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때 싫어했던 방학 숙제가 있었는가?
나는 일기가 싫었다.
방학은 좋았다.
매일 늦잠 자도 되니까.
느지막히 일어나 반쯤 뜬 눈으로 만화영화를 보곤 했다.
슬프게도 방학은 매번 숙제와 함께 왔다.
가장 힘든 숙젠 일기였다.
숙제를 방학 마지막 주에 몰아하곤 했는데, 일기에 도무지 쓸 말이 없었다.
과거 날씨를 찾아내는 과정도 성가셨다.
당시 어린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도대체 일기를 왜 쓰라고 하는 거야?”
중학교에 입학했다.
방학 숙제로부터 해방됐다.
더 이상 일기를 쓸 필요가 없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선,
‘일기’라는 개념조차 잊었다.
수능 준비가 인생 하나뿐인 목표였다.
대학생이 되었다.
일기를 쓰는 게 좋다는 얘기는 가끔 들었다.
하지만 일기 쓰는 건 너무 유치하다 생각했다.
대학 졸업 1년을 앞두고 군인이 되었다.
대학생 때완 완전 다른 대우를 받았다.
명령을 따라야했다.
실수하면 혼이 났다.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스트레슨 쌓여갔다.
동기들도 힘들긴 마찬가지였다.
그들에게 하소연 할 수 없었다.
후임이나 선임에겐 더더욱.
머릿속이 복잡했다.
저녁에 책상에 앉아 노트를 펼쳤다.
감정과 생각을 솔직하게 적어갔다.
머릿 속 압력이 손끝으로 분출됐다.
놀랍게도 마음이 한 결 편해졌다.
불편했던 감정이 자연스레 정리됐다.
복잡했던 상황이 명쾌하게 이해됐다.
그렇게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새로 만나는 사람 열에 아홉은 내가 일기를 쓴다면 놀란다.
성인 남자가 일기 쓴다는 사실이 생소히 느껴지나 보다.
그럼에도 아랑곳 않고 매일 일기를 쓰고 있다.
습관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종종 감정이 동요하기 때문이다.
그 때마다 일기를 쓰면 마음이 편해진다.
일기장은 나만의 대나무숲이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