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하지 않은 것은 잊히지 않는다.’는 문장이 문득 떠오른다. 어느 책에서 봤던 문장인 것 같은데. 정확한 출처에 대한 기억은 없다. 그렇게 아무 맥락 없이 떠오른 그 문장은, 내 안에서 새로운 문장으로 재탄생된다.
‘용서하지 않은 것은 잊히지 않지만, 용서 받지 않은 것은 잊힐 수 있다.’
나는 이 문장을 곱씹으며 의자를 뒤로 물린다. 의자 등받이에 몸을 묻은 채, 작은 한숨을 내쉰다. 불현듯 내 안을 헤집어 놓은 이 문장을 안고, 나는 강river을 상상한다.
내가 강이라면, 남의 잘못은 커다란 바윗돌 같았다. 그것은 무엇으로도 옮기기 어려울 만큼 무거워서, 거의 영원에 가깝도록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런 반면, 나 자신의 잘못은 물기가 다 빠져 버린 잎사귀 같았다. 물에 닿기도 전에, 아무도 모를 곳으로, 그것은 훌쩍 날려가 버리곤 했다. 아주 자주. 강물에 닿아 잠시 물속을 떠돌더라도, 그것은 곧 아무도 모를 곳으로 사라져 버렸다.
장면을 바꿔, 나는 다른 누군가의 강을 상상해 본다. 다른 누군가의 마음을 가로지르며 흐르는 강.
내겐 한없이 가볍고 대수롭지 않던 내 잘못이, 누군가의 강엔 큼지막한 바윗돌로 머물고 있다. 오래오래 머물러 왔거나, 지금부터 하염없이 머무를 것이다. 그것은 영혼의 목에 박힌 생선 가시 같아서, 영혼의 목소리에 자주 통증이 실리도록 할 것이다.
이 상상은 내 마음을 스산하게 만든다.
사과해야 할 ‘시기’라는 것에 정해진 바는 없다. 사과는 ‘적당한 때’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먹기의 문제니까. ‘그 사람한테 사과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사과의 순간을 만드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지금이 사과하기 딱 좋은 때 같은데.’ 하는 생각은 ‘사과하기 좋은 시기를 잡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사과할 수 있을 만큼 갖춰진 마음가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사과가 가능한 마음가짐이 존재하는 때. 그때가 사과하기 알맞은 때일 뿐이었다.
그 마음가짐이 발생한 때를 놓치지 말자고, 부디 놓치지 말자고, 조용히 결심한다. 그 대범한 마음가짐을 스스로 발생시킬 수 있다면 더 좋고.
좋은 걸 주는 것도 사랑이지만, 주지 않아야 할 것을 주지 않는 것도 사랑이니까. 만약 주지 않아야 할 걸 주고 말았다면, 그 상황과 상처를 있는 힘껏 수습하는 것도 사랑이고.
좋은 걸 주려는 따뜻한 뜻보다, 좋지 않은 걸 줘 버린 후의 태도가 관계 유지에 더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 모든 사과의 목적은 내 행위에 대한 용서 받기(또는 정당화)가 아니라, 상대가 그 자신과 화해해,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길 바라는 참다운 사랑에 있기를.
이 세상 모든 마음을 타고 흐르는 강의 물살이 점점 순조로워지기를. 끝없이 순탄해지기를. 그래서 마음과 마음의 합류가 언제나 자연스럽고 편안한 일이 되기를.
사람과 삶을 공부합니다. 배운 것들을 책 속에 담아내며 살아갑니다. 모두의 마음과 삶이 한 뼘씩 더 환해지고 행복해지는 책을 만들고 싶습니다. 느리고 서툴지만, 더 나은 책을 위해 부단히 고민합니다. 카쿠코 매거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매거진을 통해 소설집과 산문집을 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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