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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소영 Feb 24. 2023

한번 더, 마흔

올해 6월부터 대한민국이 젊어진다. 나이계산법이 '만 나이'로 통일되기 때문이다. 뉴스에서 처음 이 소식을 접했을 때 묘하게 설렜다. 제도의 효용성을 차치하고라도 왠지 모르게 '한, 두살'을 덤으로 얻은 거 같은 기분이 들어서다. 내 인생의 마흔을 한번 더 살 수 있다니. 생물학적으로 노화되는건 마찬가지인데도 심리적인 회춘 덕분에 한 해를 시작하는 발걸음이 경쾌했다.


마흔 문턱에 들어선 작년, 가장 아쉬웠던 게 무엇이었을까.  돌연 독서모임에 참여했던 일이 떠올랐다. 박학다식한 지식과 상식의 향연에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나 홀로 안절부절 못했던 기억. 나름 책을 꽤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수필만을 고집하는 편식독서탓에 감수성만 풍부할 뿐 이 나이에 제대로 아는게 하나 없었다. 그러고보니 나는 세상 물정 모르는 온실의 화초처럼 자랐다. 아직 부모님과 살고 있어 '나 홀로 사는 법'을 터득하지 못했고 월급도 내 스스로 관리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취업 성공에 필요한 학점과 점수 올리기에만 급급했지 실제 어른으로서 독립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마땅히 알아야할 생활살림법, 재테크, 부동산 등은 문외한이다. 이,삼십대를 거치면서 잠깐잠깐 관심을 두었다가도 이내 낯선 용어와 익숙하지 않은 내용에 슬그머니 뒷걸음치며 지금 당장 내 입에 달콤한 문화생활만 취해왔다.


나이를 먹으면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익숙함이다. 취향이라는 이름하에 나만의 스타일로 이미 자리잡은 개인양식은 자칫 스스로를 우물안의 개구리로 만들기 쉽다. 새로운 배경지식을 쌓기보다는 이미 쌓아놓은 배경지식을 활용해서 소화하기 용이한 정보들에만 눈길을 주는 탓이다. 제일 맛있는 맛은 내가 아는 맛이라는 말도 있다. 유례없는 정보의 홍수 시대속에서도 편협한 시각으로 정보를 취사선택하다보면 더 이상의 성장은 기대하기 힘들다. 내가 청춘에 하지 않아서 가장 후회하는 일을 바로 지금, 나의 두번째 스무살에 시작하기로 한다. 그것만으로도 마흔은 충분히 특별해질 것이다.


얼마전부터 '4주완성, 첫 돈 공부'라는 책을 읽고 있다. 저자는 나같은 초심자들도 이해하기 수월하도록 가장 기초부터 차근차근 풀어서 설명한다. 남들 다 읽는다는 재테크 분야의 베스트셀러는 애당초 기웃거리지 않았다. 괜히 있어보이는 척하느라 내 수준에 맞지도 않는 책을 골랐다가 중도 포기한적이 어디 한두번인가. 이번에 나의 선택은 옳았다. 쉽게 풀이해주니 술술 읽히고 재미도 난다. 책에서 배운 것을 토대로 은행에 가서 직접 상담도 받아본다. 은행에 가면 직원은 더할 나위없이 친절한데 정작 내가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야말로 '소 귀에 경 읽기'였는데 확실히 책을 통해 예습하고 나니 무엇을 물어봐야 하는지도 알겠고 무엇보다 은행원의 말이 '들린다'는 것이 신기했다.


마흔의 나는 물을 닮은 사람이면 좋겠다. 첫째, 담는 그릇에 따라 자신의 모습을 지혜롭게 바꾸는 물처럼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적응하며 항상 열린 마음으로 주위와 조화를 이루고 싶다. 둘째, 험난한 지형을 헤치며 바다를 향해 쉼없이 흘러가는 물처럼 미래지향적인 생활태도를 가지고 지속적인 자기개발에 힘쓰련다. 셋째, 최고의 쓰임, 최선의 사랑으로 인류에게 봉사하는 물처럼 항상 선한 비전을 세우고 올바른 방법으로 그것을 이루려는 원칙을 지키며 언제 어디서나 사랑의 씨앗을 나누고자 한다.


한번 더 찾아오는 마흔, 이것은 또 한번의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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