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차장의 #퍼실리테이션 적용기 1
워크숍이란 말은 뺍시다.
이게 무슨 소리지?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단계에서는 구성원들과 프로젝트의 취지와 목적에 공감하고 동의할 수 있도록 대화하고 논의하는 과정은 정말 중요하다. 시작이 좋아야 과정이 매끄럽고, 과정이 좋아야 좋은 결과도 기대할 수 있다. 혹 기대하는 결과를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고 이렇게 배운 경험은 조직의 자산이 된다.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만, 사실 시작은 반이 넘는다.
며칠에 걸쳐 고민하고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 때마다 메모하고, 모르는 것은 확인하고, 몇 번의 디자인을 수정하고 거기에 대한 피드백을 받아 또 고치고...... 그렇게 프로젝트의 시작을 위한 워크숍을 디자인했다.
무슨 의미인지는 알겠는데, 워크숍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제목에서 워크숍이라는 표현은 빼자는 말이다. 워크숍의 목적과 디자인에 대해서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워크숍이라는 말에 학을 떼는 사람들이 있단다. 참 맥 빠지는 순간이다.
퍼실리테이션을 처음 접한 게 6년 전이다. 그전에도 워크숍을 많이 했었지만, 그때는 사실 개념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퍼실리테이션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후에야 워크숍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아갔다. 배운 것을 적용해 보고 싶은 것은 당연한 마음이다. 적용하려면 먼저 사업부 책임자들에게 동의를 얻어야 했다. 그래서 배운 대로 해보려 제안을 하면 보통 이런 얘기들을 들었다.
김 차장, 나도 옛날에 해 봤는데 안 됩니다. 그냥 교육으로 하세요.
우리 직원들한테 묻지 말고, 그냥 잘 가르쳐 주세요.
그렇게 시간이 필요한가요? 그냥 한 시간으로 해 주세요.
그분들의 입장이 이해가 가기도 한다. 적게는 20년 이상의 직장생활 동안 워크숍이 효과적으로 잘 된 것을 본 적이 없는데, 어디서 5년 남짓 트레이닝을 했다는 차장 나부랭이가 불쑥 나타나서 워크숍을 하겠다니 흔쾌히 동의해줄 수 있겠는가? 그것도 평소 한 시간 정도의 교육이나 발표로 끝내 왔던 일들을 세네 시간이나 달라는 데 동의해 줄 리가 없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워크숍에 대한 회의에서 비롯된다.
워크숍에 대한 회의는 주로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은 "답정너"의 경험일 것이다. 이전에 한 임원께 들은 말이다.
워크숍이란 사실 정해져 있는 답을 직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시간을 배려해 주는 것이지요.
이런 경우 워크숍을 진행하는 사람은 정해진 답으로 참여자들을 열심히 유도한다. 원하지 않는 의견이 나오면 설득하거나 묵살한다. 그러면 참여자들은 그 자리를 주최한 조직이나 상급자의 의도를 곧 알아차린다. 사실 이런 일들이 만연한 조직에서는 직원들이 "정답"을 말하는데 이미 익숙하다.
숙련된 퍼실리테이터가 없는 경우에도 워크숍에 대한 회의는 충분히 생길 수 있다. 애초에 워크숍의 디자인을 잘못하거나, 다양한 의견을 말하도록 독려하지도 못하고, 잘 경청하지도 않으며, 수렴하는 기술이 없어 어설픈 결론을 냈을 수도 있다. 미숙한 퍼실리테이션으로 결국 참석자들은 속마음을 얘기하지 못했다. 결론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는 동의를 표했을 뿐 마음속으로는 동의하지 않는다. 주최자는 예의상 참석자들의 노고를 위로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시간만 버렸다는 후회뿐이다.
아, 맥 빠짐에 이어 곧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당장이라도 워크숍이 왜 필요한지, 워크숍을 하면 어떤 이점이 있는지 설명하고 싶었다. 과연 임원진에서는 이 프로젝트를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은 하고 있는지 따지고 싶었다. 하지만 이 회사에 온 지도 얼마 되지 않았기에 일단은 좀 더 들어보기로 했다. 임원진에 대한 전후 사정을 조금 더 듣고 나니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갔다. 김 상무님은 오히려 내가 제안한 방법을 실행할 수 있도록 제목을 바꾸고 시간을 줄여서 제안하자는 조정 의견을 주셨다.
참 다행이다. 상무님은 워크숍에 필요성에 대해서는 적어도 인정을 하니까. 하지만 조정안에 대해서도 걱정이 되기는 마찬가지다. 반쪽짜리 워크숍은 잘 되어도 반쪽짜리 결과만 얻을 것이다. 그러면 다시 워크숍에 대한 회의만 강해질 뿐이다. 이내 나의 머릿속에는 완전히 다른 방법으로 기회를 만들려는 생각들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내 생각은 확고하다. 현대 시대의 지식 근로자들이 모여 일을 하는 모든 조직에는 퍼실리테이터가 필요하다. 효과적인 협력과 집단 지성의 활용 없이 조직은 살아남기 힘들다. 협력을 돕는 사람들이 퍼실리테이터다. 그렇기 때문에 최고 책임자도, 중간 관리자도, 말단 직원도 때에 따라서는 퍼실리테이터가 되어야 한다.
퍼실리테이터, 퍼실리테이션이라는 용어는 어디를 가도 쉽게 들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회의 진행자 정도의 의미로 쓰이는 것 같다. 퍼실리테이션이 무엇인지, 퍼실리테이터의 역량과 가치가 무엇인지 잘 아는 곳도 드물고 퍼실리테이터가 활약하는 조직도 드물다. 여전히 많은 조직에 퍼실리테이션 교육과 전파가 필요한 이유이다.
나는 사내 트레이너이자 퍼실리테이터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새롭게 참여한 이 조직에 퍼실리테이션의 가치를 실현할 것이다. 그 여정을 차차 공유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