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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쓰기를 관뒀어야 했다 (40년 일기 후기)

2부 - 일상에서의 실패

by 박기주

수년간 복용했던 우울증 약을 완전히 끊었다.

브런치에 올리려고 지어내고 과장한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일어난 일이다. 항우울제, 공황장애약, 수면보조제 등 다양한 약을 오래 복용해 오다 작년부터 조금씩 줄이기 시작했고 올 6월, 마침내 그 끝을 보게 된 것이다.


실제 처방받았던 약 사진. 하나씩 줄이는 게 쉽진 않았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혹시라도 힘드시면 언제든지 찾아오세요. 억지로 참진 마시고요”


나보다 열 살은 어려 보이는 의사는 미소를 지으며 긴 진료와 처방의 마침표를 찍어주었다. 약 없이 잘 잘 수 있을까, 잘 살 수 있을까 살짝 걱정되기도 했지만 홀가분한 마음이 더 컸다.


‘됐다. 이제 한 걸음 앞으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처음으로 다음 예약을 잡지 않고 병원문을 나서며, 나는 매번 약봉지를 쥐고 있던(정신과는 보통 병원에서 약을 직접 조제해서 쥐어 준다) 오른손으로 허공을 꽉 움켜잡았다.


때마침 병원에 들어오던 사람이 날 보고는 한 걸음 옆으로 피했다. 정신과에서 나오는 사람이다 보니 오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중요하지 않다. 나는 부끄러움 없이 씩씩하게 발을 옮겼다.




나는 왜 아팠던 것일까?

수십 시간 생각을 해봤고 수십 가지 이유를 들 수 있었지만

여기에서는 그중 하나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바로 일기다.


일기를 써서 약을 끊을 수 있었다는 얘기가 아니다. 되려 그 반대다.


별 볼일 없는 내 삶에서 그나마 특이한 것 중 하나는 40년간 일기를 꾸준히 써왔다는 것이다.


하루도 빼먹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매년 300~350일 정도는 썼으니 12,000~14,000개 정도의 일기를 쌓아온 셈이다. 첫 일기는 1985년 6월이며 해독이 어려운 그림일기였다. 그렇게 시작한 일기가 국민학교에 들어가며 삐뚤삐뚤한 줄글 일기로 바뀌었고, 언젠가부터는 제법 봐줄 만한 필체를 보여주더니, 최근 15년 정도는 노트북으로 넘어와서 계속되고 있다.

어머니가 불렀는데 안 갔다고 야단맞은 일기. 1980년대

일기 쓰는 걸 자랑하고자 함은 아니다. 많은 자기 계발서나 강의가 일기 쓰는 것을 추천하는데, 웬만한 사람보다 오래, 그리고 많이 일기를 써온 나로서는, 매일 짧게라도 글을 쓸 수 있다는 점에서 글 솜씨 향상에 도움은 되지만 그래도 일기 쓰는 게 그리 좋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나처럼 내향적인 성격의 사람은 일기를 쓰면 생각이 꼬리를 물며, 나선처럼 깊이 빠져들어 스스로를 더 괴롭게 하고 더 안 좋은 결론을 도출할 때가 많았다. 일기를 안 썼으면 차라리 잠들어 잊어버릴 수 있는 일을 굳이 문장으로, 단어로 남김으로써 더 머리에 각인되어 잠을 설친 밤도 수없이 많았다.


그래서 예전 일기를 다시 펼쳐보는 건 매우 고통스럽다. 이미 잊어버린 안 좋은 경험들과 비참한 반성으로 가득 찬 일기를 굳이 다시 보고 싶진 않은 것이다. 그래서 내 일기는 중간에 찢어버린 것도 많고, 굵은 펜으로 X자를 그어버린 것도 있다. 지금 와서 다시 읽어보면 도움이 되는 내용도 있겠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다.

굵은 펜으로 X를 그어놓은 고등학생 때 일기들


일기는 자주 쓰고 매일 쓰는 게 중요하다고 하지만, 40년 ‘일기쟁이’의 경험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어떤 내용을 쓰는가이다. 그리고 그 내용의 종류에 따라서 세 가지 타입의 일기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 단순 기록용 일기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사실관계 위주로 일기를 쓰는 것이다. 나도 많은 날의 일기를 이 단순한 기록으로 채웠다. 오늘 무슨 일이 있었다. 어디를 갔다. 누구를 만났다 등을 건조하게 적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크게 도움이 되진 않는다. 10년 전, 20년 전 오늘 뭐 했더라 찾아보는 건 재밌긴 한데 소일거리 외에 득 될 건 없으며, 기록이 아주 자세하고 품질이 높지 않기 때문에 필요를 잘 채워주지도 못한다.


특히 요즘에는 회사 업무 앱들과 장소와 시간을 정확히 기록해 주는 스마트폰 사진앱이 훨씬 기능이 좋기 때문에 기록을 확인하는 용도로 일기장을 뒤적이는 일은 거의 없다.


굳이 필요하다면 그냥 다이어리(다이어리가 저널과 더불어 일기를 뜻하는 영어이기도 하지만)나 플래너를 쓰면 되지 굳이 거창하게 일기장을 마련할 필요는 없다.

1988년의 일기. 단순한 기록에 불과하다


두 번째, 감사 일기


일기에 매일 감사한 일을 적으라고 하는 자기 계발서들이 많다. 예컨대 팀 페리스가 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타이탄의 도구들’은 매일 감사한 일 세 개를 일기에 적으라고 구체적으로 조언한다.


나도 이런 책들에 영향을 받아 감사일기를 써본 적이 있는데, 글쎄 이건 도움도 안 될뿐더러 지속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자기 계발서에서 매일 무언가를 하라는 조언들이 대부분 그렇듯, 감사 일기를 쓰라는 저자들이 진짜 오랫동안 실행을 한 게 맞는지 의심이 되기도 하는 게, 내 경우는 처음 며칠은 “건강하게 살아 있음에 감사”, “잠을 푹 잔 것에 감사”, “회사에서 OOO 대리 덕분에 많이 웃은 것에 감사” 같은 항목을 억지로 적어봤는데 그게 내 감정 관리와 삶의 태도에 크게 도움이 되지도 않을뿐더러 몇 주 하다 보니 이걸 내가 왜 억지로 하고 있는가 허탈함이 들어 도무지 계속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깨달은 건, 감사는 일기장에 쓰는 게 아니라 감사의 대상에게 직접 해야 한다는 거였다. 누구 덕분에 즐거웠고 감동했다면 그 사람에게 감사를 표하면 된다. 오늘도 무사히 행복하게 산 것이 감사하다면 신에게, 혹은 부모님에게, 배우자에게, 자식에게 직접 감사하면 될 일이다. 일기장이 내 감사를 대신 전해주진 않으니 말이다.


세 번째, 반성 일기 (후회와 각오 포함)


많은 사람들이 일기를 반성하고 각오를 다지는 목적으로 사용한다. "내가 왜 그랬지?" 하며 생각과 태도와 행동을 돌아보는 것이다. 내 일기의 80%는 이런 식인데, 약간의 자랑과 그 백 배는 될 법한 후회, 그리고 수많은 각오와 계획들로 점철되어 있다.


반성 자체는 좋은 일이다. 하지만 같은 반성이 반복될 뿐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일기는 그저 지면 낭비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전 글에도 적었지만 결혼할 때보다 30kg 가까이 살이 찐 적이 있다. 특히 살이 많이 쪘을 때의 일기를 돌아보면 (이 글을 쓰기 위해 굳이 찾아봤다) 이틀에 한 번 꼴로 나는 왜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할까. 오늘 또 무너져서 부끄럽다 같은 말들이 누차 반복되고 있었다. 반성 일기를 쓴다고 살이 빠지진 않더라.


일기 속 반성과 각오만으로는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내가 수십 년 쓴 일기 덕분에 제대로 변화를 만들어냈다면 이렇게 실패담 같은 것도 쓸 리 없지 않겠는가.


동시에 반성 자체가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잊고 넘어가도 될 일을 굳이 시간을 내 되돌아보며 자책하고 후회하면서 스스로를 날카로운 흉기로 계속 할퀴는 것이다. 내게는 스스로 만들어 낸 이 생채기들이 꽤나 아팠다. 우울증 약을 먹기 시작한 것은 이런 지나친 자기반성과 절대 무관하지 않다.




40년을 내리 쓰고야 비로소 깨달았다. 좀 세게 말하자면,


일기는 필요 없다. 관뒀어야 했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단순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록하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더 좋은 도구들이 있다.

혼자 감사의 말을 억지로 끄적여봤자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반성하고 그저 괴로워만 할 거라면 되려 쓰지 않는 게 행복해지는 방법이다.

반성하고 각오를 다질 거라면, 일기에다 쓰지 말고 실제 삶을 바꿀 수 있는 다른 도구에 의지하는 게 낫다.


일기를 쓰기보다는, 차라리 세상에 외치자.


당신이 쓰고 버릴 단순한 기록도 누군가에는 참고가 될 수 있다.

당신이 혼자 감사하다 끄적거리는 것보다 뚜렷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것이 진정한 감사다.

반성도 혼자 되씹기보다는 밖으로 끄집어내어 남들에게 말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반면교사라도 될 수 있으니 세상에 더 이득이 되는 길이다.


요즘 나는 일기에 늘어놓던 내 반성을, 후회를, 각오를 브런치에 쏟아내고 있다.


그러면서 생각이 정리도 되고,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었다는 화답을 받는다.

부끄럽기도 하고, 준비하는 게 시간도 많이 걸리긴 하지만 이 편이 훨씬 낫다.

정신적으로 확연히 더 건강해졌다.


동시에 내 일기는 – 이제 와서 관두기 쉽지 않아 계속 쓰고는 있다 – 한껏 가벼워졌다.

좀 더 밝고, 나중에 쉬이 펼쳐볼 수 있는 일기가 되고 있다.


지나친 자기반성이 내가 실패한 또 하나의 이유였다면,

이러한 변화는 내가 우울증 약을 끊을 수 있었던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내 필명 '박기주'는, 의미 없는 기록을 그저 쌓기만 하는 사람에서 ‘기록의 주인’으로 변하고자 하는 마음에 지은 이름이다. 많이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내가 남긴, 그리고 앞으로 남길 기록의 진정한 주인이 되고자 노력 중이다.

군대 말년 휴가 때 쓴 일기. 군대에서도 빠짐없이 참 열심히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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