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용하기 힘든 이름들.
모든 색을 섞으면 검은색이 된다. 모든 빛을 합하면 흰 빛이 된다. 레이 가와쿠보와 꼼 데 가르송이 패션의 검은색이자, 흰 빛이 아닐까. 하버드 대학 디자인 스쿨이 2000년에 레이 가와쿠보에게 건네었던 말을 빌리자면, 레이 가와쿠보는 검은색을 '발명'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이 디자이너는 여전히 '발명 중'이며, 이제는 패션을 발명 중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반세기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이 사람은 여전히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옷들을 디자인하고 있다. 꼼 데 가르송이 창립된 1973년, 당시 패션계 엘리트들에게 생경한 옷들을 선보이던 레이 가와쿠보와 그의 레이블은 반 세기만에 패션 엘리트들의 스승이자, 직접 그들을 그늘 아래로 거두기도 하는 거목이 되었다. 더 이상 우리는 그가 이 독특한 옷들을 왜 만드는지 묻지 않는다. 이유는 아무래도 좋다. 단지 그 이상의 의미를 찾고 싶을 뿐이다.
1.
몸은 레이 가와쿠보의 디자인 언어에 포함되어 있을까.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레이 가와쿠보의 디자인들을 떠올려보면 몸의 노출이 디자인의 일부였던 적이 없다. 오히려 그의 작업은 이 사람은 과연 인체를 고려하고 있을까 싶을 만큼 신체를 무시하는 듯한 태도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인간의 몸은 애초에 거기에 없었던 것처럼, 마치 찰흙 점토를 다루듯 천으로 새로운 덩어리를 빚어내고 있다. 몸은 기껏해야 점토를 붙이는 뼈대, 기둥 정도인 걸까. (지금껏 많은 매체들 또한 '신체를 거부', '새로운 몸'과 같은 단어들로 레이 가와쿠보의 컬렉션을 설명해왔다.) 다음으로 이 덩어리는 역시 옷인가 싶고, 어떻게 입는 걸까 싶다.
“I want to avoid the limitations of the body. It’s a hindrance.”
출처: Rei Kawakubo on hunger and power in fashion, by Olivia Singer, i-D’s The Out Of Body Issue, no. 367, Spring 2022
https://i-d.vice.com/en_uk/article/qjbwg3/rei-kawakubo-on-hunger-and-power-in-fashion
레이 가와쿠보는 실제로 인터뷰에서 '몸'을 자신의 작품에 대한 방해물로 언급한 적이 있다. 아래 사진의 경우처럼, 몸을 지워버린 옷을 바라보면 해당 문장을 그대로 받아들여도 별 무리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문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신체를 외면하고 싶은 디자이너는 과연 ‘모든’ 패션 스쿨 학생들의 귀감이라 칭할 수 있을지 의문이고, 동시에 글을 쓰는 본인 역시도 이 옷에서 무엇을 바라봐야 하는지 의문이다. 결국 다 자극적인 이미지들의 전쟁터에서 몸을 지우는 방법을 통해 조금 더 극단적인 실루엣을 만들어낸 정도일까. 우리가 꼼 데 가르송에 열광하는 이유는 단지 몸은 사라지고 옷만 남은 '기괴한 형태'에 불과한 것이었나.
애당초 패션계 스스로가 몸을 지우고 옷만 남겨가고 있기에, 레이 가와쿠보가 여기에서도 선구자적 능력을 발휘했다. 부인할 수 없지만, 그 정도 감상에서 멈출 수 없다. 끊임없이 나아가는 그를 쫓아가기 위해, 우리도 조금이나마 더 나아가기 위해, 해당 문장에서 레이 가와쿠보가 말하는 ‘몸’이라는 단어에 대해 재고가 필요하다. 꼼 데 가르송이 시작된 20세기부터 지금 21세기까지, 레이 가와쿠보가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몸은 줄곧 패션에게 방해물에 불과하다. 수정과 보정의 대상이자, 패션을 위해서라면 파괴해도 크게 개의치 않을 대상이다. 이미 19세기부터 코르셋은 더 이상 의학적 보조 도구가 아닌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보정 속옷으로 자리 잡았다. '보정'은 포토샵을 통해서나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다만 현실 속 보정은 실제 사람의 골격을 바꾸고 내장에 무리를 가하며 몸을 왜곡해왔다. 결국 패션계의 몸은 현실의 그것과 다르다. 스스로를 갉아먹는 왜곡된 몸을 우리는 드러내야 하는가. 우리의 몸이 우리에게 방해물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레이 가와쿠보는 사실 인간의 몸을 거부한 적이 없다. 그에게 방해물은 오직 패션화 된 몸들이다. 오히려 꼼 데 가르송의 옷들은 인체를 고려하지 않았던 적이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단지 여성의 몸을 '패션화'하는 시도들을 모조리 거부했을 뿐이다. 레이 가와쿠보와 꼼 데 가르송은 이 업계에만 존재하는 여성의 몸에서 벗어나 신체에 대한 완전한 전복을 일으켰고, 우리가 패션을 통해 무엇을 바라보아야 하는지, 그리고 지금까지는 무엇을 바라보고 있었는지에 대해 재고하도록 했다.
2.
레이 가와쿠보와 꼼 데 가르송은 패션계가 우상화 한, 특정된 형태의 몸을 지워버리는 데 그치지 않고 남성복의 남성성을 파괴하면서 다시 한번 고정관념을 지워내는 중이다. Comme des Garcons Homme, Comme des Garcons Homme Plus 등 이 레이블의 남성복 라인업들은 하나같이 남성 패션이 전통적으로 추구하고 묘사하는 권력, 효용성, 부와 같은 상징들을 배제하고 있다. 오히려 꼼 데 가르송의 남성복들은 다소 괴상하고, 심지어 거슬리며, 정장이지만 정장과 관련 있는 장소들에서 입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더욱이 "Gender-Neutral", "Uni-sex"의 시대에 굳이 '남성복' 라인을 분리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누가 보더라도 전통적인 남성복의 이미지와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동시에 고전적인 슈트와 셔츠에 디자인의 뿌리를 두고 이름에서부터 확실하게 남성복이라고 설명해오고 있는 디자인, 마케팅 전략에는 의문이 따른다.
하지만, 반대로 그렇기에 하나의 전략으로 읽을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기존 남성복의 상징들에 갇혀 새로움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의문이었던 남성복의 세계에서 레이 가와쿠보와 꼼 데 가르송은 새로움이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이 새로움은 새로운 남성복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남성들이 사회에 남아있기 위해 입어야만 하는 옷들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을 철저하게 부풀리거나, 자르거나, 뒤틀며 나타났다. 적어도 패션에서 위대한 조직의 시작은 어쩌면 최전방에서 관습에 정면으로 맞서는 "아방가르드" 보다는 교묘하게 내부의 뿌리부터 흔드는 "첩보 활동"일지도 모르겠다.
남성복과 정장의 근간을 뒤흔드는 첩보활동은 디자인적 성과 외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까. 그들은 정장을 해체해놓고도 정장의 가격을 유지했다. (어쩌면 그 이상의 가격도 형성했다.) 이 가격은 디자인의 가격을 정당화한 것으로 이어진다. 즉 옷 자체의 품질을 넘어 디자인의 값어치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계속 질문을 이어가자면, 디자인에 대한 가격을 설명한다는 말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제 막 첫 발을 내디딘 일개 디자이너가 자신의 독립 브랜드로 어떻게 자신의 영역을 구축할 수 있는가. 즉 명품처럼 역사와 유산이 없는 자신의 옷들에 붙어있는 가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어떻게 이 가격표를 납득시킬 수 있을까. 독자적인 디자인을 옷의 가격표에서 배제한다면 결국 당신의 옷도 수많은 옷들 중 하나에 불과하고, 곧 자라ZARA에서 비슷한 옷이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나올 텐데 결국 서로 다를 바 없는 옷이 아니냐는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디자인에 대한 가격은 곧 이 질문들에 대해 스스로 답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우리는 레이 가와쿠보와 꼼 데 가르송의 발자취를 따라가도 답을 얻을 수 있다. 그렇기에 과연 디자이너들의 디자이너다. 패션을 사랑하고, 디자이너를 꿈꾸는 모든 이들이 품고 있는 질문들, 그리고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하는 질문들에 자신의 발자취로 성실하게 자신들의 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앞선 질문들은 옷이 구매 이후 벽에 걸어 두거나 창고에 보관하면 끝인 물건이 결코 아니기 때문에 필연적이다. 이 천 조각들은 늘 거리를 돌아다닌다. 늘 사람과 마주한다. 그렇기에 패션은 예술을 거리로 내모는데 앞장 서온 영역이고, 실시간으로 사람들과 함께하며 그들의 동요를 일으킬 수 있는 영역이다. 비록 그 동요가 즐거움과 혼란 중 무엇인지는 각자에게 맡길 문제이겠지만, 그렇기에 그만큼 패션 디자이너는 옷에 대한 탐구뿐만 아니라 어떻게 사람들 사이에서 계속 남아있을 수 있는지, 즉 어떻게 ‘거래’를 성사시킬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그래서 패션은 인간과 사회에 의미가 있고, 꼼 데 가르송은 패션에게 의미가 있다.
3.
역설적이게도, 이 디자이너는 스스로를 철저한 사업가로 대하고, 스스로를 한 단어로 정의한다면 '비즈니스 우먼'으로 정리하곤 했다. 사실 그녀가 비즈니스 우먼이란 단어를 거부하고 싶었더라도, 레이 가와쿠보의 꼼 데 가르송은 이미 연간 매출 3억 달러의 거대한 사업체다.(그리고 레이 가와쿠보는 이 사업체를 온전히 소유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지켜봐 온 그녀의 모험은 예술적인 여정이 아니라 사업적 결재의 연속이었다.
Kawakubo admits that her venture into men’s wear was a practical decision, not an artistic one.
Source: T MAGAZINE, Rei Kawakubo Revealed (Sort Of)
그럼에도 레이 가와쿠보의 이 '비즈니스 모델'들은 예술 작품과 유사하게 간주되고, 거래된다. 우리가 길에서 꼼 데 가르송을 마주한다면, 갤러리에 걸릴 작품을 아무렇지 않게 길에서 들고 가고 있는 사람을 마주한 기분이 들 수도 있다. 그리고 의상에 따라 다르겠지만, 꼼 데 가르송의 런웨이 의상들에서 소매 구멍이 없다던지, 근육의 움직임을 제한하는 경우는 그리 대수롭지 않기 때문에, 꼼 데 가르송을 입고 활동하기란 실제로도 자신의 몸만 한 큰 그림을 들고 있을 때처럼 어려울지도 모른다. 조금 더 생각해보면, 패션이 정말 예술보다 대중적이고, 울타리가 낮은 영역인지에 대해 의문을 자아낸다.
이러한 옷들은 나아가 생산의 측면에서도 판매의 측면에서도 효율성과 같은 측면에서 무엇을 기대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그렇다면 레이 가와쿠보는 철저히 사업적인 관점에서 단지 미술의 가격만을 패션계로 가져오고 싶었을 뿐이고 이들 작품들은 그 가격을 위한 옷들이었을까? 어쩌면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레이 가와쿠보의 모든 실험적인 아카이브들은 대중들에게 가장 친숙한 라인이자 사업적 성공을 거둔 꼼 데 가르송 플레이 라인, 나아가 나이키와의 협업, 도버 스트릿 마켓의 정착 등 사업적 성과를 불러오기 위한 초석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그의 작품들과 인터뷰 조금만 읽어 보아도 위와 같은 생각은 가볍게 무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설령 레이 가와쿠보와 꼼 데 가르송의 아카이브들이 순수한 자본주의적 열망에서 비롯된 것들이라 하더라도, 이미 우리는 빚을 너무 많이 지고 있다. 그의 작업은 사업체에서의 지분과 달리 당신만의 작업이라고 할 수 없다. 그만이 알고 있을 작업의 본래 의도, 시작한 목적 등은 어쩌면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이미 우리는 그로부터 너무나도 많은 것을 배웠고, 앞으로도 벗어날 수 없을 만큼 영향을 받아왔기에,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그의 작업들은 그의 의도 그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2017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레이 가와쿠보 회고전의 전시 제목인 "The Art of In-Between"이 패션 그 자체를 설명할 수 있다는 점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 패션이야말로 거대한 산업이면서 동시에 예술의 영역, 그 사이에 존재한다. 나아가 패션은 수많은 영역과 계층 사이의 장벽을 허물고, 모든 옷들을 길거리로 해방시키며 경계들의 사이에 자리 잡아가고 있다. 레이 가와쿠보가 걸어온 길만으로 우리는 패션을 이해할 수 있고, 우리가 그토록 사랑하는 패션 디자인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 있다.
물론 레이 가와쿠보와 꼼 데 가르송으로 모든 패션의 발자취들을 따라갈 수는 없다. 우리가 동경하는 또 다른 디자이너들 역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레이 가와쿠보가 전선의 가장 앞에 자리 잡고 있다고 말하기에는 비약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럴지언정, 지금 최전방에서 경계를 지우고 옷의 영역에 도전하고 있는 수많은 디자이너들 이전에 그녀가 그곳에 존재했다는 사실만큼은 부인할 수 없다. 심지어 레이 가와쿠보가 최전선은 아닐지라도 현역이라는 사실 자체를 부인할 수는 없다. 그는 지금도 작업을 진행 중인 동료 디자이너다. 언젠가는 완전히 물러날 테고, 점점 잊혀가며 결국 완전히 사라질 테지만,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는 오늘은 아니다.
Does she, famously unenthralled by fashion history, ever think about what her legacy will be? They chat for several minutes, then Joffe turns to me and says,
“She’s never thought about it. She doesn’t care about or believe in posterity.”
결국 후세에게 관심도 없다는 레이 가와쿠보는 역설적이게도 후대 디자이너들이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을, 가장 위대한 유산이 되어가는 중이다.
박무요
朴無要
instagram@parkmuy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