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대 엄마의 얼굴에서 20대를 발견하다

갓난아이인 나를 바라보던 엄마의 표정

by 윤슬

며칠 전 친구와 함께 ‘론 뮤익’ 개인전을 보고 왔다. 사실 론 뮤익이라는 조각가를 잘 몰랐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본 론 뮤익의 조각 작품들은 인간 행위의 여러 순간을 마치 스냅사진처럼 절묘하게 포착하고 그것을 매우 정밀하게 묘사하고 있었다.




사춘기에 접어들어 이제 갓 초경을 했을 것 같은, 그래서 어딘지 좀 불안해 보이는 소녀의 팔에 오소소 하게 일어선 솜털부터,


닭과 한판 싸움이라도 할 듯 노려보고 있는 중년 사내의 발뒤꿈치 각질까지 마치 실제 인체처럼 묘사해 낸 솜씨가 경이로웠다.



그중 가장 나의 눈길과 마음을 잡아끈 것은 ‘쇼핑하는 여인’이라는 작품이었다. 방금 시장에서 장을 보고 온 듯 여인은 양손에 물건 봉지들을 들고 서있는데, 그녀의 품 안에는 아이가 안겨있다. 아이는 엄마에게 시선을 맞추고 뭔가를 구하듯 간절하게 올려다본다. 하지만 여인은 무표정하다. 아이와 눈을 맞추기는커녕 다른 곳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겨있다.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양손에 든 봉지 안에는 간단한 먹거리들이 들려 있다. 혹시 그녀는 이번 달 마지막 생활비로 이 먹거리들을 샀을까? 남편과 그녀 둘 다 실직했을까? 혹은 남편의 외도로 이혼을 생각하고 있을까? 큰아이가 사고를 쳤을까? 자신을 간절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아이를 외면할 정도로 그녀를 사로잡고 있는 고민은 무엇일까.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아이들을 키우며 이런 순간이 있었느냐고. 그녀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그럼, 당연하지. 매일 그랬고 지금도 그래.

이미 성인이 된 아이들이 아직도 그녀의 마음에 신산한 시간을 안겨주고 있나 보다.


어제는 본가에 엄마를 보러 다녀왔다. 난 요즘 엄마의 자서전을 쓰기 위해 틈틈이 전화로 구술을 받고 있는데 어제는 모처럼 직접 엄마를 만나서 이야기를 들었다. 어제의 이야기는 내가 태어나던 시점부터 시작됐다. 내가 물었다.


-내가 첫 아이인데, 첫 출산을 하고 기분이 어땠어요? 대개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엄청 감동하고 감격하던데…

-아이고, 난 모르겄더라. 그저 얼떨떨하고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겄고... 저게 진짜 내 속에서 나왔나... 그런 생각만 들더라.

-그래도 내가 태어나 기쁜 순간이 있었을 거 아니에요?

-태어나 며칠 후에 네가 까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올려다보며 방긋방긋 웃는데 그렇게 예쁘더라. 그때 진짜 기뻤지.


아아... 그 말을 하던 순간의 엄마의 주름지고 검버섯 가득한 얼굴에 떠오르던 표정을 앞으로 내내 잊지 못할 것 같다. 그 표정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그 순간 엄마는 첫 아이를 안고 눈을 맞추며 기뻐하던 20대 초보 엄마의 얼굴로 돌아가 있었다. 그동안 살면서 엄마의 얼굴에서 그토록 순전한 기쁨의 표정을 발견한 적이 있었던가.

그런 엄마의 표정을 발견한 나의 기분과 감정 역시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실 나와 엄마는 보통의 모녀 사이처럼 그다지 끈끈한 애정의 감정으로 엮여있지 않다. 그러니, 엄마의 자서전 쓰기 과정은 어쩌면 엄마와 나의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는 징검다리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