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보>

한 예인의 실존적 투쟁

by 윤슬

영화 <아마데우스> 이래, 천재 예술가와 그를 질투하는 평범한 예술가 사이의 갈등을 그린 영화나 소설 등의 작품들이 많았다. 일본 영화 <국보>는 이 기본 뼈대에 일본 사회 특유의 ‘순혈주의’ 문화를 가미해 갈등의 결을 조금 다르게 변주한 작품이다.

재일교포 3세인 이상일 감독은 그동안 자신이 마주했을 혈통의 벽과 차별의 정서를, 가부키 명문가라는 폐쇄적 공간 안에 투영하여 섬세한 감각으로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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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키 명문가의 2대손인 하나이 한지로는 가부키 춤에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는 키쿠오를 자신의 문하생으로 들여 혹독하게 훈련시킨다. 천애 고아인 키쿠오는 스승의 집에서 먹고 자며 그의 대를 이어 일본 최고의 가부키 배우가 되겠다는 야망을 키운다. 하지만 한지로에겐 이미 후계자인 아들 슌스케가 있다.


문제는, 슌스케가 아무리 노력해도 키쿠오의 천재성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 키쿠오 앞에도 뛰어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이 있다. 아무리 천재적인 실력을 가졌다 해도 그 집안의 피를 물려받지 않은 이상 후계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 그래서 키쿠오가 슌스케를 향해 “너의 피를 빼서 모조리 마셔버리고 싶다.”고 말하는 섬뜩한 일갈은, 실력으로도 극복할 수 없는 견고한 세습 제도에 대한 처절한 절규이다.


하지만 2대손 하나이 한지로는 아들 대신 제자 키쿠오를 자신의 뒤를 이을 3대손 한지로로 지명한다. 그 사실에 절망한 슌스케는 가출해서 8년 동안 떠돌아 다니다가 돌아와 3대손 자리를 차지하고 두 사람의 처지는 바뀌게 된다. 영화는 그렇게 50여 년 세월 동안 이어지는 두 주인공의 갈등과 대립, 그 가운데서도 나누는 동료애를 축으로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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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최고의 가부키 배우가 될 수만 있다면 악마와도 거래를 하겠다고 다짐한 키쿠오는 예술적 성취를 위해서라면 인간성까지 버린다. 애인도, 자식도 외면하고, 심지어 스승이 무대 위에서 피를 토하고 죽어갈 때도 그의 병상을 지키는 대신 자신이 돋보일 무대를 선택한다. 이는 결핍된 혈통을 압도적인 예술성으로 증명해 보이려는 눈물겨운 실존적 투쟁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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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그는 빛이 내리비치는 허공에서 눈 같은 것이 흩날리는 모습을 마치 환영처럼 종종 본다.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는 모른다.

마침내 그가 일본 최고의 가부키 배우로서 ‘국보’ 칭호를 얻고 독무대에 오르는 장면은 이 영화가 도달한 미학적 정점이다. 공연을 끝마쳤을 때 위에서 하얀 종이 꽃가루가 떨어진다. 그런데 이 꽃가루가 모두 떨어진 뒤에는 조명 빛을 받아 먼지가 허공에 흩날린다. 그가 종종 봤던 그 환영은 이 종이 꽃가루였을 수도 있고, 먼지일 수도 있다. 키쿠오는 그것을 보며 조용히 말한다. “참으로 아름답구나.”

내게는 이 장면이 한 인간이 예술인으로서(혹은 어느 분야에서든) 정상의 자리에 올랐을 때 갖게 되는 충만함(종이 꽃가루)과 동시에 느끼는 허무함(먼지)의 의미로 다가왔다. 그래서 그가 말한 “참으로 아름답구나”라는 독백은, 모든 것을 희생하여 도달한 그곳에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았음을 깨달은 자의 달관이자 외로움일 것이다.


예술은 인간을 구원하는가, 아니면 파괴하는가. 영화 <국보>는 그 질문에 대해 가장 화려하고도 쓸쓸한 답변을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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