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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지럽고 기분이 좋으면서도 아련한

by 박나비

몽글몽글한 것들이 좋다.

진지하면 진지하다고 욕을 먹고, 감성적이면 유치하다고 놀림받는 세상이지만, 깊이 있는 대화를 통해 서로의 내면을 알아가는 진지한 순간이 좋고, 비 오는 날 좋아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뭉클해지는 감성이 좋다.


진지한 대화, 말을 하는 혹은 내 말을 듣는 그 사람의 눈동자, 비가 오는 오후, 바닥에서 튀는 빗방울, 눈 내리는 새벽, 창문을 열고 손바닥을 내밀었을 때 손바닥 한가운데로 떨어지는 눈송이의 서늘함, 햇살이 내리쬐는 평일 오전의 가회동 골목, 그 골목에서 어슬렁 거리는 검은 고양이, 그 고양이를 따라가다 보면 나오는 대문 앞에 무심하게 내어놓은 조각상..


몽글몽글은 가슴에서부터 시작된다.

명치보다 조금 위 양 가슴사이,

거기서 5센티미터쯤 내려간 곳.

그쯤에서 무언가 간지럽고 기분이 좋으면서도 아련한.


몽글몽글은 얼굴로 올라온다.

바라보는 눈빛,

들숨과 날숨의 호흡,

입에서 나오는 말과 귀에서 들리는 말.

이 모두에서 몽글몽글함은 새어 나온다.


몽글몽글은 가슴으로 숨는다.

타닥타닥 거의 다 타버려 잔불과 재만 남은 모닥불처럼, 간지럽고 아련한 기분이 점점 사그라들면

명치보다 조금 위 양 가슴사이,

거기서 5센티미터쯤 아래로 내려간 곳.

그쯤에서 몽글몽글함은 연기처럼 사라진다.


아쉬운 마음에 오른손으로 가슴 언저리를 만져보지만 아무런 느낌이 없다.


귀에 이어폰을 꽂는다.

좋아하는 옛날노래들을 재생한다.


다시,

명치보다 조금 위 양 가슴사이,

거기서 5센티미터쯤 내려간 곳.

그쯤에서 무언가 간지럽고 기분이 좋으면서도 아련한 무언가가 몽글거린다.


나는 몽글몽글한 것들이 좋다.



*이미지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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