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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로운 Aug 23. 2019

계절의 마디를 발견할 때


어젯밤, 실내 기온이 26도까지 떨어졌습니다. 나에게 26도의 밤은 서늘한 밤입니다. 이불을 돌돌 말아 끌어안고 자고 있던 나는 희미한 한기에 깨어, 이불을 펼쳐 덮고 다시 잠들었습니다. 선들선들한 바람이 창을 타고 방으로 들어와, 방 안의 공기를 느리게 식혔습니다. 그저께부터 드문드문 비가 내리더니, 대지의 기온이 차츰 떨어지고 있나 봐요.


실내 온도 조절기는 오늘 아침 나에게 26이라는 숫자를 보여주었습니다. 그것은 한참 동안 그 숫자를 표기하고 있었습니다. 새벽부터 베란다 밖에서는 귀뚜라미가 울고, 기상 예보에서는 가을장마를 알리고, 물 마시다 내다본 창문으로 빗방울들이 맺히고, 실내 온도는 26도였습니다. 나는 가을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올해 가을을 처음으로 실감하였습니다. 


내가 가을을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은 언제나 실내 온도 조절기 앞입니다. 끊임없이 솟구치던 실내 온도가 떨어질 기미를 보이다가, 어느 날 훌쩍 떨어져 있는 날. 나는 여름과 가을 사이의 마디를 발견합니다. 


당신의 계절 변화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곳은 어디일까요. 이 계절과 저 계절의 손바꿈이 일어날 때, 당신은 그걸 발견하며 무슨 생각을 할까요. 당신도 가을을 만났습니까. 우리 두 사람은 계절의 마디를 사이에 두고 있나요. 아니면 나란히 선 채로 계절의 마디를 바라보고 있나요. 굳이 그런 것까지 함께해야 한다고 고집하고 싶지는 않지만, 문득 궁금해서. 이런 별것 아닌 것마저 함께하는 것이 나에게는 별것 이상의 기쁨이어서.







자신의 계절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자신의 인생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와 비슷한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 흐름이 계절의 흐름 속에 있기 때문에. 계절이 우리 인생과 많은 부분 닮아 있기 때문에. 


계절도 인생도 결국에는 자연의 일부이기에, 이들은 공통되는 부분을 꽤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계절을 통해 인생을 성찰하거나 통찰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계절이 변하고 있는 게 느껴지면, 나는 지난 계절의 나를 문득 돌아봅니다. 내가 일부러 그럴 때도 있지만, 자연히 그렇게 될 때가 더 많습니다. 이게 습관인지, 고질병인지……. 나는 모든 변화를 맞이하는 순간마다, 나 자신의 최근 행적을 되돌아봐요. 외부의 변화를 목격하는 일은 내부의 변화를 점검하게 만듭니다. 내 안의 변화가 괜찮게 느껴지기 시작한 이후로는 계속 그러네요. 또 이쯤 살았는데, 지금의 나는 이전에 비해 얼마나 달라져 있나. 그런 걸 확인해 보게 되네요. 나와 세월이 합심해 한 철 동안 그린 그림 앞에 조용히 서서, 그것을 요모조모 뜯어보게 됩니다.


내가 겪는 내면적인 변화가 괜찮게 느껴진다고 해서, 내가 내 안에서 늘 긍정적인 변화만 발견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여전히 뒤를 돌아보다 한 번씩 스스로에게 실망하곤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면에서 급격히 나태해져 있는 스스로를 직면할 때. 어떤 면에서 누군가에게 안 좋은 마음을 낸 스스로를 직면할 때. 나는 그런 변화를 마주하며 숨을 삼킵니다. 실망스러워서.


그래도 전반적으로는 만족하는 편입니다. 내가 꾸려 나간 변화들에. 그런 전반적인 만족은 ‘결과에 대한 만족’이 아니라 ‘최선에 대한 만족’입니다. ‘이만하면 됐다. 내 나름으로는 최선을 다했다.’ 싶은 마음이 내 한 시절에 대한 전반적인 만족을 이룹니다. 스스로에 대한 판단 기준이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기 때문에 가능해지는 자기 만족입니다. 물론 이런 종류의 자기 만족을 잘 관리해야, 나는 스스로를 독려하면서도 게을러지지 않을 수 있겠습니다. 안일해지지 않을 수 있겠습니다.







당신이 겪고 있는 변화들은 당신에게 어떤 기분을 이루어 주나요. 당신이 당신의 세월 변화에 대해 말하는 것을 종종 듣기는 한데(주로 나이 먹은 얘기를 하죠), 당신이 그것들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들은 적이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나만큼이나 생각 많은 당신인데. 당신은 당신 생의 계절들을 어떤 마음으로 바라볼까요. 당신이 새로운 계절을 맞아 새롭게 거듭나는 모든 모습들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데. 그게 당신도 매번 행복하게 만들어 줄까요. 


언젠가 당신이 말했습니다. 당신은 당신 스스로를 바라보고 있는 게 가끔 힘겹다고.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스스로를 자꾸 흉보게 되어서. 남들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위축되게 만들어서. 그럴 필요 없는데. 


당신한테서 그 말을 듣고 나는 좀 놀랐어요. 이 얘길 했었나요. 내가 그 말 듣고 놀랐다는 얘기. 나한테는 당신이 언제나 근사한 사람인데, 당신한테는 당신이 그렇지 않아서. 


입장 바꿔 생각해 보면, 나도 그럴 때가 있더라구요. 당신은 매일 내가 괜찮다고 하는데, 나는 나를 매일까지는 괜찮다고 하지 않았던 때가 있습니다. 자기보다 자기를 더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어, 우리는 스스로와의 불화를 끝내는 견딜 수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별안간 드네요. 


그렇다고 내가 지금 당신보다 당신을 더 사랑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겠습니다. 다만, 이런 사람이 당신 주변에서 당신의 안녕과 행복을 늘 기원하고 있다는 것을 넌지시 알리고 싶었습니다. 당신에 관해서는 괜찮지 않은 게 하나도 없는 사람이 이곳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괜찮아요. 당신이 당신을 안 괜찮게 보는 날이 있어도. 당신이 당신을 방치하는 날이 있어도. 그래도 당신은 혼자가 아니니까. 그러면 괜찮은 거 아닐까. 


당신이 당신이라는 이유로 당신 자신에게 늘 친절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 않아요. 그건 나도 아직 못하는 일이니까. 다만, 당신이 당신 자신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날에도 당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당신이 알면 좋지 않을까. 그냥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당신 자신을 아프게 하는 당신마저 난 괜찮아요. 괜찮고 싶어서 괜찮은 게 아니라, 괜찮아서 괜찮습니다.


니가 너를 버려도 너를 버리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 너는 태어나고부터 지금까지 단 한 순간도 완전히 버려진 적 없다. 언젠가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말장난 같던 그 말이 아직 나를 다독여 주네요. 당신처럼 나도 아직 가끔은 나를 데리고 살아가는 게 벅차서.







‘내가 모르는 내 가치를 볼 줄 아는 사람들’이라는 문장이 성립 가능한 문장이라는 것을 지금은 알고 있습니다. 내가 알지 못하거나 외면하고 있는 내 가치들을 끈질기게 인정하는 사람들이 있어, 나도 끝내는 나를 다시 긍정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사실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들의 자리에서 나라는 인간을 단 한 순간도 부정하거나 거부하지 않을 뿐입니다. 그때는 그게 어떻게 가능한 일인지 알 수 없어 신기하기만 했는데. 당신이 이리로 오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힘 하나 들지 않는 일이네요, 이거. 의도하지 않아도 저절로 발생하고 지속되는 일입니다.


사랑이 과연 어디까지 작용할 수 있는지, 그래서 무엇까지 해낼 수 있는지, 우린 늘 궁금해했어요. 그 궁금증이 끝나는 날이 올까요. 이 문제에 한계 같은 게 있을까.


가을이 오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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