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애와 애향심에 대한 고찰
가난한 부모의 자식은 열심히 공부할 필요가 없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부모의 경제 능력이 자식의 서울집 마련에 도움 줄 수 없는 수준이라면 굳이 그 자식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서울로 대학을 가거나 취업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나는 많은 20대들이 서울에 대한 막연한 로망을 갖고 올라와 그들의 젊음을 착취당하고 있다고 말한다.
지방에 거주하는 고등학생이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을 희망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원하는 학교에 합격했다는 기쁨도 잠시, 현실적으로 당장 찾아오는 문제는 바로 "돈"이다. 서울의 작은 고시원 가격조차 한 달에 50만 원을 넘은 게 이미 오래전 이야기다. 학자금 대출과 알바로 대학교 졸업을 한다고 해도 서울로 취업을 하게 되면 필요한 비용은 갈수록 더 커지게 된다. 돈을 벌수록 눈도 높아지고 품위 유지비도 많이 드는데 월급은 여전히 서울에 집을 얻기에 충분하지 않다. 불안감 때문에 직장인도 자기계발을 멈출 수 없는데 이런 비용도 만만치 않다. 결혼까지 한다고 생각해 보자. 회사는 여전히 서울인데, 집은 서울을 벗어나 회사에서 점점 멀어지고 출퇴근에 하루 적게는 2시간, 많게는 4시간을 쓸 수도 있다. 직장생활 10년 해도 집 사긴 어렵고, 빛은 점점 늘어나고, 아이가 생겨서 또 교육시킬 생각 하면 덜컥 겁부터 난다. 서울 생활에 막연한 로망을 가지고 있는 지방의 학생들에게는 조금 막막한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인가? 답은 '자기애'와 '애향심'에 있다. 내가 캐나다 가서 직접 보고 들은 사례 하나를 이야기하겠다.
한 번은 내가 살던 캐나다 동부 퀘벡주의 몬트리올, 그곳에서도 차로 10시간 이상 떨어진 가스페라는 한적한 시골마을로 출장을 간 적이 있다. 한국에는 남쪽 끝에 해남 땅끝마을이 있듯이 캐나다 퀘벡 사람들에게는 동쪽의 가스페가 그런 땅끝마을이다. 출장 중 현지 풍력발전소에 견학을 갔을 때 가이드를 맡았던 발전소의 엔지니어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당시 그 친구 나이가 서른 중반이었다. 캐나다의 퀘벡주는 원래 프랑스어를 쓰는 지역인데 그 친구 영어실력은 이런 시골마을에선 드물정도로 출중했다. 나는 이 친구의 고향이 퀘벡일까 궁금해서 질문을 하다가 그 친구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조금 듣게 되었다. 그 친구는 이곳 가스페에서 나고 자랐지만 캐나다의 완전 반대쪽 밴쿠버에 가서 풍력발전과 관련된 전공으로 대학교 공부를 하고 다시 이곳 가스페로 돌아와 현재 다니는 풍력발전소에 취직을 했다고 한다. 캐나다의 대표 도시중 한 곳인 밴쿠버에서 더 좋은 기회가 많았을 텐데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묻자, 자신은 자기가 나고 자란 이곳 가스페를 너무 사랑한다고 했다. 이곳에서 자기 능력을 펼칠 수 있는 일이 있어 너무 보람 있고, 스스로가 자랑스럽다고 했다.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도 모두 이에 있으니 삶에 꽤 커다란 만족감을 느끼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덧붙였다. 내 꿈을 위해 한국에 가족과 친구들을 남겨두고 떠나온 나에게는 그의 대답이 상당히 큰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이후로도 비슷한 사례의 친구들을 자주 만났다. 몬트리올에서 만난 바이링궐(두 가지 이상의 언어를 모국어처럼 사용하는 사람) 토박이들 대부분이 캐나다의 밴쿠버, 토론토 혹은 미국에서 유학 경험이 있지만, 공부를 마친 뒤에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취직하고 생활하는 경우가 많았다. 서울을 동경하는 문화가 만연하고 실제로도 고임금의 일자리가 서울에 밀집한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서울에 대한 막연한 환상은 깨버리고 조금은 현실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10년 만에 돌아온 한국은 다양한 "여행"의 방법이 보편화되면서 예전과 조금은 달라졌지만 여전히 이미 유명해져 버린 관광지를 답습하고 복제하는데 지나지 않았다.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일명 "땡"리단 길들은 잠깐 상권을 키워줄 수 있지만 지역색을 흐리고 장기적으로는 건물주나 자본가들만 배만 불리고 정작 지역의 원주민들은 상권을 이탈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미국이나 캐나다를 로드트립 하면서 소도시부터 대도시까지 여행하다 보면 자기 지역만의 특색을 잘 살려 운영되는 관광지가 많은데, 그런 곳 일 수록 지역 작가라던지 지역 특산품을 이용해서 스토리 텔링을 잘하는 곳이 많다. 한국도 공무원들의 성과내기식, 생색내기 개발이 아니라 지역의 역사와 특성을 살리고 지역주민과 상생하는 도시계획을 해야 한다. 밴쿠버 여행할 때 들렸던 <그랜빌 아일랜드>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아래 링크에서 확인 가능)
어린 친구들에게는 먼저 애향심을 가지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들이 어른 세대로부터 겪은 경험들이 그럴만한 환경을 만들어주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주변 사람에게서 영감을 받기 어렵다면 책이나 미디어를 통해 간접경험 하는 수밖에 없다. 자신에게 맞는 속도대로 여행하고 많은 경험을 해보기를 추천하고 싶다. 경험이 많으면 그만큼 식견도 높아지고 자기의 호불호를 조금 더 디테일하게 정리할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취미도 자연스레 늘어나게 되고 경험은 또 그만큼 늘어나게 된다. 그렇게 꾸준히 10년 이상하게 되면 취미라도 전문가가 되고 본격적인 경제생활을 할 때쯤에는 남들에게 휘둘리지 않는 주관을 가질 수 있다. 우선은 그렇게 자기를 찾아갔으면 좋겠다. 사실은 나도 내가 이런 말뿐이 할 수 없는 어른이라는 게 매우 슬프다.
물질보다 경험에 투자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다음 편에서 또 이어 이야기하고자 한다.
* 메인사진으로 걸린 부녀사진은 2012년 필리핀의 카모테스라는 섬을 여행할 때 찍은 사진이다. 작은 시골마을의 항구에 막 도착한 나에게 오토바이 타고 지나가던 현지인이 우리 섬에 온 걸 환영한다며 불쑥 말을 걸었다. 자기 이름과 딸을 소개하며 방긋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사진 한 장 찍을 수 있냐고 물었다. 성공이나 행복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멀리 있지도, 추상적이지도 않다. 이 부녀와의 짧은 대화만으로도 필리핀 세부 지역의 작은 섬마을 여행은 나에게 가장 행복했던 여행으로 기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