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활성화'와 '갈등 해소 방법'에 관해 이야기 나누다
[Prologue]
장난을 잘 치지 못하는 나는 아내처럼 해나와 낄낄깔깔 대화하지는 못한다. 그렇다고 해나를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내 스타일대로 진지한 이야기를 해나의 눈높이에 맞춰 풀어가 보기로 했다. 산책을 하면서, 버스에서 창밖을 보면서,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썰을 풀었다. 다행히 해나는 내 이야기 듣기를 매우 좋아했고 곧잘 끄덕끄덕한다.
헌데 많은 엄마, 아빠들이 아이와 장난치는 것은 잘해도 이렇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은 어려워하더라. 그래서 나는 어떤 상황에서, 어떤 주제들로, 어떻게 얘기를 풀어가는지 그때그때 정리해보려고 한다. 늘 즉석에서 이야기를 풀어왔던지라 무슨 얘기가 오가는지 나도 궁금하다.
저녁 6시가 가까워 오자 서쪽 하늘이 구름 뭉치들과 잘 어우러져 붉게 물들었다. 가는 길에는 금방 나올 수도 있겠다며 걱정을 했었는데, 폐장 시간이 되자 아내도 해나도 얼굴에 아쉬운 기색이 가득하다. 다음날 출근해야 하는 나에게 아내는 '내일 째'를 외치는 와중에 닭갈비의 고장 춘천에서 돼지갈비 집에 이르렀다. 고기를 시켜놓고 해나에게 툭 말을 건넨다.
"해나야, 레고랜드는 섬 위에 지어져 있어."
"섬이라구? 섬 아니야. 그럼 화산 있어?"
해나는 섬이 화산 폭발로 인해서 만들어진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구나. 몰랐었네.
"섬은 물에 둘러싸여 있어서 넓은 땅 하고 연결되지 않은 곳을 섬이라고 해. 그래서 강 가운데에도 섬이 있어. 처음 강이 만들어질 때 어떤 곳은 다른 곳보다 높아서 물이 그 위를 덮지 못하고 둘러싼 채로 흐른 거야. 그리고 모든 섬들이 다 화산섬은 아니야. 어떤 섬은 화산이 폭발하면서 만들어진 섬이고, 그냥 솟아오른 섬도 있어."
"..."
해나는 듣기를 잘하는 편이지만 반응은 별로 없다. 그리고 해나가 무어라 대꾸를 했는지도 정확히 기억은 안난다.
"근데, 레고랜드가 만들어진 섬 위에는 유적지가 있었대. 유적지가 뭔지 알아?"
"..."
"유적지는 옛날 사람들이 살았던 곳을 말하는 거야. 옛날 사람들이 살았던 곳에는 뭐가 있을 수 있을까?"
"뼈?"
해나의 뼈에 대한 강한 인상 내지는 집착은 2020년 6.25 기념 유해송환 장면을 TV로 보던 중에 생겨났다.
"응, 뼈도 있을 수 있는데 그건 무덤이 있었던 곳이고, 옛날 사람들이 살았던 집터나 사용했던 물건 같은 게 남아 있을 수 있어. 그런데 그게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흙에 덮이고 묻혀서 조심조심 파내야지 찾을 수 있어."
"..."
"그런데 이 지역 도지사, 도지사가 영어로 뭘까? 거.."
"거버너?"
학원에서 거버너(governor), 프레지던트(president) 등을 배워서 한창 외우고 있던 시점이었다.
"그래, 거버너가 유적지를 발굴하지 않고 여기에 레고랜드를 짓도록 했대. 왜 그랬을까?"
"자기가 여기서 놀고 싶어서?"
아놔
"ㅋㅋㅋ 그래, 그럴 수도 있겠다. 또 왜 그랬을까? 돈 하고 관련이 있어."
"자기가 돈을 벌고 싶어서?"
"그, 그렇지 돈을 벌고 싶어서. 그러면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을까?"
"사람들이 레고랜드 들어올 때 돈을 내고 입장권을 사잖아. 그래서 돈을 벌지."
"그래 맞아. 그런데 거버너는 여기 지역 사람들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라 자기가 직접 돈을 벌지는 않아. 그럼 누가 돈을 벌까?"
"..."
"그럼 여기 레고랜드가 생기면 누가 여기로 일하러 오겠어?"
"서울에 사는 사람들?"
아빠가 매일 거의 4시간을 출퇴근으로 보내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서울에 사는 사람들! 그럼 매일 회사 다녀올게 하고 2시간 걸려서 출근했다가 2시간 걸려서 퇴근하고 그래야겠네?"
"그럼 여기에 사는 사람들?"
"맞아. 여기에 레고랜드가 생기면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한테 일자리가 생기고, 그래서 돈을 벌 수 있게 되는 거야. 또 누가 돈을 벌게 될까?"
"..."
"우리는 다른 곳에 살지만 레고랜드에 들렀다가 여기에 있는 식당에 와서 밥을 먹고 있지? 이렇게 이 지역에서 장사하시는 분들도 돈을 벌 수 있어. 이런 걸 보고 경제가 활성화된다라고 하는 거야. 뭐가 활성화된다고?"
"경제?"
"해나야, 이거 어려운 얘긴데 혹시 재미없니? 해나는 이런 얘기 좋아해서 해주는 건데 재미없으면 그만할게."
"너---무 재밌어."
찐으로 재밌을 때 말을 늘어뜨리는 건, 어떤 유전자에서 비롯되는 걸까?
"좋아. 여기에 유적지가 있었는데 레고랜드를 세웠다고 했잖아. 그런데 사람들이 다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어떤 사람들은 레고랜드를 짓지 말고 유적지를 발굴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어."
"왜?"
"왜냐하면 유적지는 오랜 시간에 걸쳐서 만들어진 곳이기 때문에 한번 없애면 다시는 그런 곳을 만들어낼 수 없으니까. 잘 보존해서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지."
"아빠도 그렇게 생각하지?"
"아빠도 좀 그런 편이지."
"그래서 갈등이 생기게 되는 거야."
"갈등이 뭔데?"
"서로 생각이 달라서 불편한 사이가 되는 거야."
"거버너는 이런 갈등을 잘 해소해야 해. 그러려면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 저렇게 생각하는 사람들 얘기를 다 들어야 해. 그런데 결국은 어느 한쪽의 의견을 선택해야 할 텐데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
"어느 한쪽의 의견에 손을 들어주지만 다른 쪽 의견도 최대한 반영될 수 있도록 보완책을 마련해야 해."
"아, 한 번은 너 얘기 들어주고 다음에는 너 얘기 들어주는 거?"
"그렇다기보다는.. 해나야, 광화문에서 아빠 이전 회사 건물에 가면 바닥이 유리로 되어 있지? 그 아래에 뭐가 있지? 내려다 볼 수 있게 되어 있잖아"
"..."
"그 안에 집터가 있었어. 거기도 유적지가 많은 곳이라서 그렇게 최소한으로 유적지를 보존하는 것도 갈등을 해소하는 한 가지 방법이라고 할 수 있어."
"여기는 갈등이 해결됐어?"
쓰리다. 정곡을 찌르는 질문. 어쩌면 요즘 아이가 학교에서 고민스러워하는 부분일지도 모르겠다.
"글쎄, 잘 모르겠지만 아닌 것 같아. 유적지로 발굴되고 있는 곳은 하나도 없는 것 같고, 또 아직 사람들이 시위를 하고 있는 걸 보면..."
"시위가 뭔데?"
"응, 자기가 반대하는 내용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게 시위야."
"..."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슬쩍 물었다.
"해나야, 왜 레고랜드를 지었는지 한번 얘기해 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