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형광팬 캠프
조명이 준비되자 멤버와 스태프들은 새벽 3시가 넘은 시간에도
저녁 7시인 것처럼 움직였다. 캠프파이어를 시작으로 재석형의
깜짝 생일파티, 야외에 차려진 바비큐를 맛깔나게 먹는 모습까지
촬영했을 때는 이미 새벽 5시가 다 되었다. 재석형은 마지막 사
람인 내가 잠자리에 눕는 모습까지 카메라로 찍어주었다. 잘 자
라는 인사에 대꾸하고 눈을 감자마자 아침이었다. 눈을 감았다가
뜬 것 같은데 벌써 7시였다. 억지로 눈을 뜨자 옷을 갈아입은 재
석형이 여전히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나는 내가 꿈을 꾸고 있는 줄 알았다. 아니 철인이 아니고서야
사람이 저럴 수 있단 말인가? 2시간밖에 못 자서 몸이 무거웠지
만, 저렇게 열심히 하는 재석형을 보니 피곤한 기색을 보일 수가
없었다. 오히려 저 배려에 보답하고 싶어서 기운을 끌어냈다. 다
른 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배려가 나의 120%를 끌어냈다.
이런 배려가 촬영 현장의 분위기를 좋게 만들고, 서로의 에너
지를 북돋아서 매주 사랑받는 방송을 만드는 힘이 되는구나 싶
었다. 재석형뿐만 아니라 멤버들과 스태프들 모두 카메라가 돌아
갈 때보다, 카메라가 돌아가지 않을 때 더 멋있는 사람들이었다.
출연자와 스태프가 서로 배려하며 에너지를 주고받는 사이, 좋은
기운은 점점 더 커졌고, 그 결과 준비했던 것들이 촬영에 들어가
면 빛을 발하는 것 같았다. 재석형과 형광팬 팀원들이 따로 만난
식사 자리에서도 재석형은 4시간 내내 이야기했다. ‘어떻게 하면
방송이 더 재미있을까’에 대하여.
나는 죽었다 깨도 저렇게 못 할 거라 생각했다. 저런 노력과 최
선은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전과 똑같은 방법으로 공부했고 불합격했다.
형광팬 캠프는 그냥 잘 놀다 온 신기한 경험이었다고 생각했는
데 아니었다. 그 경험은 내 안의 노력과 최선에 대한 기준을 바꿨
다. 내 수험 생활에는 군더더기가 많았다. 포기하지 못하는 것들
도 많았고, 챙겨야 할 것과 걱정해야 할 것들도 많았다. 불합격하
고 나서 주변 탓을 할 때는 동생과 같이 살면서 설거지, 청소 같은
집안일에 쓴 시간도 원망스러웠다.
‘동생이 나 대신 다 했으면 내가 붙었을 텐데...’
완전히 틀린 생각이었다. 만약 그랬어도 난 합격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점수는 더 형편없었을 것이다. 배려는 시간 낭비
가 아니라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 일이니까. 더군다나 진짜 노
력하지도 않고서 애꿎은 남을 탓하는 사람이 무슨 합격을 바랄
자격이 있을까.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재석형도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는 방송을 만들까를 매일 고민하는데, 나는 그 절반이라도
노력을 했던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고서야 형광팬 캠프가 정말 내 인생을 바
꾸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유명한 연예인들이랑 놀러 갔다 와서가
아니라, 순도 높은 노력이 무엇인지를 옆에서 봤기 때문에. 배려
는 상대방뿐만 아니라 나를 위해서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
이었다.
다시 공부를 시작하면서 스마트폰을 없애고, SNS 계정을 삭제
하고, 공부에 집중하는 데 불필요한 것들을 치워버렸다. 온종일
어떻게 하면 합격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밥 먹는 방법도 바꿨고,
잘 때도 합격에 도움이 되도록 자는 방법이 없을지 고민했다. 동
생을 대신해서 장을 보고 청소하고 설거지할 때면 나는 나를 예
뻐할 수 있었다. 사소한 일들이지만 수험 공부를 하면서도 가족
을 배려하는 자신을 기특하게 여겼다. 동생도 그런 오빠를 생각
해서 수험 생활 내내 나를 챙겨주었다. 서로 맛있는 걸 나눠 먹고,
무거운 짐을 나눠 들고, 잘 마른빨래를 개면서 나는 의자에 더 오
래 앉아있을 힘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