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왜 정치인들은 잠재적 독재자를 방조하는가』에서는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과정에서 기존 정치인들의 책임과 역할을 조명한다. 저자들은 독재적 성향을 가진 인물이 권력을 잡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계기는 기존 정치 세력의 묵인 혹은 동조라고 말한다. 많은 경우, 주류 정치인들은 위험한 인물임을 알면서도 단기적인 정치적 이익을 위해 그들과 손잡는다. 이들은 종종 그 인물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지만, 결국 통제에 실패하고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역사적으로 히틀러, 무솔리니, 차베스 등의 사례에서 보듯, 잠재적 독재자는 스스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주류 정치권이 그를 제도 안으로 들이면서 권력을 잡게 된다. 따라서 저자들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정치인들이 비민주적인 세력과의 타협을 거부하고, 책임 있는 선택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트럼프는 공화당 지도부의 지지를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정치 경험도 없을 뿐 아니라, 오랫동안 공화당에 몸을 담은 인물도 아니었다. (...)
트럼프가 여론사에서 두각을 드러낸 이후에도 그의 지명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
그러나 상황은 갑자기 바뀌었다. 두 가지 중요한 이유 때문에 정당 문지기들은 힘을 크게 잃었다. 첫째, 연방대법원의 2010년 판결 덕분에(비록 그 직접적 원인은 아니었지만) 외부 자금을 선거운동에 훨씬 더 수월하게 끌어들일 수 있게 되었다. (...)
정당 문지기의 힘을 위축시킨 또 다른 요인으로 대체 언론, 특히 케이블 뉴스와 소셜 미디어 산업의 성장을 꼽을 수 있다. (...)
이제 후보 지명 과정의 문이 활짝 열렸다. 게임의 법칙이 트럼프와 같은 인물의 승리를 보장하는 것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이들의 등장을 더 이상 막을 수 없게 되고 말았다. 마치 러시안룰렛과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극단주의 아웃사이더가 대선 후보 지명을 받을 가능성이 마국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것이다. (P.73~75)
“디지털 시대의 자질을 갖춘 맞춤형 후보자”인 트럼프는 끊임없이 논쟁거리를 빚어내는 방식으로 주류 방송 채널을 공짜로 활용했다. 한 조사에 따르면 트럼프를 절대 지지하지 않았던 MSNBC, CNN, CBS, NBC 네 언론사 모두 트위터 계정을 통해 본선 경쟁자인 힐러리 클린턴보다 트럼프를 두 배나 자주 언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P.77)
전당대회에서 트럼프의 지명을 철회할 수 있다는 생각은 그야말로 순진한 발상이었다. 현재 미국의 프라이머리 기반 시스템에서 대의원의 표결은 무시하거나 취소할 수 없는 절대적인 정당성을 부여한다.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는 1400만에 달하는 표를 얻었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공화당 전국위원회 위원인 신디 코스타는 트럼프가 “정정당당하게 승리했고” 그렇기 때문에 그의 지명을 철회하고 다른 인물을 본선 후보로 추대하는 것은 “어마어마한 혼란”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제 공화당은 현실을 직시해야 했다. 그들은 이미 후보 지명을 위한 열쇠를 빼앗긴 상태였다. (P.79)
트럼프 비판자들은 그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지만 그의 존재는 진지하게 인정하지 않았던 반면, 트럼프 지지자들은 그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그의 존재는 진지하게 인정했다는 말의 의미를 공화당 인사들은 잘 이해했다. 그들의 관점에서 볼 때 트럼프가 선거운동에서 사용했던 표현은 ‘그저 말’에 불과했던 것이다.
공직 경험이 없는 지도자가 당선 후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를 예측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앞서 설명했듯이 우리는 반민주적인 지도자의 정체를 그가 권력의 자리에 오르기 전에 가늠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트럼프는 독재자를 구별하는 우리의 리트머스 테스트 네 항목 모두에서 양성 반응을 보였다.
첫 번째 신호는 민주주의 규범을 준수하려는 의지의 박약이다. 선거 절차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2016년 대선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는 전례 없는 주장을 내놓았을 때 트럼프는 이미 독재자로서의 첫 번째 기준을 충족했다. (...)
두 번째 항목은 상대의 정당성에 대한 부정이다. 전제적인 정치인은 경쟁자를 범죄자, 파괴분자, 매국노, 혹은 국가 안보 및 국민의 삶에 위협적인 존재하고 비난한다. (...)
세 번째 기준은 폭력에 대한 조장과 용인이다. 정당의 폭력 행사는 종종 민주주의 붕괴의 전조가 된다. (...) 20세기 동안 미국의 어떤 주요 정당 대선 후보도 폭력을 용인하지 않았다.(1968년 조지 월리스는 폭력 사용을 지지했지만 그는 제3당 후보였다). 그러나 트럼프는 이러한 역사를 깨버렸다. (...)
마지막 항복은 경쟁자와 비판자의 시민권을 억압하려는 시도다. 오늘날 독재자와 민주주의 지도자를 구분하는 기준은 비판에 대한 대응 방식이다. 독재자는 야당과 언론 및 시민사회에서 자신을 비난하는 이들을 권력을 이용하여 처벌했다. (P.80~84)
‘집단적 포기’ 다시 말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인물에게 권력을 넘기는 행동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잠재적 독재자를 통제하거나 길들일 수 있다는 착각이다. 둘째, 사회학자 이반 에프마코프가 ‘이념적 공모’라고 부른 개념으로, 이는 집단적 포기를 택한 주류 정치인들의 이해관계가 잠재적 독재자의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지는 경우에 해당된다. 하지만 잠재적 독재자가 등장했을 때 기성 정치인들은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그를 제어함으로써 민주주의 제도를 지켜야 한다. 비록 이를 위해 달갑지 않은 경쟁자와 잠시나마 손을 잡아야 한다고 해도 말이다. (...)
민주주의를 잃는 것은 선거에서 패배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비극적인 일이다. 이러한 사태를 막기 위해서 공화당은 평소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결단, 즉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하는 과감한 선택을 내렸어야 했다. (P.86~87)
최근 심화되는 정치 양극화는 유권자 집단의 유동성을 증발시켜 버렸다. 미국 사회는 점차 공화당과 민주당 지지자와 민주당 지지자로 뚜렷하게 양분되고, 독립적이거나 유동적인 집단의 비중은 크게 줄어들었다. 그리고 공화당과 민주당 지지자들의 자기 당에 대한 충성심과 상대 정당에 대한 적개심은 더욱 높아졌다. (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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