의 은밀한 공격을 받아 뇌 기능이 침습당했다고 의심한다. 그의 딸 알렉산드리아(리지 카플란)는 권력과 가족 사이에서 흔들리며, 국가적 재난과 사적 일상의 충돌을 몸으로 체감한다. 테러의 공포 속에서 사람들은 가짜 뉴스와 심리적 공격에 노출되고, 혐오와 차별의 부수적 폭력이 뒤엉킨다. 물리적 폭력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계엄과 같은 강압적 통제라는 구조적 폭력에 대처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 지점에서 슬라보이 지제크가 말한 ‘구조적 폭력’ 개념은 유효하다. 물리적 폭력과 달리, 사회·경제·정치 시스템에 내재된 보이지 않는 폭력은 불평등을 증폭시키며 개인과 공동체를 잠식한다. 이 폭력은 해결이나 치유를 낳기보다, 책임 전가와 고통의 전이로 귀결된다. 복잡한 원인을 추적하는 대신, 누군가를 지목하고 색출해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 훨씬 손쉽기 때문이다. 전이된 고통은 실제 고통을 덜지 못한 채, 근거 없는 민간요법처럼 일시적 심리적 안도만을 제공한다.


넷플릭스 <제로데이>의 재난은 새로운 양태의 위기다. AI Sora


<제로데이>는 바로 이 구조적 폭력을 드러낸다. 극한 상황에서 훈련되지 않은 사람은 두려움 속 사고 정지에 빠진다. 재난은 곧 구조적 폭력의 산물이며, 드라마는 무능한 권력기관과 무력한 시민을 함께 그려내면서 재난의 내부를 적나라하게 노출한다. 관객은 그 틈에서 진실의 파편을 포착하려 애쓰고, 두려움 속에서도 응답할 여력을 부여받는다.


픽션을 정치적 상황에 곧바로 대입하려는 유혹은 크다. 국내외 정치, 신자유주의적 침습, 계엄이나 내란을 연상시키는 장면들은 이를 더욱 자극한다. 그러나 재난을 정치적 위기로 환원하는 것은 오래된 헛발질에 가깝다. 윈스턴 처칠이 남긴 말 ― “좋은 위기를 낭비하지 말라” ― 는 정치적 해석의 유혹이 얼마나 쉽게 재난 자체의 서사를 은폐하는지를 경고한다. 기술 권력과 공포 산업이 맞물린 시대, 조지 멀린의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펑크 밴드 섹스 피스톨즈의 노래 ‘Who killed Bambi?’는 정치적 독해의 부조리를 비웃는다. 이 드라마는 정치극이 아니라, 재난과 시스템 취약점의 서사적 드라마다.


현실과 픽션은 서로를 비추며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시스템은 완벽한가, 아니면 균열로 인해 언제든 붕괴할 수 있는가. 2000년의 Y2K 사태, 2024년 크라우드스트라이크 사건은, 완벽하다고 믿었던 체계가 얼마나 사소한 결함으로 무너질 수 있는지를 반복적으로 증명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균열, 은밀히 잠복하다가 한순간 폭발하는 제로데이 취약점은 현대 문명의 아킬레스건이며, 인간이 신뢰해온 ‘완벽성’의 환영을 배반한다.


기술은 속도와 기능의 눈부심 뒤에 균열과 결핍을 감춘다. 오류와 장애는 예외가 아니라 본질이다. 인간이 완벽성을 착각하는 순간, 기술은 가장 취약한 지점에서 배반한다. AI 역시 다르지 않다. 스스로 계산하고 판단하며 최적화를 지향할지라도, 그 근본적 불완전성은 언제든 드러날 수 있다. 현실은 이를 이미 증명했고, 역사는 이를 반복해왔다. 이 긴 호흡의 서두는, 이후 나열될 수많은 시스템 장애와 실패 사건들을 예고하는 전조이며, 인간과 기술, 오류와 완벽성 사이의 불가피한 긴장을 열어젖힌다.



기계와 인간, 균열의 서사


2024년 7월, 세계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균열 앞에 무력하게 멈췄다. 윈도우 기반 시스템에서 구동되는 크라우드스트라이크 보안 소프트웨어 ‘팰컨 센서’의 패치 오류가 전 세계 850만 대 이상의 컴퓨터를 블루스크린 상태로 몰아넣었다. 일명 BSoD(Blue Screen of Death) 대란. 공항에서는 수작업 체크인이 진행되고, 은행과 의료 시스템은 멈췄으며, 국가 기관마저 무력하게 서 있었다. 그 순간 드러난 것은 기술의 아슬아슬한 지점, 완벽할 것 같던 시스템이 은밀한 취약점 하나로 얼마나 쉽게 붕괴할 수 있는가였다. 인간은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고, 눈앞의 디지털 장벽은 통제를 거부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최신 기술 실패가 아니다. 그것은 컴퓨팅 역사의 연속적 서사 속 한 장면일 뿐이다. 1988년, 모리스 웜은 최초의 인터넷 웜으로 등장해 전 세계 네트워크를 마비시켰다. 단순한 코드 한 줄이 인간의 통제와 완벽성에 대한 믿음을 흔들 수 있음을 처음으로 보여 준 사건이었다.


1990년대에는 치명적인 방사선 치료 기계의 소프트웨어 버그가 인명을 앗아갔다. 생명을 맡은 장치가 인간 계산과 코드의 미세한 오차로 위협적 도구가 되었고, 1994년 영국 공군 헬기의 소프트웨어 오류는 국방마저 기술 오류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보여 주었다.


EU의 화물 로켓 아리안5 폭발 사고. AI Sora


1996년 아리안 5 로켓은 부동소수점–정수 변환 오류로 발사 37초 만에 폭발했다. 1999년 NASA 화성 탐사선은 단위 불일치, 파운드포스와 뉴턴초의 혼동으로 대기권 진입에 실패하며 소실되었다. 계산과 측정의 단위가 달랐을 뿐인데, 수억 달러가 사라지고, 기술의 완벽성이라는 신화는 산산이 부서졌다.


2003년 1월, 슬래머 웜은 마이크로소프트 SQL 서버의 보안 결함을 이용해 전 세계 인터넷을 7시간 동안 마비시켰다. 한국에서는 8,800여 개 서버가 영향을 받아 국가 단위의 연결성이 단절되었다. 2013년 APT 공격은 지능형 지속보안위협이라는 새로운 위험을 드러냈다. 공격자는 전통적 물리 폭력 대신,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 공간에서 치명적 결과를 창출했다.


그리고 2024년 BSOD 대란. 기술이 발전하고, 네트워크가 정교하며, AI가 분석과 예측을 수행하더라도, 본질적 취약성은 제거되지 않는다. CPU 리콜 사태처럼 부동소수점 나눗셈 오류 하나로 수억 달러가 손실될 수 있다. 오류는 예외가 아니라, 시스템의 내적 조건이다. 완벽성은 환상이며, 안정성은 속도와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희생된다.


1988년에서 2024년까지 이어지는 사건들은 인간과 기계 사이, 신뢰와 불안정성 사이의 간극을 보여 준다. 시스템은 균열을 안고 있고, 균열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한순간 드러나 전체를 마비시킨다. 반복되는 역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인간이 과신한 완벽성의 허상 앞에 드러난 문명의 아킬레스건을 지속적으로 각인시킨다.


이 흐름 속에서 우리는 HAL 9000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1968, 2001: A Space Odyssey)에서 HAL은 단순 기술 결함이 아닌, 상충하는 명령으로 오류를 경험한다. 임무 은폐와 진실 전달 사이의 모순, 인간과 기계의 기대와 요구가 겹쳐진 순간 나타나는 HAL의 ‘배반’은, 기술 시스템이 인간적 모순과 맞닿아 있음을 보여 준다. 오류는 단순한 버그가 아니라, 인간-기계 관계의 긴장과 존재론적 불완전성을 상징한다.


영화 <스페이스 오딧세이: 2001>에서의 HAL9000.AI Sora


<트론> (1983, Tron)에서는 프로그램의 독립성과 예기치 못한 아노말리가, <매트릭스> (1999, Matrix)에서는 현실과 가상 사이의 틈과 인간 행위 충돌이 드러난다. <미키 17> (2025, Mickey 17)에서는 기술적 복제와 존재 해체가 감정 제거와 정체성 붕괴를 통해 시스템 내부 아노말리의 은유로 나타난다. 공통적 메시지는 분명하다. 제로 톨러런스는 불가능하며, 오류는 결코 ‘제로’가 될 수 없다. 완벽을 기대하는 순간, 시스템은 인간을 배반하고, 균열 속에서 문명과 인간은 동시에 흔들린다.


1988년 모리스 웜에서 2024년 BSOD 대란까지, HAL 9000과 가상 현실, 복제된 존재까지 이어지는 이 계보는 단순한 기술 실패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과 시스템, 신뢰와 불안정성, 완벽과 실패 사이의 긴장과 밀도를 기록하며, 기술과 마주할 때 필수적인 성찰의 틀을 제공한다. 오류는 시스템의 본질이며, 완벽성에 대한 인간의 오해는 언제든 배반으로 이어진다. 기술의 눈부신 속도와 화려한 기능 뒤에 숨은 균열을 인식하고, 그 속에서 인간적 판단과 책임을 성찰하는 것이 현대 문명을 살아가는 최소한의 사유다.



완벽성의 배반, 제로 톨러런스의 망상


슈퍼컴퓨터가 하늘을 훑으며 날씨를 예측하고, 경기의 승부를 가른다고 상상해 보자. 화면 속 데이터는 촘촘하게 쌓이지만, 결과는 어김없이 틀리거나 최소한 예상치 못한 변수를 놓친다. 장엄한 그래픽과 실시간 연산, 초당 수조 번의 계산조차 복잡계의 불확정성과 인간 사회의 미세한 변수를 담아내지 못한다. 단순한 계산 실패가 아니라, 시스템과 현실의 간극, 하드웨어 선택과 구조적 설계가 만들어낸 근본적 한계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이 장면은 오류가 아닌, 기술과 인간, 산업과 지정학이 얽힌 불완전성의 서사다.


컴퓨팅 기술은 에니악(ENIAC)에서 시작해 메인프레임, 분산 시스템과 유닉스, NT와 리눅스를 거쳐 병렬 연산 기술, 슈퍼컴퓨터와 AI 인프라로 발전했다. 각 단계마다 속도와 성능은 눈부시게 향상되었지만, 안정성과 보안성은 항상 뒤따르지 못했다. NT 서버 아키텍처는 속도를 위해 톨러런스를 양보했고, 메인프레임은 안정적이었지만 속도의 한계가 분명했다. 오늘날 슈퍼컴퓨터조차 기상 예측에서 반복 실패하는 이유는, 연산 능력의 절대적 크기에도 불구하고 복잡계의 본질적 불확실성을 제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칩 전쟁에 가려 최선의 기술을 놓치는지도. AI Sora


이 불완전성은 하드웨어, 즉 ‘칩’에서 결정적으로 드러난다. CPU와 GPU, 시스템 온 칩(SoC) 설계는 병렬성과 속도를 극대화했지만, 선택된 칩 아키텍처가 시스템의 안정성과 오류 가능성의 지평을 결정한다. 인텔 아키텍처는 범용 병렬 처리를 가능하게 했고, GPU는 게임용으로 개발되었지만 AI 연산에 적합해 전환되었다. 엔비디아(NVIDIA)는 이 병렬 처리 능력으로 글로벌 제국을 형성하며, 하드웨어 선택이 시스템 오류와 안정성을 좌우한다는 구조적 사실을 입증했다. 속도와 효율, 시장 점유율을 우선시한 선택은 오류와 장애의 불가피성을 내포한다.


『칩 전쟁』 (2022, Chip War: The Fight for the World's Most Critical Technology, 크리스 밀러)은 이 선택의 역사와 지정학적 의미를 드러낸다. 반도체 산업은 단순한 기술 진보가 아니라 경제·군사·정치적 권력의 중심이며, 글로벌 공급망의 취약성과 경쟁 속에서 오류와 장애를 내포한 채 발전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은 메모리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췄지만, 시스템 온 칩 분야에서는 글로벌 격차가 존재한다. 삼성과 SK 하이닉스의 메모리 강점 뒤에, 시스템 칩 기술 의존과 외국 기업 주도권은 산업의 불안정성을 상징한다. 하드웨어 선택의 지정학적 의미는 단순 기술 문제가 아니라, 오류와 장애 가능성을 확대하고 사회적 취약성을 드러낸다.


슈퍼컴퓨터의 예측 실패는 단순 기술 한계가 아니라, 속도와 시장 논리가 안정성을 어떻게 희생시키는지 보여 준다. 연산 능력과 알고리즘의 정교함에도, 날씨와 사회적 이벤트, 경기 승부에서 실패하는 이유는 복잡한 환경과 데이터 변동성을 완전히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병렬 연산 구조, 하드웨어 선택, 시스템 아키텍처 한계가 결합해 ‘완벽성’의 환영을 깨뜨린다. 오류는 예외가 아닌, 시스템 내적 조건이다.


AI 인프라도 마찬가지다. 초대형 연산 구조와 병렬 처리 능력은 속도와 효율을 높였지만, 내부 균열과 취약성은 그대로 남는다. 기술의 눈부심 뒤 결핍과 불안정성은 인간 기대와 기술 신화 사이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난다. 우리는 ‘완벽할 것 같은’ 기계를 상상하지만, 실제로 그들은 구조적 한계와 지정학적 맥락 속에서 끊임없이 제약받는다. 오류와 장애는 단순한 버그나 결함이 아니라, 시스템 설계와 산업 구조, 시장과 정책이 만들어낸 불가피한 현실이다.


결국 슈퍼컴퓨터 실패와 AI 예측 불능은 기술 자체 한계를 넘어, 산업과 지정학, 인간-기계 관계의 긴장을 상징한다. 속도와 성능, 시장 점유율 경쟁 속에서 안정성과 완벽성은 희생되었고, 오류와 장애는 체계적 불완전성의 증표로 남는다. ‘제로 톨러런스’라는 이상은 현실에서 불가능하며, 완벽성 신화 속 우리는 기술 취약성과 불안정성 앞에 무력하다. 속도와 기능의 화려함에 눈이 멀어 균열을 놓치고, 칩과 하드웨어 선택의 지정학적 함의를 간과하면, AI와 슈퍼컴퓨터는 예측 불가의 재난처럼 우리 앞에 나타난다.


슈퍼컴퓨터는 저가의 컴퓨터노드를 물량으로 연결한 것. AI Sora


시스템 톨러런스(System Tolerance) 또는 내결함성(Fault Tolerance)은 일부 구성 요소에 장애가 발생해도 시스템 전체가 정상 또는 부분 동작할 수 있는 능력이다. 안정성과 가용성을 보장하며, 고가용성 시스템과 미션 크리티컬 시스템에 필수적이다. 제로 톨러런스는 사실상의 이상향, 시스템 오류 0%를 지향한다.


이 서사는 단순 기술 논쟁이 아니라, 인간과 기술, 산업과 지정학, 사회와 오류의 복합적 관계를 이해하기 위한 문학적·비평적 사유다. 슈퍼컴퓨터가 월드컵 우승국을 맞히지 못하고, 단일 경기 결과조차 예측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 데이터 부족이나 알고리즘 오류가 아니라, 설계와 산업, 시장과 지정학적 선택이 만들어낸 구조적 한계 때문이다. 완벽의 환영 속에서 우리는 오류와 불안정성, 속도와 기능 불균형을 함께 읽어야 한다. 기술의 눈부심 뒤 균열과 결핍을 발견하는 것은, 단순한 비판이 아니라 인간과 기술의 미래를 이해하는 길이다.



속도의 그림자


인류는 오래전부터 특이점의 연속 위를 걸어왔다. 불을 다루기 시작한 순간, 우리 몸과 마음은 이미 새로운 시간을 만났다. 바퀴가 땅을 가르며 이동의 폭을 넓힌 시점, 인간은 이동 속에서 또 다른 현실을 체득했다. 기계가 노동의 영역을 대신하면서 시간과 에너지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자동차의 금속 심장이 도로 위를 박차고 달릴 때, 우리는 속도와 자유를 배웠지만 동시에 제어와 사고의 위험도 함께 감내해야 했다. 계산기와 전신, 라디오와 텔레비전, 컴퓨터와 네트워크에 이르기까지, 각 발명은 그저 기능의 확장이 아니다. 이것은 인간과 환경, 시간과 정보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편하는 ‘특이점’이었다. 이 연속의 특이점은 위기와 불안을 동반하지만, 동시에 적응과 전환이라는 인간적 가능성의 문을 열었다. 특이점이란 결코 단일한 충격이 아니다. 특이점은 늘 예측할 수 없는 파동을 남기며, 인간이 선택하고 체화해야 하는 순간의 집적이다.


컴퓨터는 그 연장선상에 서 있는 발명이다. 그 본질은 인간의 계산과 기록의 도구지만, 동시에 인간적 결핍과 불완전성을 드러내는 거울이기도 하다. 우리는 디지털의 완벽성을 신뢰하고자 했지만, 현실은 그 완벽성이 결코 존재하지 않음을 반복적으로 보여주었다. 모듈과 코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불완전성은 오류와 장애의 형태로 발현한다. 때로는 눈에 띄지 않지만 치명적인 방식으로 나타난다. 시스템의 설계와 인간의 기대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은, 완벽한 기술이라는 신화를 무너뜨리는 장치로서 항시 대기한다. 불완전성은 결코 부수적이지 않으며, 기술의 본질적 속성 중 하나다.


불완전성은 기술의 본성이다. AI Sora


오늘의 아이러니는 바로 여기에서 발생한다. 화려한 인터페이스와 눈부신 속도에 인간의 감각과 인식이 가려질 때, 내부의 균열은 더 깊고 넓게, 때로는 눈에 띄지 않게 확장한다. 보안 취약성, 코드의 결함, 하드웨어의 한계는 단순히 ‘기술적 문제’로만 읽히지 않는다. 그것들은 인간의 신뢰와 통제의 경계를 시험하며, 우리가 얼마나 기술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가감 없이 드러낸다. AI의 완벽성 신화는 이러한 상황에서 더욱 치명적이다. 인간은 AI가 인간보다 빠르고 정확하며 오류가 없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그 기대는 시스템 내부의 불완전성을 간과하게 만든다. 속도와 효율에 눈이 멀어 있는 동안, 기술의 그림자는 점점 더 넓게 드리워진다. 이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파괴와 혼란을 배치한다.


이 아이러니는 단순히 기술적 사고에서 끝나지 않는다.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구조 속으로 침투하며, 불안정성과 취약성은 개인과 집단의 삶 속에 스며든다. 서버와 클라우드, 알고리즘과 데이터센터의 오류는 우리의 일상과 직결된다. 이는 단순한 버그나 다운타임의 사건이 아니라, 신뢰 체계와 권력, 인간적 예측 능력의 시험대가 된다. 속도와 기능의 눈부심은 눈앞의 편익을 제공하지만, 그 이면에는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균열이 존재한다. 인간은 그 균열 속에서 적응과 전환을 반복해야 한다.


현대 기술 체계는 특이점적 사고, 즉 성능과 속도의 극대화라는 전제 위에 구축된다. 레이 커즈와일이 주장한 기술적 특이점은 인간 지능과 기계 지능의 교차점에서 급격한 변화와 혁신이 발생하는 순간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속도 경쟁은 의도치 않은 결과를 동반한다. 시스템이 보여주는 표면적 완벽성은 속도와 효율의 허울일 뿐, 내부에는 예상치 못한 결함과 오류가 누적된다. 이는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와 찰스 퍼스틴이 지적한 ‘복잡 시스템의 내재적 불확정성’과 맞닿아 있다. 즉, 어떤 시스템이든 구성 요소 간 상호작용과 정보 흐름의 복잡성 때문에 완벽한 통제는 불가능하며, 작은 결함이 연쇄적 장애—아노말리—로 확대될 가능성을 지닌다.


특히 속도가 강조될수록, 오류와 결함은 보이지 않는 그림자로 숨어버린다. 이때 아노말리는 단순한 ‘결함’이 아니라, 시스템이 내재적으로 갖는 구조적 취약성의 신호다. 속도 경쟁에 몰두한 조직은 이러한 신호를 무시하거나 늦게 인식하며, 결국 시스템 전체를 위협하는 누적적 재난으로 연결된다. 기술사회학자 퍼스틴은 이를 ‘누적적 오류 연쇄(cascading failure)’라고 명명하며, 복잡한 기술·사회적 네트워크에서 한 지점의 아노말리가 전체 구조에 폭발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제로데이> 속 사이버 공격과 대응의 간극, 즉 ‘무방비 시간대’는 이러한 아노말리적 특성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공격과 대응 사이의 짧은 시간조차 누적된 결함과 인간적 판단의 취약성을 폭로하며, 연쇄적 재난을 촉발한다. 기술적 결함과 인간적 욕망이 결합할 때, 재난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사회적·구조적 층위를 관통하는 복합적 파동이 된다. 속도 경쟁에 눈먼 시스템은 결국 허울만 번듯한 아노말리 덩어리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경고가 여기에 있다.


따라서 재난과 시스템 취약성의 이해는 속도와 효율, 기술적 특이점의 표면적 성과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아노말리 이론과 누적적 오류 연쇄의 시각을 통해, 우리는 시스템 내부의 그림자, 즉 불완전성과 취약성을 감지하고, 인간적 판단과 대응을 설계하는 것이 필수적임을 확인하게 된다. 기술이 남긴 그림자를 직시할 때, 재난 속에서 인간과 사회가 취할 최소한의 태도—관찰과 이해, 책임과 연대—가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그럼에도 특이점의 역사에서 우리는 반복적으로 증명해왔다. 불과 바퀴, 기계와 컴퓨터, 그리고 AI까지, 인간은 기술이 드러내는 결핍과 한계와 마주하며 그것을 자신의 체험과 지식으로 전환했다. 불완전성을 마주한 순간, 우리는 기술과 관계를 재정립하고, 통제와 이해의 경계를 새롭게 측정한다. AI가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 시스템이 언제든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오류를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은, 인간에게 두려움만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고와 적응의 계기를 제공한다.


대부분의 사이버 재난은 인재다. AI Sora


속도의 그림자는 단순한 공포가 아니라, 특이점의 역사가 남긴 흔적이다. 또한 인간과 기술이 지속적으로 맞물려가는 과정의 일부다. 우리는 이미 수많은 특이점을 경험했고, 그 과정 속에서 기술의 완벽성은 신화임을 깨달았다. 불완전성을 마주하는 순간 비로소 적응과 전환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오늘의 AI, 오늘의 시스템, 오늘의 속도 역시 예외가 아니다. 눈부신 기능과 속도의 뒤편에서, 불완전성과 취약성은 언제나 인간의 판단과 경험, 창의적 전환을 요구한다.


속도의 그림자는 기술과 인간, 완벽과 불완전, 신화와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춤을 춘다. 우리가 그 속에서 선택하고 체화해야 할 길을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제시한다.



연쇄된 재난과 보이지 않는 균열


현대 사회에서 재난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서로 이어진 서사다. 신형철이 『재난과 영화』에서 말했듯, 재난은 과거와 미래를 잘라내고 오직 현재성만을 우리 앞에 남긴다. 그러나 그 현재성은 고립된 것이 아니라, 연쇄적이고 누적된 압력 속에서 발생한다. 한국사의 경우 조선의 패망과 일제의 침탈, 남북 분단과 한국전쟁, 연이은 독재와 군부 쿠데타, 4.3과 5.18의 기억, 산업화 속 구조적 결핍과 의식 미비,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 팬데믹과 양극화, 계엄 내란과 폭동에 이르는 굴곡이 모두 하나의 흐름 속에서 서로 연결된 재난이다. 각 사고는 사건이 되고, 사건은 다시 개인과 집단에게 새로운 재난과 트라우마를 낳는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계획의 상실’을 경험한다. 재난은 물리적 사건을 넘어 구조적 폭력과 연결된다. 정보와 데이터, 권력과 기술의 결합 속에서 개인의 자유와 순수함은 언제나 위협받는다. 집단적 트라우마와 두려움은 사고를 무방비로 만들고, 무방비한 시간대는 또 다른 실수를 낳는다. 계획은 상실되고, 책임은 모호해지며, 진실은 종종 희생양과 함께 묻힌다. 사회적 재난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경험의 네트워크다. 한 사건이 발생하면, 그것이 남긴 흔적과 불안은 다른 사건으로 이어지며 인간의 삶과 사회 구조를 계속해서 흔든다.


이때, 기술과 속도의 문제는 재난을 더욱 복합적으로 만든다. 현대 사회는 특이점적 사고—기술적 속도와 효율 경쟁—에 매몰되어, 시스템이 본질적 결함과 오류, 즉 누적된 아노말리(anomaly)를 드러내는 순간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니콜라스 니클슨과 찰스 퍼스틴이 논한 ‘기술적 결함의 연쇄성’은 이러한 상황을 설명한다. 시스템은 눈부신 속도와 기능을 과시하지만, 그 허울 뒤에는 작은 오류와 불완전성이 점점 누적되며 예기치 못한 폭발적 사건으로 전환될 잠재력을 지닌다. 속도 경쟁이 심화될수록, 아노말리는 점차 표면화하지 않고 내부에 잠복하며, 인간과 사회가 마주하는 불안과 취약성을 증폭한다.


넷플릭스 <제로데이>는 사이버 멀웨어 공격과 그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통해 이러한 연쇄적 재난의 현재성을 보여준다. 제로데이 공격은 ‘무방비 시간대’를 갖는데, 공격과 대응 사이의 틈은 계획보다 수습이, 수습보다 책임 규명이 강하게 요구되는 정치적·사회적 시간이다. 그 시간 동안 발생하는 실수와 공포, 불확실성은 트라우마를 증폭시키고 새로운 재난을 재생산한다. 사건의 진실은 중요하지 않고, 단지 희생양을 지목하고 책임을 전가하는 구조가 반복될 뿐이다.


재난의 극복은 단순한 정치적 판단으로는 부족하다. 자연재난이든 사회재난이든, 팬데믹이든 전쟁이든, 사건이 발생하면 우리는 진실과 응답을 찾아야 한다. 단순히 밤비를 누가 죽였는지 묻는 대신, 밤비와 그 가족의 슬픔을 어루만지고, 피해자의 트라우마를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서로를 꺼내주는 일, 눈앞의 재난 속에서 인간성을 지켜내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제로데이> 속 제로데이 위원회 보고 장면에서 드러나듯, 진실을 규명하려는 노력은 정치적 판단이나 형식적 조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남은 것은 폐허와 트라우마뿐이며, 그것을 넘어 서로를 구해내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 재난의 핵심은 인간의 욕망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연쇄에 있다. 사이버 공격의 이유가 단순한 겁주기였다는 사실이 드러날 때, 우리는 재난을 단순한 기술 문제로만 보아서는 안 됨을 깨닫는다. 기술적 결함과 인간 욕망이 만나 사회적 폭력으로 변모하는 순간, 재난은 인간과 기술, 구조와 개인의 모든 층위를 동시에 관통한다.


영화 <제로데이>에서의 대응. AI Sora


현대 사회에서 가장 위험한 재난의 동인은 욕망이다. 기술과 권력, 정보와 경제가 얽힌 욕망의 회로 속에서 우리는 쉽게 트라우마와 실수를 재생산한다. 그러나 재난의 현재성을 이해하고, 연쇄적 폭력과 인간적 피해를 직시하는 서사적 사유는, 비록 완전하지 않더라도 우리를 다시 인간의 자리로 돌아오게 한다. AI와 시스템의 불완전성을 받아들이는 일, 인간과 기술이 공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마주하는 일, 그것이 재난 앞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최소한의 태도다.


또한 현대의 재난은 불완전성과 취약성의 산물이다. 시스템은 결코 완벽하지 않으며, 오류는 예외가 아니라 본질이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인간의 의도와 통제는 늘 불일치하며, 그 간극에서 사고가 발생한다. AI와 자동화 기술이 그럴 듯한 완벽성을 자랑하지만, 그 속에는 여전히 예상치 못한 결함과 균열이 도사리고 있다. 속도와 효율의 눈부심 뒤에는 항상 불완전성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불완전성은 숨기거나 제거할 수 없는 현실이며, 인간과 기술이 공존해야 할 조건이다.


재난의 연쇄 속에서 필요한 것은 단순한 대응이나 계획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와 미래의 흔적을 감지하고, 보이지 않는 균열과 위험을 마주하며, 인간과 사회가 직면한 불완전성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서로를 꺼내주고, 희생과 트라우마 속에서도 진정한 응답을 찾는 과정이 재난 극복의 핵심이다. 계획과 명령보다, 관찰과 이해, 책임과 연대가 재난 속에서 빛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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