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렸던 이 기간이 역사상 최고의 강세장이었지만, 삼촌들은 주식투자를 도박장의 주사위 노름처럼 취급했다. 사람들은 경고했다. “주식시장은 근처에도 가지 마라, 너무 위험해서 재산을 모두 날리게 된다.”
돌이켜보면, 1950년대처럼 주식시장에서 재산을 모두 날릴 위험이 적었던 시기는 그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었다. 이로부터 나는 시장을 예측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배웠을 뿐 아니라, 소액투자자들은 잘못된 시점에 시장을 비관하거나 낙관하기 때문에 강세장에 투자를 시작하고 약세장에 빠져나오면서 자멸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 돌이켜보니, 통계학 공부보다 역사나 철학 공부가 나의 주식투자에 훨씬 도움이 되었다. 주식투자는 과학이 아니라 기술이라서 만사를 철저하게 계량화하도록 훈련받은 사람은 크게 불리하다.
주식시장에 필요한 수학은(크라이슬러의 보유 현금이 10억 달러, 장기 부채가 5억 달러 등과 같이) 초등학교 4학년 산수로 충분하다.
월스트리트의 많은 투자자가 둘러앉아서 주가가 오를지 내릴지 토론하는데, 이는 회사를 방문해서 확인하는 대신 재무상태를 숙고하면 답이 나온다고 생각하는 식이다.
이런 거물들로부터 훈련과 지원을 받으면서, 나는 아이작 뉴턴이 한 말을 실감하게 되었다. “내가 멀리 볼 수 있었던 것은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섰기 때문이다.”
와튼에서 2년 과정을 마친 뒤, 나는 학군단 프로그램에 따라 2년간 복무하기 위해 입대했다. 1967~1969년 동안 나는 표병 중위가 되어 처음에는 텍사스에서, 다음에는 한국에서 복무했다. 당시 상황에서는 편안한 근무지였다. 포병 중위들은 대부분 베트남에 배치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유일한 단점은 미국 주식시장에서 너무 멀다는 점이었다. 또한 당시 내가 알기로는 서울에 주식시장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주식투자 금단 증상에 시달렸다.
1969년 나는 한국에서 돌아와 정규직 애널리스트가 되어 피델리티에 복귀했다. 역시 린치의 법칙에 따라 주식시장은 급락했다.
1977년 5월, 나는 피델리티 마젤란 펀드를 맡았다.
마젤란 펀드의 자산규모는 2,000만 달러였다. 포트폴리오는 겨우 40개 종목이었는데, 피델리티의 사장 네드 존슨은 종목수를 25개로 줄이라고 내게 권했다. 나는 공손히 말을 들은 뒤 작업을 시작해서 종목수를 60개로 늘렸고, 6개월 뒤에는 100개로 늘렸으며, 곧이어 150개로 키워놓았다. 일부러 거꾸로 간 것은 아니었다. 나는 헐값에 굴러다니는 주식을 사지 않고서는 배길 수가 없었으며, 당시에는 헐값 주식이 여기저기 널려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현재 1,400개의 종목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이들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나는 보유하고 나서 후회한 종목도 수없이 열거할 수 있다.
월 로저스는 주식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탁월한 충고를 한 바 있다. “도박하지 말라. 예금을 모두 털어 우량 주식을 산 다음, 주가가 오를 때까지 보유한 뒤 팔아라, 주가가 오르지 않는다면 주식을 사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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