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살아있음을 감각해야 한다. 매일에 완전히 젖어드는 것이다. 나는 나로서 살아감의 비밀을 밝혀내고야 말겠다. 그래서 너를 찾고 나를 빚으며 우리를 정의하겠지. 나는 어떻게든 나를 살아가야만 한다. 그렇게 세상은 온통 삶으로 가득 차는 것이다.
겪어보지 않고서야 담아내지 못한다. 겹겹이 깨어나가자. 고스란히 흘려보내자.
계획을 세우는 이유는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그런대로 감사하는 방법을 훈련하기 위함이 아닐까. 내 뜻을 키워나가는 이유는 세상만사가 마음 같지 않음을 배워나가기 위함이 아닐까. 우선 저질러보면 그만임을 배워나가는 것이 아닐까.
각오가 없으면 도전도 없다.
확신이 서면 행동으로 옮기자.
좋은 습관을 하나하나 늘려나가자. 그렇게 지켜낼 일상의 규모가 커지는 거다.
되려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이어나가기보다 삶을 각오하고 뛰어드는 만용을 저지르는 편이 나을까.
행복한 일상은 일상 속 작은 기쁨을 찾아냄의 미학이다. 나는 아파트 건물 카페가 너무 좋다.
누군가를 향한 사랑, 믿음, 의지 등의 감정은 마냥 생겨나지 않는다. 뿌리를 내리고, 곧 싹이 트길 기다리며, 열매가 자라도록 돌봐줌에 있다.
내가 저지른 모든 선택과 판단, 실수와 과오에 구태여 후회하지 않겠다. 다 끌어 안고 더 나은 오늘을 살겠다 다짐한다. 구태여 지나온 나를 비난하지 않겠다. 동정하지 않겠다. 너는 그대로 너였음을 인정하겠다. 나는 그대로 현재를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방향을 잡으면 곧장 앞으로 나아가자.
나의 모든 조각을 이어 붙여 나를 만들자.
끊임없이 돌보고 보살피며 응시함 속에서 생각을 틔워내자. 자연스럽게 종이 위에 떨어뜨리자.
감정의 복잡 미묘, 그 얽히고설킨 속에서 나를 찾아내야겠다. 넓은 만큼 깊게 매일의 나를 파고들자. 넓어져야 깊어진다.
삶과 글을 분리시키려 하지 말자. 지나온 하루를 적어내는 것이 아닌, 적어낸 오늘을 매일같이 살아가는 것이다. 매일을 오늘로 살자. 매일을 어제로 기억하며, 매일을 내일로 적어내자.
누가 만든 기준이며, 누구를 위한 평균일까. 스스로의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평균을 깨부숴야 한다. 그렇게 매일을 옥죄이듯, 매일을 철저하게, 처절하게 나로 살아가야 한다. 그저 그런대로 사는 것은 없다.
삶은 내가 아니다. 나와 너고 결국 우리다. 그렇기에 삶은 흔적을 남긴다. 기쁨과 행복을 아픔과 상처를 남긴다. 우리는 한바탕 웃기도 하며 때로는 목놓아 슬픔을 토해내기도 한다. 서로를 증오하기도 하며 다시금 서로를 갈급하게 찾는다. 그렇게 추억을 남기며 삶에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남는다. 삶은 원래 불편한 거다. 그렇게 다 짊어지듯 끌어안고 가는 거다. 그렇게 우리가 되는 것이 아닐까. 삶은 흔적을 남긴다. 구태여 사라지려 하지 말자.
감추고 싶은 마음이 있다. 감춘다기보다는 딱히 내보이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할까. 근데 언제고 마음이라는 것이 내 뜻대로 된 적이 있던가. 별 수 없이 새어 나올 뿐이다.
지나온 감정과 기억을 품어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죽은 목숨이나 다름이 없다.
지난날의 모든 흔적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영원히, 밝게 비춰준다.
현실자각, 자기 객관화는 병이다. 세상 물정 모르듯 덤비는 편이 낫다. 주체 없이 떠도는 단어들에 나를 끼워 맞추려 하지 말자. 주체는 나다.
공들여 쌓아 가는 만큼 무너지기도 쉽다는 것을 잊지 말자. 다시 차근차근 더 튼튼하게 쌓아 올리면 된다. 소는 잃어도 외양간은 고친다.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나조차도 나를 알지 못한다고 되뇌는 까닭은, 필사적으로 나를 들어다 보겠다는 다짐이기 때문이다. 깊은 줄을 모르고 파고들어야겠다는 마음이다. 끝끝내 알 수 없다는 좌절에의 외면인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외치는 직면이다.
삶은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내며, 열매를 맺는 거다. 심지 않으면 자라지 않는다. 나는 나무가 될 거다. 끊임없이 삶을 가꿔낼 거다.
허무를 말하지 않겠다. 공상을 연습하지 않겠다. 나를 암시하지 않겠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다가오는 매일의 출렁임에 몸과 마음을 넌지시 뉘이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