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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점은 입사 첫 해에 바로 잡았어야 했다

2부 - 일상에서의 실패

by 박기주

얼마 전, 첫 직장으로 다녔던 회사의 퇴직 임원 자녀 결혼식에 참석했다. 오래전 모셨던 상사였고, 자주는 아니지만 계속 연락을 주고받던 터라 지방에서 열린 예식이었음에도 기꺼운 마음으로 달려갔다.


하객으로 예식장은 북적였지만, 정작 아는 얼굴은 드물었다. 오랜만에 만날 수 있을까 기대했던 옛 동료들은 대부분 오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현직 임원과 퇴직 임원의 경조사는 밀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도 한동안 보지 못했던 몇몇 선배 임원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중에는 입사 당시 내 면접관이었던, 이제는 칠십 대 후반이 된 퇴직 임원도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한 걸음에 달려가 고개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박기주입니다. 혹시 저 기억나십니까?”
“그럼, 당연히 기억나지. 잘 지냈고? 요즘은 어디서 일하나?”
“네, OO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별 일 없이 잘 지냅니다. 대표님(그는 회사를 떠난 후 작은 기업에서 대표직을 맡다가 완전히 은퇴한 상황임을 알고 있었다)도 잘 계시지요?”
“나야 잘 있지. 그래서, 거기서 무슨 일을 하는데?”
“네. 여러 일을 전전하다가 지금은 마케팅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이러한 상품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그래? 잘 됐네. 그런데, 자네는 아직도 말이 빠르구먼. 잘 못 알아듣겠어. 내가 늙어서 귀가 어두워진 탓이겠지만… 어쨌든 반가웠네. 수고하고.”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더 이어갈 수가 없었다. 나는 멋쩍어하며 자리를 떠났다.


‘말이 빠르고 발음이 정확하지 않다’는 건, 내 오랜 단점이다. 그리고 이 단점은, 잊을 만하면 나타나 내 자존심을 세차게 후려친다. 아주 아프게.




뻔한 이야기이지만, 사람은 누구나 단점을 안고 살아간다. 외모일 수도 있고, 성격이나 능력일 수도 있다. 유전적으로 타고나는 경우도 있고, 살아가면서 형성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단점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어릴 때야 외모든 성격이든 능력이든 계속 변화하는 시기라 큰 의미가 없고. 고등학생쯤 되면 세상의 잣대가 ‘성적’으로 획일화되는지라 ‘나쁜 성적’ 외의 단점은 잘 보이지도 않는다.

대학생이 되면 어떨까. 성인이 되어 단점이 거의 굳어진 시기임에도, 사이가 틀어지는 것을 감수하지 않는 이상 굳이 “이게 너의 단점이다”라고 말해주는 경우는 드물고, 설혹 누가 말해주더라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경우는 더욱 드물다.

자식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조언을 아끼지 않던 부모님도 “이제는 다 컸으니 알아서 하겠지” 하는 마음에 잔소리도 줄이고, 특히 단점에 대한 이야기는 웬만하면 잘하지 않게 된다.


입사 첫 해는 단점이 드러나는 시기이다.


그렇게 묻혀 있던 단점은, 입사 첫 해에 갑자기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후배들 앞에서 인생 한참 더 살아본 양 훈계하던 대학교 4학년은 회사에 오면 아무것도 모르는 막내가 된다. 어디서 밥을 먹는지, 화장실은 어떻게 가는지까지도 가르쳐줘야 하는 수준이다. 학교에서는 두세 살 많은 게 계급장처럼 여겨졌지만, 회사에는 스무 살 많은 사람은 물론, 부모보다 나이 많은 상사도 있다.

이런 관계 속에서 사람들은 업무는 물론 말투, 표정, 태도, 복장까지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이건 고쳐라, 저건 바꿔야 한다며 직접적으로 말해준다. 상사-부하 관계, 사수-부사수 관계처럼 위계가 뚜렷할수록 그 지적은 직설적이고, 때로는 강압적이기까지 하다. 요즘은 조직 문화가 많이 바뀌었다지만,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입사 첫 해만큼 단점이 낱낱이 드러나는 순간은 여전히 드물 것이다.


하지만 연차가 쌓여 주임이 되고 대리가 되고 과장이 되면(이런 직급조차 없는 회사가 많지만) 상황은 달라진다. 단점을 듣는 경우가 줄어든다.

단점이 사라져서가 아니다, 그저 말을 하지 않을 뿐이다. 다들 익숙해져서이기도 하고, 이제는 막내가 아닌, 누군가의 선배가 된 사람의 단점을 굳이 끄집어내기가 애매해서이기도 하다.


입사 첫 해는 단점을 고칠 시기이다.


그렇다면, 단점을 고치기 가장 좋은 시점은 언제일까? 두말할 것 없다. 바로 입사 첫 해이다.

덧니가 너무 심해 사람들이 의식하는 게 느껴진다면 보철부터 해야 한다. 팔자걸음으로 사람들의 웃음을 유발한다면 교정 센터라도 다녀 고쳐야 한다. 감정을 잘 다스리지 않는 성격이나 일을 미루는 태도가 문제라면 비싼 전문가 상담도 불사해야 한다. 수출이 주 업무인데 영어 리스닝이 안 된다면 기백만 원짜리 과외라도 받아야 한다.


모두, 입사 첫 해에 해야 할 일이다. 이 시기에는 단점을 고치기 위해 애쓰는 것을 아무도 비난하지 않는다. 신입사원의 노력을 갸륵히 여기고 조언을 해주거나 격려를 해주기도 한다. 당신의 아등바등거림을 보고 뒤에서 키득거릴 후배도 아직 회사에 입사하지 않았다.

그러니 첫 해에 바로잡아야 한다.


나는, 고치지 않았다.


이미 말했지만, 내 가장 큰 단점은 ‘말이 빠르고 발음이 좋지 않다’는 점이다.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안 될 정도로 심한 건 아니었으니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 큰 불편은 없었다. 가끔 친구들이 말 좀 천천히 하라고 핀잔 줄 때면 “가서 귓구멍 좀 후벼 파고 와라”라고 대꾸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입사를 전후해서 그 단점은 갑자기 두둥실 떠올랐다.

취업을 준비하던 중 유독 면접에서 고배를 많이 마셨는데, 입사한 회사도 최종 면접에서 떨어졌다가 보결로 들어간 곳이었다. 그 회사의 인사담당자는 나중에 제법 친해진 뒤 술자리에서 슬그머니 면접 때 일을 귀띔해 주었다.

“참, 박기주 씨. 제가 입사하실 때 면접평가표를 살짝 볼 기회가 있었는데, 거기 우리 상무님이 뭐라고 쓰셨는지 아세요?”
“아니요. 뭐라고 쓰여 있었는데요?”
“’ 말이 너무 빠름’ 딱 여섯 글자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너무 부끄러워 말을 잇질 못했다.

이때뿐만이 아니라 입사 첫 해 여러 상사와 선배들이 말버릇을 고치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그때마다 나는 늘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숙였지만, 결국 달라지지 않았다.


지금도 내 말은 대부분의 사람보다 확연히 빠르다. 미팅 때나 발표 때 참석자들이 잘 알아듣지 못하고 되묻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그러다 보니 회사의 높은 사람들이나 고객과 이야기할 때는 내가 먼저 위축되곤 한다. “다시, 좀 천천히 말해주세요”라는 얘기를 들을까 봐 지레 겁을 먹고 있으니 결과가 좋을 리 없다.


이직 면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력서를 보고 얼른 만나고 싶다던 회사들이 면접 뒤엔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인 경우가 허다했다. 면접 중에 “중간에 끊어서 죄송한데, 조금만 천천히 말씀해 주시겠어요?”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내 단점은, 의심의 여지없이 내 발목을 잡고 있었다.


그때, 고쳤어야 했다


짐작했겠지만 최근 결혼식에서 내 말투를 지적한 칠십 대 임원은, 입사 당시 내 면접 평가표에 ‘말이 너무 빠름’을 적었던 바로 그 임원이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난 여전히 같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나는 이 단점을 입사 첫 해에 충분히 인지하고도 고치지 않았다. 개성이라고 생각했고, 장점을 키우면 다 덮을 수도 있다 쉽게 생각했다. 단점 하나가 커리어 내내 나를 괴롭힐 수 있음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요즘 난, 매일 아침 입을 크게 벌리며 발음과 발성 연습을 한다. ‘아에이오우’를 외치는 내게 아들은 의아한 눈길을 보내고, 복식호흡을 해본다고 애쓰는 날 보며 아내는 고개 갸웃하지만, 이런 창피함도 입사 첫 해에 단점을 고치지 못한 대가다. 언젠가 술자리에서, 인사담당자에게 지적당한 바로 다음날 마땅히 시작했어야 할 일이었다.


명확히 알고 있던 단점을, 입사 첫 해에 고치지 않고 수십 년간 방치하며 불이익을 자초한 어리석음.

이것이, 내가 실패한 여섯 번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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