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내 꿈은

by 유재은


저는 꿈이 없어요.


아이들의 이런 말을 들으면 가슴이 쿵 내려앉는다. 저 작은 가슴에 어떤 사연이 숨어 있을까 하는 안쓰러움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만나 본 대부분의 아이들은 하고 싶은 게 무척 많다. 순간마다 느끼는 감정에 따라 앞뒤 재지 않고 마음껏 꿈꿀 수 있는 능력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꿈이 바뀌기도 한다.


꿈이 없다는 아이들과 이야기해 보면 한 번도 꿈꾸지 않은 경우는 거의 없고, 있었는데 이러저러한 이유로 사라져 버린 경우가 대다수이다. 유치원, 혹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는 너무 많은 꿈을 가지기도 했던 아이들이 해가 갈수록 늘어가는 학습량과 성적이라는 현실의 벽에서 조금씩 무너진 것이다. 내가 가르치던 학생 중에 버스를 무척 좋아해서 버스 이야기만 하면 눈이 초롱초롱해지는 8살 아이가 있었다. 버스기사가 되는 게 꿈이었지만 그것을 글로 썼다가 엄마에게 혼난 경험으로 의기소침해졌던 그 아이는 지금 어떤 꿈을 꾸며 살아가고 있을까. 마음대로 꿈꿀 수 없는 인생을 일찍 알아버린 아이들에게 나는 앞으로도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게 꿈이라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라고 이야기해 줄 수 있을까.

초등학교 때 나의 꿈은 다.행.히. 그 시절 부모들에게 인기 많았던 직업 중 하나인 선생님이었다. 물론 부모님에게 자랑스러운 딸이 되기 위함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내가 나보다 어린아이들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때는 미취학 아동들을 위한 일일 학습지가 있었다. 한글, 수학 등 매일 배달된 학습지를 풀며 입학 전 기초를 다지는 것으로 아마 많은 아이들이 하지 않았을까 한다. 그때 나는 동네 몇몇 아이들을 데리고 꼬마 선생님 역할을 했다.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얼마나 지속되었는지는 잊혀졌지만, 집에서는 잘하지 않는데 나와하는 것은 좋아한다며 부탁하던 동네 아주머니들의 말씀은 어렴풋하게 기억난다. 이렇게 해서 나는 한동안 내가 이다음에 커서 선생님이 될 것 같다고 하는 말에 어깨가 으쓱하여 어릴 때 하는 학교 놀이를 동네 꼬마들을 가르치며 했다.

친척과 부모님 지인 분들의 자녀 중에서 내가 가장 나이가 많았다. 그래서 명절이나 지인 모임이 있을 때면 어린 동생들 봐주는 것은 언제나 내 몫이었다. 나와 놀면 아이들이 시끄럽게 뛰어다니거나 서로 싸우지도 않고 한 방 안에서 재미있게 노니 어른들은 칭찬하며 좋아했고, 네 말을 더 잘 들으니 좀 가르쳐 주라는 말속에서 나는 어린 동생들의 작은 선생님 놀이를 중학생이 되도록 이어갔다.

그렇게 나는 다양한 주제로 아이들을 집중시키며 이끌어 가는 묘미 속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내게 소중함을 깨달았다. 서로 내 손을 잡고 내 옆에 앉으려는 아이들을 보며 순수한 아이들 곁에 머무는 삶을 꿈꾸게 된 것이다. 그 후 고등학생이 된 나는 시골 작은 학교의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과 서로의 따뜻함을 나누고 싶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고운 세상을 향한 아이들의 꿈의 길을 응원해 주고 싶었다.

지금 나는 방과후학교 논술 선생님을 시작으로 아이들과 함께 배우는 삶을 살고 있다. 생업이 마냥 버겁지 않을 수 있는 살아감에 감사하며 오늘도 환한 웃음으로 아이들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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