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공농성=408+426일

파인텍지회 굴뚝농성이 끝나고

by 박예준

[이 글은 노동·정치·사람 웹진(http://laborpolitic.red/?p=6196)에 기고된 글을 수정한 것이다.]

박예준 | 노동·정치·사람 집행위원, 강서양천민중의집 사람과공간 노동사업팀장(당시)


고공농성1.png 굴뚝농성장 해단식 날, 119구조대가 두 노동자를 내리러 굴뚝 중간에 올라있다


민주노총 9기 임원선거가 한창이던 2017년 11월 12일 새벽, 전태일열사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를 앞두고 두 명의 노동자가 서울 목동의 열병합발전소 굴뚝 위에 올랐다. 금속노조 충남지부 파인텍지회 홍기탁 지회장과 박준호 사무장은 스타플렉스 김세권 사장의 합의이행을 요구하며 ‘다시’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파인텍, 충남 아산에 있던, 생산직 노동자 다섯명이 일하던 작은 조립식 공장이 연일 언론기사에 오르내리고 굴뚝농성의 다른 이름이 된 것은 이미 예정된 일이었다. 이미 지난 2015년 408일의 (당시) 세계 최장기 고공농성의 기록을 세우면서까지 얻어낸 투쟁의 결과물이었지만, 가히 악질자본이라고 부를만한 김세권 스타플렉스 사장이 합의를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기나긴 투쟁


아마 파인텍지회 집회를 몇 번 가본 사람들은 이미 귀에 익었을 파인텍지회의 투쟁역사는 이렇다. 2005년 '한국합섬'이라는 구미의 화학섬유 생산업체가 경영진의 방만한 경영으로 파산한다. 주채권자 산업은행의 관리하에 놓인 공장에서 당시 노조는 정리해고에 합의하고 공장을 떠난다. 합의를 거부한 노동자들은 공장을 사수하며 싸웠고, 어느 날 ‘스타플렉스’라는 화학섬유 제조회사의 김세권 사장이 노동자 고용승계를 조건으로 공장을 인수한다. 당시 300여억원이라는 인수금액이 꽤나 커 보이지만, 공장의 부지와 설비의 가격은 그보다 훨씬 큰 금액이었으니 확실히 헐값에 사들인 꼴이다. 한국합섬은 ‘스타케미칼’이라는 이름이 되었고 어쨋든 공장은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공장을 재가동한지 3년만에 김세권 사장은 적자누적을 이유로 폐업을 선언한다. 화학섬유 제조업은 공정의 특성상 가동 후 수년간은 일시적 적자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이미 시가총액 300억대의 같은 제조업을 운영하는 자가 이를 몰랐을 리 없다. 명백하게 공장을 분할매각하려는 속셈이었다. 이 때 차광호 현 지회장이 스타케미칼 해복투 대표로 공장 굴뚝에 올라 408일간 고공농성을 치렀고, 충남 아산에 파인텍이라는 회사로 고용승계, 노조승계, 단체협약승계를 조건으로 합의했다.


고공농성2.png 구미 스타케미칼 굴뚝 농성 당시 사진



다시 시작된 투쟁


하지만 사측은 제조사업장의 통상적인 수준의 잔업조차 실시하지 않아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을 간신히 넘는 임금만을 받았고, 노조를 비웃듯 교섭을 해태하고 단협승계 약속도 휴지조각처럼 버렸다. 긴 교섭 끝에 노조는 파업을 선언했고 사측은 기다렸다는 듯이 공장을 해체해버렸다. 또 다시 돌아갈 공장이 사라졌다.


굴뚝 위에서의 겨울은 당연히 춥다. 지상에서는 체감온도가 영하 20도라고들 했으니 75미터 위의 칼바람은 실제로 영하 20도쯤 되었을 듯 하다. 첫 겨울을 나니 폭염이 찾아왔다. 지상에서도 기록적인 폭염이 연일 이어지는 와중에 굴뚝 위는 50도에 달했다. 가을이 지나고 아래에서는 결의했다. “두 번째 겨울을 굴뚝 위에서 보내게 할 수는 없다!”고. 야속하게도 그런 결의에도 불구하고 겨울을 맞고, 차광호 지회장의 408일 기록을 갱신했으며, 해를 넘겼다. (당시부터 현재까지 최장기 고공농성 기록은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김재주 지부장의 전주시청 앞 조명탑 510일 고공농성이다.)


굴뚝 아래의 차광호 지회장은 스타플렉스 본사가 있는 목동 CBS 건물 앞에서 단식을 시작했다. 송경동 시인, 박래군 소장, 나승구 신부, 박승렬 목사도 연대단식을 시작했다. 주기적으로 확인하는 굴뚝 위 두 노동자의 건강상태도 최악이었다. 매일 차가운 음식을 먹느라 소화기계에 부담도 컸으며, 좁은 공간에 있기에 근골격계 질환도 만만치 않았다. 옷을 들춰올린 사진을 보면 홍기탁과 박준호의 건강하던 모습을 기억하는 동지들은 탄식을 내뱉었다. 탄탄한 몸은 찾아볼 수 없이 앙상해졌다. 몸무게가 50키로대까지 빠졌다고 했다.


고공농성3.png 굴뚝 위 박준호, 홍기탁이 보내 온 사진



목숨을 건 투쟁, 땅을 밟기까지


2019년 1월 6일, 고공농성자 두 명은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다. “청춘을 다 바쳤다, 민주노조 사수하자!”며 고공단식을 선언한 박준호, 홍기탁을 보며 연대단위들은 애가 탔다. 이미 장기간의 고공농성으로 건강이 상해있는 두 명에게 단식은 치명적일 것임이 분명했고, 굴뚝 위에서 줄을 내리지 않아 핫팩과 배터리도 올릴 수 없었다. 마침 칼같은 강추위가 몰아닥치고 있었다.


고용노동부의 중재로 5차례에 걸친 교섭을 했지만 스타플렉스로의 직고용을 요구하는 교섭단에게 김세권 사장은 ‘굴뚝에 올라가면 다 영웅이냐’, ‘여력은 있지만 고용하지 않겠다’, ‘저들이 들어오면 우리 회사 다 망한다’는 망발을 내뱉을 뿐이었다. 한국사회의 노조에 대한 혐오를 압축해서 보여줬다. 연대단위들은 김세권에게 ‘최소한의 인간으로서의 도의’를 요구했다. 뭔가 새롭고 큰 것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미 두 번이나 한 약속을 지키라는 것이었다. 시민단체들은 김세권의 집 앞에서 성실교섭을 촉구하기도 했다.


고공농성4.png 노동·정치·사람 백상진 회원이 김세권 자택 앞에서 피켓팅하는 모습


1월 10일, 6차 교섭이 열렸다. 새벽까지 1박2일로 계속된 교섭 끝에 합의안이 마련되었다. 아래의 김옥배 조합원은 새벽 일찍 굴뚝에 올라 눈물을 흘리며 설득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최선의 노력을 다 한 주요 합의결과는 다음과 같다.


– 김세권이 직접 파인텍 대표이사를 맡아 책임짐.
– 2019년 7월부터 공장 정상가동 및 생산물량, 적정인원 확보
– 기본협약 체결 및 2019년 4월까지 단체협약 체결
– 2019년 상반기 유급휴가
– 고소고발 취하


이에 11일 아침, 고공농성을 해제하기로 하고 14시 30분에 해단식을 하기로 공지했다.


248923_28356_4720.jpg 합의서



드디어 땅을 밟는 노동자들


해단식 날은 기쁜 날임을 증명하듯 여느 겨울날보다는 따뜻했다. 필자가 조금 늦게 농성장에 도착하니 노동정치사람 이덕우 상임대표가 이미 도착해서 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차광호 지회장은 면도와 목욕으로 한층 깔끔한 모습으로 와있었고, 끝장투쟁을 선포한 콜트콜텍 노동자들도 와있었다. 민주노총 김명환 위원장이 마이크를 잡고 투쟁사를 하는 중이었다.


농성자들이 건강악화로 인해 스스로 내려올 수 없어 구급대원들이 올라갔다. 굴뚝들의 간격이 좁아 헬기를 사용할 수 없고, 농성자들을 줄로 묶어 내리는 것은 더더욱 위험했다. 이에 안전을 위해 안전줄을 매달고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기로 했다. 먼저 400여일의 짐을 내리고, 박준호가 내려왔으며, 홍기탁이 내려왔다. 그리고 새벽에 굴뚝 위로 올랐던 김옥배 조합원이 마지막으로 농성장을 정리하고 내려왔다. 연대단위들은 ‘동지가’를 부르며, 426일간 외쳤던 “힘내라 홍기탁! 힘내라 박준호! 우리가 함께할게!” 구호로 내려오는 노동자들을 맞았다. 굴뚝 위 노동자들이 내려오는 날 함께 면도를 하겠다며 수염을 기르고 있던 민중가수 박준은 ‘민주노조 사수가’를 부르며 농성자들을 맞았다.



민주노조 사수가(김호철 글,곡)


빼앗긴 자랑스런 이름을 찾아, 사라져간 동지의 넋들을 찾아
발자욱 하나하나 울분새기며 싸우는 동지들이여
보라 피묻은 작업복의 저 깃발, 굴종을 거부한다 저 깃발
아아 민주노조 우리들의 해방터
노조는 우리의 생명 우리들의 가슴이다
자 목숨걸고 지키리라 사수하라 민주노조


더 이상 노예생활 참을수 없어 노조깃발 높이 올려 뭉친 우리들
백골단 지랄탄이 춤춘다해도 끝까지 투쟁하리라
보라 가진자의 더러운 음모를, 타협을 거부한다 저 깃발
아아 민주노조 우리들의 해방터
노조는 우리의 생명 우리들의 가슴이다
자 목숨걸고 지키리라 사수하라 민주노조


홍기탁, 박준호는 구급침대에 누운채로, 차광호 지회장과 김옥배 조합원, 조정기 조합원은 그 옆에 손을 잡고 선 채로 열병합발전소 문 앞에 섰다. 기자들의 취재경쟁으로 잠시 혼란스러웠지만, 이내 마이크를 잡고 발언했다. 눈물을 애써 참는 홍기탁 전 지회장은 “청춘을 다바쳤다! 민주노조 사수하자!”라 구호를 외쳤고, 박준호 사무장은 그간 연대해준 모든 동지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전태일 열사의 동생인 전태삼 선생이 땅을 밟는 동지들에게 선물한다며 신발을 보내왔고, 침대 위에서 두 노동자는 선물받은 새신발을 꺼내 신었다.


그리고 고공농성자들과 아래의 단식농성자들은 구급차로 서울 중랑구 녹색병원으로 향했다.


고공농성6.png 구호를 외치는 홍기탁 지회장
고공농성7.png 신발을 신어보는 홍기탁 지회장과 박준호 사무장



끝나지 않은 투쟁


위의 합의서를 보면 기시감이 든다. 새로운 합의가 아니라 기존의 합의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시금 만든 합의를 지키게 하기 위해 연대단위들은 계속 감시할 것이고, 파인텍지회 조합원들은 현장에서 투쟁을 이어갈 것이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도 남아있다. 목동 열병합발전소를 운영하는 서울에너지공사는 지난해 초 퇴거 가처분을 신청해, 2018년 4월경부터 1인당 하루 50만원의 이행강제금이 부과되었다. 대형호텔 숙박비만큼 비싼 하루 백만원의 돈이 3억원 가까이 쌓였다. 파인텍지회와 연대자들은 지난 여름 농성장을 찾아 다른 말 없이 ‘태풍 때문에 위험하니 내려오라’며 서울에너지공사 명의의 공문만 달랑 주고 간 박원순 시장을 기억한다. 노동존중을 표방하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투쟁에 대한 잔혹한 손배가압류를 어떻게 끝낼지 모두 두고 볼 것이다.


끝으로, 아직 투쟁을 이어가는 노동자들이 있다. 국내 최장기 투쟁사업장인 콜텍 노동자들이 지난 1월 9일 서울시내 수십키로를 이틀간 걸어 등촌동 본사 앞에 천막을 설치했다. 13년의 싸움을 끝장투쟁으로 마무리하겠다고 선언한 콜트콜텍 노동자들에게 많은 관심과 연대를 부탁드린다. (콜텍 노동자들은 임재춘 조합원의 42일간의 단식농성 끝에 사측과 합의하여 4464일의 투쟁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