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언제나 절벽을 올랐다

기술 변곡점과 AI 시대의 선택

by ParOn

인류는 언제나 그렇게 진화해왔다


인류의 역사는 직선이 아니다. 완만한 평원을 걷다가 어느 순간 가파른 절벽을 오르는, 그런 굴곡의 연속이었다. 그 절벽을 만들어낸 것이 바로 기술의 발명이었다. 활자, 증기기관, 전기, 자동차, 비행기, 인터넷, 스마트폰—이 이름들은 단순한 발명품 목록이 아니다. 그것은 인류가 자기 자신을 다시 정의한 순간들의 연보(年譜)다. 그리고 지금, AI라는 이름의 또 하나의 절벽이 우리 앞에 서 있다.


그런데 역사를 돌아보면 흥미로운 패턴이 하나 있다. 인류는 매 변곡점마다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새로운 기술을 향해 달려가는 얼굴이고, 다른 하나는 두 팔을 벌려 그것을 막아서는 얼굴이다. 기술의 역사는 발명의 역사인 동시에, 저항의 역사였다. 그리고 그 저항은 때로는 무지에서, 때로는 기득권에서, 때로는 진지한 인문학적 우려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어느 경우든, 그 마찰이 문명을 더 세밀하게 다듬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1. 활자 — 지식의 민주화, 그리고 교회의 공포


1450년,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등장하기 전까지 지식은 손으로 베끼는 것이었다. 필경사의 손목이 곧 지식의 속도였다. 수도원의 서기실에서 수십 년에 걸쳐 완성된 필사본 한 권은, 그 자체로 권력이었다. 성경을 읽을 수 있는 자와 읽을 수 없는 자 사이의 간극은, 단순한 교육 수준의 차이가 아니라 신과의 거리였고, 구원의 여부였다.


활자의 발명은 그 구조를 뿌리째 흔들었다. 불과 수십 년 만에 유럽 전역에 수천만 권의 책이 쏟아졌고, 성경은 왕과 성직자의 손에서 평민의 손으로 내려왔다. 루터의 종교개혁도, 근대 과학혁명도 그 토양 위에서 싹텄다.


그러나 기득권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로마 교황청은 1559년 『금서 목록(Index Librorum Prohibitorum)』을 공식 발표하며 금지 도서를 지정했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담은 책도, 갈릴레이의 저작도 그 목록에 올랐다. 일부 군주들은 인쇄소를 허가제로 운영하며 출판을 통제했다. 오스만 제국의 경우 더욱 극단적이었다. 이슬람 학자들이 "인쇄된 코란은 신성을 잃는다"는 종교적 이유를 들어 반대하면서, 오스만 제국 내 아랍어 인쇄기는 구텐베르크의 발명으로부터 무려 250년 이상 지연되었다. 이 지체가 후에 오스만 제국의 지식 생산력 저하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활자는 단순히 책을 빨리 찍어낸 기계가 아니었다. 그것은 정보 독점의 해체였고, 인식론적 민주주의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막으려 했던 자들은 역사의 뒤안길에서 '진보를 거부한 자들'로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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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증기기관과 러다이트 — 기계를 부순 사람들의 진심


18세기 후반,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은 인간의 근육과 동물의 힘에 의존해온 문명에 처음으로 '기계의 노동'을 선물했다. 공장이 들어서고, 도시가 부풀었으며, 계급구조가 흔들렸다. 산업혁명은 불과 반세기 만에 영국의 농촌 풍경을 굴뚝의 숲으로 바꾸어 놓았다.


1811년부터 1816년 사이, 영국 노팅엄셔를 중심으로 한 섬유 직공들이 공장으로 쳐들어가 직조 기계를 망치로 부수기 시작했다. 이들을 '러다이트(Luddite)'라 불렀다. 전설적인 지도자 네드 러드(Ned Ludd)의 이름을 따서 붙인 명칭이었다. 훗날 '러다이트'는 기술 혐오자의 대명사가 되었지만, 그것은 역사의 단순화다. 이들이 기계를 두려워한 이유는 무지가 아니었다. 기계 한 대가 숙련 직공 열 명의 일자리를 대체했고, 그 자리에 들어선 것은 반숙련 아동 노동자였으며, 임금은 폭락했다. 러다이트 운동은 기술 자체에 대한 반발이라기보다, 기술의 열매를 독점하는 자본에 대한 분노였다.


영국 정부의 대응은 가혹했다. 기계 파괴 행위를 사형으로 처벌하는 법안이 통과되었고, 진압을 위해 나폴레옹 전쟁에 파견된 병력보다 더 많은 군대가 국내에 배치되었다. 수십 명이 처형되거나 유배되었다. 그러나 그 저항이 완전히 무의미하지는 않았다. 노동 환경 개선, 아동 노동 금지, 노동 시간 규제—그 모든 제도적 안전망이 그 이후의 저항과 논쟁을 통해 서서히 탄생했다. 러다이트가 기계를 막지는 못했지만, 기계가 인간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를 사회가 고민하도록 강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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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자동차와 레드 플래그 — 말(馬)의 기득권이 법이 되다


1865년 영국 의회는 세계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기술 규제법 중 하나를 통과시켰다. 이른바 '붉은 깃발법(Red Flag Act)', 정식 명칭은 『도로기관차법(Locomotive Act)』이었다. 이 법의 핵심 조항은 이러했다: 자동차(당시 증기 자동차)는 도심에서 시속 3.2km(시속 2마일) 이상으로 주행할 수 없으며, 반드시 세 명이 탑승해야 하고, 그 중 한 명은 차량 55미터 전방에서 붉은 깃발을 흔들며 걸어가야 한다.


이 법은 30년간 유지되었다. 배경은 단순하지 않았다. 마차 업자들, 마굿간 주인들, 말 사육업자들, 철도 회사들이 뭉쳐 로비를 벌인 결과였다. 말을 중심으로 한 교통 산업은 당시 영국 경제의 핵심 섹터였고, 자동차의 등장은 그 전체를 위협하는 것이었다. 공공 안전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증기 자동차가 폭발하거나 말을 놀라게 하여 사고를 낸 실제 사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질은 기술이 아니라 이해관계였다.


결과적으로 이 법은 영국이 자동차 산업의 주도권을 독일과 프랑스에 넘겨주는 결정적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같은 시기 독일의 카를 벤츠와 고틀리프 다임러는 규제 없이 내연기관 자동차를 개발하고 있었고, 1886년 세계 최초의 실용적 가솔린 자동차가 독일에서 탄생했다. 레드 플래그 법이 폐지된 것은 1896년이었다. 30년의 지체는 영국이 다시는 메우지 못한 자동차 산업의 공백으로 남았다.


레드 플래그 법은 오늘날 기술 규제의 반면교사로 자주 인용된다. 안전을 명분으로 한 과도한 규제가 혁신을 질식시킬 수 있다는 경고다. 동시에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당시 도로에는 자동차를 위한 인프라가 없었고, 교통법규도 없었으며, 보험 체계도 없었다. 기술의 속도와 사회적 준비의 속도가 맞지 않았을 때, 충돌을 조율하는 과정이 규제였던 것이다. 문제는 그 조율이 공공의 이익이 아닌 특정 이익집단에 의해 왜곡되었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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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전기 — 에디슨의 '공포 마케팅'과 교류 전쟁, 그리고 공존


전기의 역사에는 기술에 대한 외부의 저항만이 아니라, 기술 진영 내부의 전쟁도 있었다. 이른바 '전류 전쟁(War of Currents)'이다.


토머스 에디슨이 직류(DC) 방식의 전력 시스템을 상용화하고 있을 때, 니콜라 테슬라와 조지 웨스팅하우스가 교류(AC) 방식을 들고 나왔다. 교류는 장거리 송전이 가능하다는 결정적 장점이 있었지만, 에디슨은 자신의 직류 인프라에 막대한 투자를 한 상태였다. 이해관계가 걸린 에디슨은 교류의 위험성을 과장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그는 공개적으로 개와 말을 교류 전기로 감전시키는 '시연'을 벌였고, 최초의 전기의자 사형도 교류 방식으로 집행되도록 로비했다. '웨스팅하우스되다(to be Westinghoused)'라는 말을 '감전사하다'의 의미로 쓰이게 하려는 언론 공작도 벌였다. 공포를 통해 기술을 억압하려 한 것이다.


결과는 에디슨의 패배처럼 보였다.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의 전력 공급을 웨스팅하우스의 교류 방식이 수주하면서, 교류는 사실상 세계 표준이 되었다. 에디슨의 공포 마케팅은 기술의 우열을 바꾸지 못했다. 20세기 내내 우리 가정의 콘센트에서 나오는 전기는 교류였고, 대륙을 가로지르는 송전망도 교류 방식으로 구축되었다.


그러나 역사의 아이러니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에디슨이 집착했던 직류가 조용히 부활하고 있다. 스마트폰, 노트북, 전기자동차 배터리—이 모든 것이 직류로 작동한다. 태양광 패널이 생산하는 전력도 직류다. 데이터센터의 서버들도 내부적으로는 직류를 사용한다. 심지어 장거리 해저 케이블 송전에는 직류가 교류보다 효율적이라는 사실이 재조명되면서, 고압직류송전(HVDC) 기술이 유럽과 아시아의 광역 전력망에 적극 도입되고 있다.


결국 에디슨과 테슬라의 싸움은 승자와 패자를 가른 것이 아니었다. 기술의 특성에 따라 각자의 영역을 찾아가는 긴 과정이었다. 교류는 발전소에서 가정까지의 장거리 배전에, 직류는 배터리 충전과 반도체 구동과 재생에너지 연계에 각자의 역할을 맡았다. 두 방식은 오늘날 전력 변환 장치(컨버터, 인버터)를 통해 끊임없이 서로를 넘나들며 공존한다. 갈등이 기술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물리적 현실과 쓰임새가 기술의 자리를 정한다는 것—전류 전쟁이 남긴 가장 조용한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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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비행기 — '새처럼 날 수 없다'는 과학자들의 선언


라이트 형제가 1903년 키티호크에서 첫 비행에 성공하기 불과 몇 년 전, 스미스소니언 연구소 소장이자 당대 최고의 물리학자 중 하나였던 사이먼 뉴컴(Simon Newcomb)은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공기보다 무거운 기계가 동력으로 비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무지한 대중의 말이 아니라, 수학적 계산에 근거한 과학자의 선언이었다. 뉴욕 타임스도 1903년 10월, 라이트 형제의 실험을 비웃는 기사를 실었다. 비행기가 실현되려면 "100만에서 1000만 년이 걸릴 것"이라고.


그로부터 67일 후, 라이트 형제는 12초 동안 37미터를 날았다.


기술에 대한 저항은 폭력적인 형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적 권위에 의한 묵살, 기성 과학의 패러다임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불가능'으로 분류하는 행위도 기술의 발전을 지연시킨 저항의 한 형태였다. 비행기의 역사는, 때로는 전문가의 단정이 가장 강력한 장애물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비행기가 상용화된 이후에도 저항은 계속되었다. 항공 여행이 일반화되던 초기, 많은 국가들은 자국 영공 통과를 거부하거나 엄격히 제한했다. 철도 회사들은 항공 노선을 적극적으로 방해했다. 그러나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거치며 비행기는 군사적 필수재가 되었고, 그 이후 민간 항공의 시대가 열렸다. 기술을 막으려는 이해관계는, 종종 더 큰 역사적 사건 앞에서 무력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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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인터넷 — '범죄자들의 도구'에서 문명의 기반으로, 그리고 산업 생태계의 대격변


1990년대 초반, 인터넷이 일반 대중에게 개방되었을 때, 거대 미디어와 정부는 새로운 공포를 부추겼다. "인터넷은 아동 포르노와 마약 거래의 온상이다", "익명성은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사이버 공간은 규제 불가능한 무법지대다." 실제로 1996년 미국에서 통과된 『통신품위법(Communications Decency Act)』은 인터넷상의 '불건전한 콘텐츠'를 전면 규제하려 했다. 대법원은 1997년 이 법의 핵심 조항을 위헌으로 판결했지만, 인터넷에 재갈을 물리려는 시도가 조기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그러나 인터넷은 그 어떤 저항도 비켜가며 산업의 지형을 통째로 바꾸어 놓았다. 가장 극적인 변화는 유통과 미디어에서 일어났다. 서점들은 아마존을 조롱했다. "인쇄된 책의 질감을 디지털이 대체할 수 없다"고. 그 서점들 중 상당수는 지금 존재하지 않는다. 보더스(Borders)는 2011년 파산했고, 반스앤노블(Barnes & Noble)은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수십 년째 구조조정 중이다. 블록버스터는 넷플릭스의 인수 제안을 웃으며 돌려보냈고, 2010년 파산했다. 전 세계 수만 개의 비디오 대여점이 사라진 자리에, 스트리밍 플랫폼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산업이 들어섰다.


음반 업계는 냅스터(Napster)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며 디지털 음악의 확산을 막으려 했지만, 결국 냅스터를 죽인 것은 법원이 아니라 애플의 아이튠즈였다. 기술의 흐름을 막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전환하는 것이 생존의 길이었다. 이후 스포티파이가 등장하면서 음악 소유의 개념 자체가 '구독'으로 대체되었다. 신문사와 방송사는 광고 수익의 절반 이상을 구글과 페이스북에 빼앗겼다. 전통 광고 대행사는 쪼그라들었고, 그 자리를 퍼포먼스 마케팅 에이전시와 데이터 분석 기업이 채웠다.


인터넷이 만들어낸 새로운 직업과 산업의 목록은 길다. 검색엔진 최적화(SEO) 전문가, 디지털 마케터, 웹 개발자, 데이터베이스 관리자, 사이버 보안 전문가—이 직업들은 1990년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전자상거래의 폭발적 성장은 물류 산업을 완전히 재편했다. 페덱스와 UPS는 물론, 쿠팡·배민과 같은 플랫폼 기반 배송 기업이 탄생했고, 라스트마일(Last-mile) 배송 전문가라는 직군이 새로 생겨났다. 온라인 교육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이러닝 콘텐츠 설계자'와 '온라인 강사'가 독립적인 직업군으로 자리를 잡았다. 위키피디아는 수천 명의 전문 편집자 없이도 운영되는 집단 지성의 모델을 만들어냈고, 오픈소스 개발자 커뮤니티는 소프트웨어 산업의 생산 방식 자체를 바꾸었다.


여행 산업의 변화는 특히 상징적이다. 전국에 촘촘히 깔려 있던 오프라인 여행사 대부분이 사라지거나 축소된 자리에, 익스피디아·카약·트립어드바이저 같은 여행 플랫폼이 들어섰다. 그러나 동시에 여행 블로거, 여행 유튜버, 현지 투어 설계자 같은 새로운 직업이 탄생했다. 직업의 소멸이 아니라 직업의 형태와 무대가 바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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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스마트폰 — 통신사의 저항과 플랫폼 권력의 탄생, 그리고 일상 산업의 해체와 재구성


2007년 아이폰이 등장했을 때, 노키아와 블랙베리는 "키보드 없는 스마트폰은 기업 고객에게 통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노키아는 당시 세계 최대 휴대폰 제조사였고, 자체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블랙베리는 기업 보안 메일의 표준이었다. 두 회사 모두 불과 5년 만에 시장에서 사실상 사라졌다. 이것이 스마트폰이 시작한 변화의 첫 번째 희생자들이었다.


이동통신사들의 저항도 치열했다. 스마트폰이 데이터 소비를 폭발적으로 늘리면서, 통신사들은 '망 중립성(Net Neutrality)' 논쟁의 중심에 섰다. 특정 플랫폼을 차단하거나 속도를 제한하여 자신들이 유리한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이 전쟁은 아직도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스마트폰의 진짜 혁명은 '앱 경제(App Economy)'의 탄생이었다. 2008년 애플의 앱스토어가 열리면서, 개인 개발자 한 명이 전 세계 수억 명의 스마트폰에 서비스를 올릴 수 있게 되었다. 이 구조가 기존 산업을 하나씩 해체하기 시작했다.


택시 산업이 먼저 흔들렸다. 우버와 리프트는 GPS, 결제, 평점 시스템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으면서 수십 년간 면허와 카르텔로 보호받던 택시 산업을 뿌리째 흔들었다. 전 세계 택시 조합이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였고, 일부 도시는 우버를 금지했다. 한국에서도 카카오택시와 타다를 둘러싼 논쟁이 수년간 이어졌고, 타다는 결국 규제에 의해 기존 서비스를 중단했다. 기술은 가능했지만, 사회적 합의와 제도가 따라가지 못했던 사례다. 그러나 결국 카카오택시는 정착했고, 대리운전·퀵서비스·화물 중개까지 플랫폼 기반 이동 서비스가 일상이 되었다. '플랫폼 드라이버'라는 직업이 기존 택시 기사와 공존하는 새로운 생태계가 만들어졌다.


숙박 산업도 마찬가지였다. 에어비앤비는 호텔이 아닌 일반인의 남는 방을 상품으로 만들었다. 호텔 체인들은 처음에 이를 무시했고, 다음에는 법적으로 막으려 했다. 그러나 에어비앤비는 현재 전 세계 220개국 이상에서 운영되며, 수백만 명의 '호스트'라는 새로운 직업군을 탄생시켰다. 인테리어 스타일리스트, 숙소 사진작가, 게스트 관리 대행 서비스 같은 파생 직업들도 함께 생겨났다.


금융 산업은 핀테크(FinTech)라는 이름으로 스마트폰 위에서 재구성되었다. 은행 창구를 찾지 않아도 대출, 송금, 투자, 보험이 가능해졌다. 카카오뱅크와 토스는 영업점 한 개 없이 수천만 명의 고객을 확보했다. 전통 은행의 창구 직원 수는 줄었지만, 앱 개발자, 리스크 데이터 분석가, 금융 UX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금융 산업 안에서 새롭게 부상했다.


가장 눈에 띄는 새 직업의 탄생은 콘텐츠 창작 분야에서 일어났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이 스마트폰과 결합하면서 '크리에이터 이코노미'가 형성되었다. 1인 미디어 크리에이터, 인플루언서, 라이브 커머스 진행자, 숏폼 영상 편집자—이 직업들은 불과 10년 전만 해도 직업 분류표에 존재하지 않았다. 한국에서만 수십만 명이 유튜브를 주 수입원으로 삼고 있으며, MCN(멀티채널네트워크) 산업이라는 새로운 엔터테인먼트 생태계가 기존 방송사와 경쟁하고 있다.


음식 배달 산업의 변화도 스마트폰이 만든 대표적 사례다. 배달의민족, 쿠팡이츠, 요기요가 등장하기 전, 배달은 자장면과 치킨의 전유물이었다. 지금은 미슐랭 레스토랑도 배달 앱에 입점한다. 음식점 운영자에게 배달 앱 마케팅은 필수 역량이 되었고, 배달 라이더는 독립 직업으로 자리를 잡았으며, 클라우드 키친(배달 전용 주방)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외식업 모델이 탄생했다.


스마트폰은 단순히 전화기를 대체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의 손에 카메라, 은행, 지도, 방송국, 쇼핑몰, 병원 예약 창구를 동시에 쥐여준 사건이었다. 그 결과 탄생한 산업과 직업의 목록은, 스마트폰 등장 이전에는 어떤 미래학자도 온전히 예측하지 못했다. 이것이 기술 변곡점의 본질이다—그 충격의 범위는 항상 예상을 초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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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AI — 새 역사의 첫 페이지, 혹은 마지막 변곡점


이제 AI가 그 계보의 끝자락에, 혹은 새로운 계보의 첫 페이지에 등장했다. 앞선 발명들과 AI 사이에는 중요한 공통점과 함께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


공통점은 분명하다. 활자가 지식의 복제 비용을 낮춘 것처럼, AI는 지적 노동의 비용을 낮추고 있다. 증기기관이 물리적 노동을 대체한 것처럼, AI는 인지적 노동의 일부를 대신하기 시작했다. 비행기가 거리를 압축한 것처럼, AI는 전문성과 비전문성 사이의 거리를 압축하고 있다. 그리고 기득권의 저항도 어김없이 시작되었다. 할리우드 작가 조합과 배우 조합은 2023년 AI에 의한 창작 노동 대체를 핵심 의제로 전면 파업에 돌입했다. 의사와 변호사 단체는 AI 진단·법률 서비스의 '무면허 의료행위·법률행위' 여부를 따지기 시작했다. 일부 국가는 AI 개발 자체를 6개월간 중단하자는 선언문을 내기도 했다.


의사, 변호사, 교사, 작가, 엔지니어의 영역으로 AI가 걸어 들어오고 있다. 그러나 이것을 '침범'이나 '대체'의 언어로 읽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AI는 의사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가 놓칠 수 있는 미세한 영상 패턴을 짚어내고, 방대한 임상 데이터를 근거로 더 정확한 진단을 보조한다. 변호사를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수천 페이지의 판례를 수초 만에 검토하여 변호사가 본질적인 법리 해석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 교사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 개개인의 학습 속도와 취약점을 분석하여 교사가 더 세밀하게 가르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작가의 창의성을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초고의 구조를 다듬고 표현의 선택지를 넓혀 작가 자신의 목소리를 더 선명하게 벼리는 데 쓰인다.


이 관점에서 보면 AI는 이전의 기술들과 다른 방식이기는 하지만, 그 본질적인 역할은 오히려 같은 계보 위에 있다. 증기기관이 직공의 손이 아닌 직공의 창의성을 해방시켰듯, 전기가 야간 노동을 가능하게 하여 인간의 생산성 자체를 확장했듯, AI는 전문가의 판단력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 판단이 닿을 수 있는 범위와 깊이를 한 단계 끌어올린다. 인류가 매 변곡점마다 기술을 통해 해온 일—더 잘하기 위해 도구를 쓰는 것—을 AI는 지식 노동의 영역에서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 활자도, 증기기관도, 자동차도, 인터넷도 스스로 학습하지 않았다. 그것들은 도구였다. 인간이 조작하지 않으면 멈추는, 철저히 수동적인 존재들이었다. AI는 다르다. AI는 데이터를 스스로 학습하고, 패턴을 추출하며, 새로운 문맥에서 그것을 응용한다. 더 나아가 AI는 AI 자신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자동화가 아니라 일종의 '판단의 외주화'이며, 나아가 '지적 주체의 확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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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산업적 함의 — 레드 플래그를 들 것인가, 속도를 맞출 것인가


역사의 교훈을 산업적 관점에서 정리하면, 몇 가지 명확한 패턴이 드러난다.


첫째, 기술을 막는 규제는 혁신을 이전시킬 뿐이다. 영국이 레드 플래그 법으로 자동차를 막는 동안, 독일이 자동차 산업의 패권을 가져갔다. 기술 자체는 막히지 않는다. 다만 그 기술이 어느 나라, 어느 기업, 어느 사람의 손에서 성숙하느냐가 달라질 뿐이다.


둘째, 저항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러다이트의 저항이 노동법을 만들었고, AI 파업이 창작자 권리 보호 협약을 만들어내고 있다. 기술의 속도와 사회의 적응 속도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것이 바람직한 저항의 역할이다. 문제는 그 저항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 특정 기득권의 보호를 위한 것인지를 구별하는 것이다.


셋째, 플랫폼을 선점하는 자가 생태계를 지배한다. 인터넷 시대에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이 그랬던 것처럼, AI 시대에는 모델을 소유한 자, 데이터를 보유한 자, 그리고 API 생태계를 구축한 자가 경제적 주도권을 가져갈 것이다. 기업과 국가 모두 이 관점에서 AI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넷째, 직업의 소멸이 아니라 직업의 변환이 일어난다. 자동화된 직조기는 직공을 없앤 것이 아니라 섬유 산업 전체를 키워 더 많은 직업을 만들어냈다. 인터넷은 여행사를 줄였지만 콘텐츠 크리에이터, UX 디자이너, 사이버 보안 전문가라는 직업군을 새로 탄생시켰다. AI도 같은 방식으로 작동할 것이다. 다만 그 새로운 직업의 스펙트럼은 'AI 개발자'나 '데이터 과학자'처럼 기술 자체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기존 직업이 AI와 결합하여 한 단계 진화하는 경우를 먼저 생각해볼 수 있다. 의사는 AI 진단 보조 도구를 해석하고 환자에게 설명하는 'AI 임상 코디네이터'의 역할을 함께 수행하게 되고, 교사는 학생별 AI 학습 분석 데이터를 읽고 맞춤형 커리큘럼을 설계하는 '학습 설계자'로 역할이 확장된다. 건축가는 AI가 생성한 수백 가지 구조 시뮬레이션을 심미적·윤리적 기준으로 걸러내는 '공간 큐레이터'가 되고, 기자는 AI가 수집한 데이터를 맥락과 서사로 엮는 '내러티브 저널리스트'로 전문성이 깊어진다.


완전히 새로운 직업의 탄생도 가능하다. AI가 생성한 콘텐츠의 사실 여부와 편향을 검증하는 'AI 팩트체커', 기업의 AI 시스템이 윤리 기준에 부합하는지를 감사하는 'AI 윤리 감사관', 노인이나 장애인이 AI 도구를 원활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AI 접근성 코치', 법정에서 AI 알고리즘의 판단 근거를 인간의 언어로 설명하는 'AI 법정 통역사'—이런 직업들은 불과 5년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았거나, 이름조차 없었다. 농업 사회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자'라는 직업을 상상할 수 없었던 것처럼, 지금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직업들이 AI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지형 위에서 자라날 것이다.


핵심은 그 전환의 방향이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인간의 고유한 역량—판단, 공감, 윤리적 해석, 창의적 맥락화—을 더욱 필요로 하는 쪽으로 움직인다는 점이다. AI가 반복과 처리를 담당할수록, 인간에게 남는 것은 더 고차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능력이다. 그 능력을 키우는 교육과 훈련 시스템을 얼마나 빠르게 갖추느냐가, AI 시대 각 사회의 경쟁력을 가르는 진짜 변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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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한국 사회에의 적용 — 우리는 지금 어느 지점에 서 있는가


한국은 기술 변곡점에 대한 독특한 경험을 가진 나라다. 1960년대 이후 압축 성장의 과정에서, 한국은 농업 사회에서 산업 사회를, 산업 사회에서 디지털 사회를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통과했다. 인터넷 보급률, 스마트폰 보급률, 반도체 생산 능력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달성한 한국은, 표면적으로 AI 시대에도 유리한 출발선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면밀히 들여다보면 한국 사회는 지금 세 개의 긴장 위에 서 있다.


첫 번째 긴장: 인프라 강국과 소프트웨어 약국의 괴리. 한국은 반도체를 세계에서 가장 잘 만드는 나라 중 하나다. 그러나 AI를 작동시키는 거대 언어 모델(LLM)의 기술력에서는 미국, 중국과의 격차가 있다. 삼성과 SK하이닉스가 AI 칩의 핵심 메모리를 공급하지만, 그 칩 위에서 돌아가는 모델은 OpenAI와 Anthropic, 그리고 중국의 딥시크가 만든다. 하드웨어 공급자와 소프트웨어 주도자 사이의 수익 구조는 철저히 비대칭적이다. 인터넷 시대에 세계 최고 속도의 인프라를 깔았지만, 구글과 아마존과 넷플릭스는 미국에서 탄생했다. 그 반성이 AI 시대에는 얼마나 반영되고 있는가.


두 번째 긴장: 빠른 기술 수용과 느린 제도 정비. 한국은 새로운 기술을 소비하는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나라다. 그러나 그것을 규율하는 제도의 속도는 항상 지체되어 왔다. 카카오 플랫폼이 금융, 모빌리티, 유통을 장악하는 동안 공정거래와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논의는 뒤를 쫓아갔다. AI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딥페이크 성범죄, AI 생성 허위 정보, 저작권 침해—이미 사회 문제가 된 영역에서 법과 제도는 여전히 따라가는 중이다. 레드 플래그 법의 교훈은 과도한 규제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지만, 규제의 공백이 어떤 피해를 낳는지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세 번째 긴장: 효율성 추구와 일자리 불안의 충돌. 한국의 제조업과 서비스업은 AI와 자동화의 직접적인 영향권 안에 있다. 콜센터, 물류센터, 번역, 회계, 법무, 의료 보조—AI가 이미 부분적으로 대체하기 시작한 영역들이다. 출산율 세계 최저, 고령화 속도 세계 최상위라는 인구 구조 속에서 AI는 노동력 부족을 보완하는 해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청년 세대의 일자리 진입을 막는 장벽이 될 수도 있다. 이 모순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아직 형성 중이다.


한국이 AI 시대에 선택해야 할 방향은 무엇인가. 역사는 단순한 답을 제시한다. 독일이 자동차 산업의 주도권을 가져갈 수 있었던 것은 영국의 레드 플래그 법 때문만이 아니라, 독일이 기계 공학과 엔지니어링 인재를 체계적으로 육성해왔기 때문이다. 미국이 인터넷 혁명을 이끈 것은 실리콘밸리의 창업 생태계와 위험을 감수하는 자본 문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기술의 흐름을 막는 것도, 무비판적으로 따르는 것도 정답이 아니다. 그 기술의 가치를 인간화하고, 그 혜택을 가능한 한 넓게 분배하며, 그 위험에 대한 제도적 안전망을 갖추는 것—그것이 변곡점을 슬기롭게 통과한 사회들의 공통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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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 절벽 앞에서


활자 이후 인류는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생각했다. 전기 이후 인류는 더 오래 깨어 있었고 더 많은 것을 만들어냈다. 자동차 이후 인류는 더 멀리 이동하고 더 넓은 세계와 연결되었다. 인터넷 이후 인류는 전에 없이 넓게 연결되었다. 그렇다면 AI 이후 인류는 무엇을 더 할 수 있게 될까. 아마도 더 깊이 질문하게 될 것이다. 단순 검색과 반복 계산을 AI에게 넘기고 난 자리에,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창의와 윤리와 공감의 영역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레드 플래그를 들고 자동차 앞에 서 있던 사람들을 지금의 우리는 비웃는다. 그러나 그들도 나름의 논리가 있었다. 공공 안전, 기존 산업의 보호, 사회 질서의 유지—모두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다만 그 논리가 새로운 가능성의 싹을 짓밟는 데 동원되었을 때, 역사는 그들을 향해 냉정한 판결을 내렸다.


AI 앞에 서 있는 지금의 우리는, 우리 자신이 또 다른 레드 플래그를 들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동시에, 기술에 대한 맹목적 낙관이 얼마나 많은 러다이트들을 단두대로 보냈는지도 기억해야 한다. 변곡점은 항상 불안과 함께 왔다. 그리고 항상 그 너머엔 새로운 지평이 있었다.


AI도 그 긴 계보의 일부다. 다만 이번엔 우리가 조금 더 현명하게 그 절벽을 올라야 한다. 역사가 우리에게 준 가장 소중한 교훈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기술을 다루는 인간의 선택이 결국 문명의 방향을 결정한다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 선택의 무게를 지금 우리 세대가 지고 있다.


copyright 한덕전


#Ai #산업발전 #변곡점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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