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조차 증거가 되는 세상에서
“엄마, 나도 나와도 돼?”
하윤의 목소리에 손이 멈췄다.
이제는 내가 먼저 조심한다.
배경에 어떤 물건이 들어가는지,
색감이 어떤 뉘앙스를 만드는지.
그건 단지 감각의 문제가 아니다.
‘조회수’라는 이름의 맹목,
그게 사람을 어떻게 휘두르는지 나는 너무 잘 아니까.
“하윤이는 오늘 쉬자.”
“나 이 옷 입고 싶어서 그래.”
“그래도 오늘은 촬영 안 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카메라는 이미 켜져 있었다.
화면 속에는 내가 아닌 누군가가 있었다.
아니, 나는 아직도 ‘은채’로 남아 있었을까.
어제 올린 영상이 묘하게 퍼지고 있었다.
처음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던 클립 하나가
지금은 다른 태그로 변해 떠돌았다.
“엄마의 일기.”
“아이와의 진심.”
“숨은 신호?”
그건 내가 붙인 제목이 아니었다.
누군가 내 영상을 자르고,
짜깁기하고,
새로운 시선을 덧입혔다.
“이 영상 이상하지 않아요?”
“꽃 그림, 그 의미 모르면 검색해 보세요.”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영상은 나를 밀어내며 ‘다른 목소리’를 얹고 있었다.
댓글은 갈라졌고, 사람들은 각자의 정의를 외쳤다.
가장 무서운 건 그들 중 일부가
시스템 내부자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메일함에 알림이 떴다.
탐사보도팀: 익명 인터뷰 가능하실까요?
익명—
그 단어가 이젠 허울처럼 들렸다.
얼굴도, 이름도,
아이의 이름까지 이미 세상에 노출된 사람에게
‘익명’이란 얼마나 잔인한 농담인가.
방 안, 아이는 자고 있었다.
나는 몰래 핸드폰을 꺼내 노트 앱을 열었다.
거기엔 오래전 정우가 남긴 문장이 있었다.
“당신이 증거를 넘기지 않아도,
시스템은 당신을 선택할 겁니다.”
그는 예언했었다.
이 구조는 자가 복제된다고.
누군가 ‘은채’를 넘기면,
또 다른 누군가가 ‘은채’를 불러내는 구조.
나는 그걸 멈출 수 있을까.
아니, 멈추는 척이라도 할 수 있을까.
“엄마, 나 요즘 왜 학교에서
이상한 말 듣는지 알아?”
하윤의 목소리가 낮고 조심스러웠다.
”무슨 말인데?”
“엄마가… 사람들한테 뭔가 숨기고 있대.”
은채는 물컵을 내려놓았다.
“그걸 누가 그래?”
”몰라. 다들 알던데? 유튜브에 그렇게 나왔대.”
숨이 멎는 듯한 순간이었다.
이제 그건 헛소문이 아니었다.
침묵이 낙인이 되었다.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지금은 가장 큰 오해의 근거가 되어 있었다.
메일함엔 또 다른 메시지들이 쌓였다.
“제보 감사합니다.”
“입장 표명하셔야죠.”
“그 영상, 고의 아닌 척하지 마세요.”
그들은 내 이름을 정확히 알고,
내 영상의 디테일을 짚으며,
내가 하지 않은 말을 대신 해석하고 있었다.
이 시스템은 침묵조차 퍼블릭하게 만든다.
‘말하지 않음’은 곧 무언의 고백,
그 고백은 누군가의 프레임 안에서 증거가 된다.
그날 오후, 하윤이 돌아왔다.
눈동자는 젖어 있었지만, 울지 않았다.
“친구들이 물어봤어.
엄마, 진짜로 이상한 일 있었던 거냐고.
근데 나, 진짜 몰라서 아무 말도 못 했어.”
작은 손이 떨렸다.
어른들의 시스템이 만든 그림자가
아직 숫자놀이가 더 익숙한 아이의 어깨를 짓눌렀다.
메일함에 또 한 통의 편지가 들어왔다.
발신자 없음, 수신자 없음.
“입장문을 준비하세요.
아니면, 누군가가 대신 써줄 겁니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은채는 카메라 앞에 다시 선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더 이상 연출도, 편집도,
진심도 통하지 않는 프레임 속 얼굴.
그녀는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하윤아, 우리 내일은 바다 보러 갈까?”
”진짜? 여행 가는 거야?”
“응. 멀리…
엄마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곳으로.”
그 말속엔 도망과 선택,
두 가지 마음이 함께 담겨 있었다.
필요하다면 말하겠다.
하지만 지금은,
‘말하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을
잠시나마 허락받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